[현장이슈] 만 18세 선거권 보장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2020.02.05 10:30:00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의 딜레마

「공직선거법」개정으로 올해 4월 15일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고3 학생 중 일부가 투표에 참여하게 되었다. 국회가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제15조를 개정하여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하한 연령을 기존의 만 19세에서 한 살 더 낮추어 만 18세까지 한 살 낮추었기 때문이다. 새로 투표권을 갖게 된 만 18세의 전체 유권자는 약 53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중에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고3 학생은 약 1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경남일보, 2020.1.12.). 단순히 투표 연령만 한 살 낮춰진 것이 아니라 18세 고3 학생들은 학교 안팎에서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등 선거운동·정치활동이 가능해졌다(한국교총 보도자료, 2020.1.3.).

 

그런데 문제는 현행 법령상 선거권만 단지 확대했을 뿐, 이로 인하여 새롭게 선거권을 행사할 학생들을 위한 사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학교가 법제적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강하게 표방해왔는데, 이것이「공직선거법」개정으로 일거에 혼란을 겪을 상황에 처했다.「교육기본법」제6조는 ‘교육의 중립성’ 제목하에 제1항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또한 제14조(교원)의 제4항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교원은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하여서는 아니 된다.’

 

선거권도 학생의 중요한 인권이며, 이것을 이제「공직선거법」에서 보장한 이상 학교가 이를 유념하고 존중하여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요컨대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복 입은 유권자’의 권리와 ‘교육의 정치적 중립’ 사이에서 학교가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데, 당장 4월 총선까지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이것을 위한 법적·현실적 사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서울신문, 2019.12.31.).

 

딜레마 해소를 위한 네 가지 대책

이번 선거권 부여와 관련하여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차원에서 학교 교육이 준비해야 할 대책은 적어도 네 가지이다.

 

첫째, 교사들의 정치적 편향 교육예방 및 사후 감독

당파적 의식을 가진 교사들의 정치적 편향교육을 어떻게 막아내느냐 하는 점이다. 최근 서울 인헌고에서는 일부 교사들이 반일구호를 외치게 하거나 ‘조국 관련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해 정치편향 교육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조선닷컴. 2019.12.2.). 서울시교육청이 인헌고 교사의 문제를 불문에 붙인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교권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책임도 수반한다. 반면에 지난해 10월 부산시교육청은 조국 가족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을 비판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인용해 중간고사 문제를 출제한 A고 교사와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B 교사를 동시에 징계했다(동아닷컴, 2020.1.7.). 좌 또는 우의 정치적 편향교육으로 중립성을 훼손하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징계해야 한다. 전언에 의하면 부산시교육청의 교사 징계 근거는「공교육 정상화 및 선행학습금지법」과「교육기본법」이다. 전자의 법은 지필평가·수행평가 등 학교 시험에서 학생이 배운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평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교육기본법」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교육을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둔 교육계에 경종을 울려주는 사례다. 하지만 그보다는 교사의 편향성이 학생의 후보자 선택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후징계보다는 사전예방이 더 중요하다(동아닷컴, 2020.1.7.). 

 

둘째, 입후보한 후보자들의 학내 선거운동에 대한 학교와 학생의 대책 확보

입후보한 후보자들의 학내 선거운동에 학교와 학생이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점에 관한 사전대책이 필요하다. 지금도 외부 지역 의원들이 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상을 주거나 축사를 하겠다고 학교에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교육청 주최로 후보자 토론회를 여는 등 교육당국이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데 공감한다(서울신문, 2019.12.31.).  

 

중앙선관위는 ‘교실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 교내 선거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에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 “교사나 학교 관계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을 것”이라며 “교내 의정보고회·명함 배부·현수막 게시 등을 막기 위한 입법도 선거 전 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세계일보, 2020.1.9.).

