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미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전임연구원] 몇 달 전 자신이 공무원 연금 수급자라고 소개하면서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며 펀드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전화 한 통이 재단에 걸려왔다. 그 당시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건이 크게 불거진 상황이라 많은 투자자들이 펀드 투자에 소극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건 사람은 오히려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재단은 개별 상품을 추천하는 기관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꼭 가입을 원한다면 가족들과 상의한 다음 주변 은행이나 증권사에 방문해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도 같은 내용의 전화가 재단에 걸려왔고 펀드 추천을 요청했다. 그분이 어떤 계기로 펀드 투자에 이토록 큰 관심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갑자기 평소 본인이 잘 모르는 금융상품에 섣불리 투자 결정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모펀드, 사모펀드, ELS, DLF 등 일반 투자자들이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가입할 수 있는 금융투자상품 종류는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어떤 상품들이 자신에게 적절한 상품인지 알고 투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저금리 시대에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을 얻고 싶은 마음에 금융상품에 대한 공부를 하는 투자자들은 있지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투자자보호제도까지 알아보는 투자자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금융상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이외에도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투자자보호제도에 대해 미리 충분히 알아둔다면 불완전판매 피해를 예방하고 본인에게 적합한 상품을 투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불완전판매 예방의 첫걸음
지난해 크게 불거진 우리은행·하나은행 파생결합펀드(Derivatives Linked Fund, DLF) 불완전판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불완전판매’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했다. 불완전판매란 금융회사가 투자자나 금융상품에 대해 제대로 알지 않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행위, 금융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행위 등을 의미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는 이를 각각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2008년 우리파워인컴펀드 사태 이후 2011년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사태, 2013년 동양증권 기업어음·회사채 사태 그리고 지난해 발생한 DLF 불완전판매 사태까지 대규모 불완전판매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발생한 DLF 불완전판매 사태의 경우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배상비율을 최대 80%까지 결정한 바 있다. 과거 우리파워인컴펀드, 저축은행 후순위채 등의 사례에서 20~50% 정도의 배상비율을 인정한 것에 비하면 금융회사에게 투자자 보호에 대한 책임을 더 엄격히 물었다고 볼 수 있으나 투자자도 본인의 투자 의사 결정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즉, 투자에는 ‘자기책임의 원칙’이 존재하는데, 원금보장이 되는 예·적금 상품과는 달리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에 가입할 때는 투자자들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투자자보호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나라의 투자자보호제도는 크게 사전적 보호제도와 사후적 보호제도로 구분된다.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등 사전적 보호제도는 투자자가 금융상품에 가입하기 전에 피해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이며, 분쟁조정제도, 소송제도 등 사후적 보호제도는 불완전판매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이다. 사전적 보호제도와 사후적 보호제도는 모두 중요한 제도다. 다만, 경제적, 시간적 손실을 따진다면 처음부터 불완전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적 보호제도를 확실히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적합성 원칙=‘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는 금융회사가 투자자에게 투자권유를 하기 전에 투자자들의 투자목적, 재산상황, 투자경험, 위험성향 등의 정보를 파악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투자상품은 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즉, 금융회사는 ‘투자자정보 확인서’를 통해 투자자의 연령, 투자 가능 기간,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수준, 수입원, 감내할 수 있는 손실 수준 등을 파악하고 위험선호도 조사를 통해 투자자의 투자목표와 투자성향을 파악한 후 투자자 유형(안정형, 안정추구형, 위험수익중립형,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 등)을 분류해서 투자자에게 적합한 금융상품을 추천해야 한다.
이를 ‘적합성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만약 안정형 투자자로 분류되었다면, 주식형 펀드 등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상품을 추천할 수 없다. 안정형 투자자로 분류되었음에도 투자자가 고위험 상품에 투자를 원하는 경우 자필서명을 받고 가입할 수 있으나 원금손실 발생 시 그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이번 불완전판매로 크게 문제가 된 DLF 상품은 적합성 원칙이 배제되는 사모펀드로 판매됨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적합한 상품인지 여부를 따지는 과정조차 없었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충분한 위험감수능력이 있는 투자자가 자기 책임 하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투자자보호 장치가 공모펀드에 비해 느슨하다. 이러한 차이점을 금융회사가 설명해 주지는 않으므로 투자자 스스로 챙길 필요가 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실시한 ‘구조화상품 투자현황’ 설문조사에 따르면 ELS, ELF, DLS, DLF 등 구조화상품 가입 과정에서 금융회사 판매직원의 권유로 자신의 투자성향과 맞지 않는 상품에 가입하는 등 DLF 불완전판매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투자자성향 진단을 받은 투자자 중 약 3분의 1이 자신의 투자성향 결과와 관계없는 상품을 권유받거나 권유하려는 상품에 맞도록 투자성향 결과가 바뀌었다고 응답했다. 만약 판매직원이 투자성향과 관계없는 상품을 권유하거나 본인의 투자성향 결과를 바꾸었다면 투자자보호 제도를 잘 지키지 않은 회사이므로 그 회사에서 금융투자상품을 가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설명의무=‘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는 금융회사가 투자권유를 하는 경우 금융투자상품의 내용, 투자에 따르는 위험 등을 설명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2018년 실시한 ‘펀드 투자자 조사’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가입한 펀드를 기준으로 74.6%가 상담시간이 ‘30분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판매직원의 설명에 대해서 ‘이해하기 쉬웠다’는 응답비율은 63.1%로 약 40%가 판매직원의 설명을 어렵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판매직원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펀드에 대한 나의 기초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42.1%, ‘판매직원의 설명이 복잡하고 전문용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라는 응답이 37.4%로 나타났다.
투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투자자들이 3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판매직원의 설명을 모두 이해하기란 어렵다. 판매직원은 쉬운 용어로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야 하지만 투자자가 바쁜 일정 때문에 긴 상담은 원치 않거나 금융회사 직원의 업무 부담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많다. 따라서 금융투자상품에 가입을 할 예정이라면 바쁜 스케쥴이 있는 날보다는 여유 있게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날 금융회사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또한 판매직원이 권유한 상품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당일에 가입을 자제하고 충분히 상품에 대해 이해한 다음에 가입을 해야 불완전판매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정성 원칙과 부당권유 금지=투자자보호 장치들은 앞서 설명한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이외에 ‘적정성 원칙’, ‘부당권유 금지’ 등이 있다. 적정성 원칙은 투자자가 판매직원의 권유가 아니라 스스로 판매를 요청하는 경우더라도 고위험 상품인 파생상품 등이 해당 투자자의 투자목적, 재산상황, 투자 경험 등에 비추어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를 투자자에게 알리고 서명, 기명날인, 녹취 등으로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부당권유 금지는 투자자에게 투자권유 시 거짓의 내용을 알리거나 불확실한 사항에 대해 단정적인 판단을 제공하거나 확실하다고 오인하게 할 소지가 있는 내용을 알리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추진
2012년 7월 최초로 국회에 제출된 이후 7년 동안 국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한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에는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금융회사가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 책임 제도를 도입하고 소비자의 현저한 재산상 피해 발생 우려가 있을 경우 피해가 발생하기 전 감독당국이 해당 상품의 판매 금지 등을 명령할 수 있는 판매제한 명령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된다면 투자자를 포함해 금융상품 수요자인 금융소비자들에 대한 보호 수준을 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아무리 좋은 보호제도를 갖춰놓고 있더라도 이를 지키려는 금융회사의 의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으려는 투자자들의 의지도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