 

셋째, 학생 상호 간에 예상되는 정치적 선동과 충돌 예방

학생 상호 간에 예상되는 정치적 선동과 충돌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현재는 해당 학교뿐 아니라 상당수의 고교에서 학생이 정치와 관련된 활동을 하거나 학생회 회원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을 학칙을 통해 금지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으로 이 같은 고교 학칙의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만 18세가 돼 선거권을 부여받은 일부 고3 학생들이 투표와 선거운동·정당 가입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서울신문, 2019.12.31.). 이로 인하여 “학생들이 선거법을 어기는 등 위법을 저지르거나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조선닷컴, 2019.12.2.).

 

교실 내 선거운동과 정치활동을 못 하도록 지침을 점검하고 법도 손을 봐야 한다. 현행 선거법상 ‘후보자가 선거운동 할 수 없는 장소’에 학교는 들어가지 않는다. 교실 방문도 명시적으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후보들이 교실을 찾아 명함 돌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조선일보 2020.1.6.).

 

넷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적극적 중립의 유권자 교육의 시행

학생들이 합리적 비판의식의 소유자로 유권자로서 한 표를 어떻게 정의롭게 행사하도록 도울지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협의하여 학교에 ‘학생용 선거법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조선일보, 2020.1.1.).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학생의 선거권 획득은 전례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선거법과 관련해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례에 대한 대응방법과 선거교육을 내실 있게 운영하는 방안 등을 선거관리위원회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서울신문, 2019.12.31.). 교육부가 2월 말까지 교수·학습자료를 개발해 선거교육을 하겠다고 했지만 급조된 만큼 부실할 가능성도 크다(중앙선데이, 2020.1.11.).

 

선거교육은 단순히 올바른 투표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균형 잡힌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정치교육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은 옳다. 지금까지 학교에선 정치가 금기어처럼 사용되면서 오히려 사상적으로 편향된 사이비 정치교육이 판을 쳤다. 보도에 의하면 선거권이 만 18세로 확대된 만큼 학교현장에서의 정치교육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립 입장을 견지하되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교실로 끌어들여야 한다. 정치적 중립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극적 중립이다. 이것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을 염려해서 아예 정치적 문제를 교실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 중립이다. 예컨대 시사문제를 교실로 끌어들이되, 결론은 학생들 스스로 내리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른바 쟁점중심수업(Issues-centered learnig)은 특히 현실적 이슈를 다루는데 적합한 수업방법이다. 수업 중 토론의 기회를 갖도록 하되, 그 취지에 맞게 최종 결론은 학생들이 스스로 내리도록 교사들은 중립을 지킨다. 이것이 이른바 「헌법」제31조 4항이 표방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편이다. 현실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적극적이지만, 교사가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유보한다는 점에서 중립이다.

 

끝으로 공정한 선거교육을 위해서는 외부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선거교육을 전 교육감이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에 위탁했다. 보도에 의하면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 교육감은 얼마 전 특별사면으로 총선 출마 가능성이 열렸다고 한다. 시교육청이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면 선거교육에 편향된 인사의 참여를 막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중앙선데이, 2020.1.11.). 국회 홍일표 의원이 대표 발의한「공직선거법」개정안은 그런 점에서 같이 검토해볼 수 있는 대안이라 생각한다. 즉, 초·중·고등학교에서 선거교육을 실시하고자 할 경우에는 해당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선거관리위원회 소속 선거교육 전문 공무원을 통해서 교육하도록 하며, 선거교육 담당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벌칙규정을 선거법에 명시하고자 하는 것이다(안 제85조의1).

 

외국 사례와 시사점

올바른 정치교육을 위해 선진국의 다양한 성공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시민교육이란 이름으로, 독일에선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으로 별도 교육과정을 마련해 민주주의의 원리와 시민의 덕성 등을 가르친다(중앙선데이, 2020.01.11.). 특히 ‘편견 없는 사람’을 목표로 삼고 다양성과 관용의 역량을 몸에 배도록 해왔다. 특정 이념과 주장을 주입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er Konsens)’이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란 1976년 동·서독 분단 시기에 서독의 진보·보수 학자와 정치인이 합의한 정치교육 지침이다. 교사가 자신의 의견을 학생들에게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토론하며 학생들의 정치 행위 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경향신문, 2019.12.9.). 이상의 세 가지 원칙은 40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도 독일 시민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인정받고 있다.

허종렬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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