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안식처가 돼주신 선생님, 사랑합니다!”

2020.02.20 17:02:08

창원경일고·경일여고 방송부
전국에서 모인 제자 50여 명
인생 멘토 윤해준 교사 위해
감사, 응원 담은 퇴임식 열어
마지막 출근 날 깜짝 이벤트도

 

지난 12일 겨울비가 오던 아침. 경남 창원경일고로 이어지는 길목에 우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들고 있던 현수막을 펼쳐 큰길 따라 늘어선 펜스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현수막에는 ‘시대를 앞서간 그대’ ‘선생님 덕분에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선생님의 제자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현수막 설치를 마친 후에는 교문으로 자리를 옮겨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안경 쓴 남성과 음표가 그려진 텀블러였다. 이날은 텀블러 그림의 주인공, 윤해준 창원경일고 교사의 마지막 출근 날이었다. 
 

 

장성한 제자들이 스승의 퇴임을 기념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교사로서 마지막 출근길을 ‘꽃길’로 만들어주고픈 제자들의 마음이었다. ‘선생님이 잘 키워준 덕분에 잘 자랐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다. 
 

15일 오후에는 창원 지역의 한 리조트 연회장에서 퇴임식을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제자 50여 명이 모였다. 퇴임식도 남달랐다. 지난 30년간 제자들과의 추억을 담은 영상을 감상하고 스승에 대해 알아보는 퀴즈 시간, 경품 추첨 이벤트도 마련했다. 잔칫집이 따로 없었다. 창원경일고·경일여고 방송부 동문은 석 달 넘게 이날을 준비했다. 
 

정혜영(15기) 씨는 “윤해준 선생님은 30년 동안 방송부를 맡아 인생 멘토이자 안식처, 쉼터가 돼주셨다”며 “지난해 10월 방송부 동문 모임에서 퇴임식 이벤트를 기획해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사업,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준비했어요. 창원팀, 서울팀으로 나누고 행사 기획, 장소 섭외, 영상 제작, 기념품 디자인 등 업무를 분담했죠. 형식적인 퇴임식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기고 축하하는 축제로 만들고 싶었어요. 가족, 친지가 모여 돌잔치, 환갑잔치를 하는 것처럼요.”
 

 

제자들에게 윤 교사는 ‘울타리’이자, ‘방파제’였다. 부모에게 말 못 하는 고민, 학업 스트레스도 윤 교사 앞에선 털어낼 수 있었다. 방송부원들이 동아리 활동을 넘어 적성과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시각 장애인을 위한 책 녹음, 뮤지컬 기획·공연 등 개인별 적성에 맞춘 활동을 마련했다. 특히 방학 때는 제자들과 함께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 카메라를 통해 보는 세상, 보이는 그대로의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할 기회를 줬다. 
 

정 씨는 “방송 기술보다 방송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방송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셨다”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공유한 덕분에 기수가 달라도 대화가 통한다”고 귀띔했다. 
 

“추억 영상 제작을 위해 사진을 고르는데, 선생님 사진이 별로 없더군요.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는데… 대부분이 학생들 사진이었어요. 30년 세월 동안 찍어주는 게 익숙했던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코끝이 찡해졌어요.”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금지곡이었던 시절 일화는 유명하다. 노래를 듣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그때 한 제자가 방송으로 내보내고 싶다 했고, 방송하게 했다. 단순한 일탈이나 반항으로 생각하지 않고 10대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다. 정 씨는 “이번 퇴임식은 선생님께 받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난 시간 동안 주기만 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윤 교사에게 제자들은 훈장이다. ‘방송’이라는 공통의 관심을 가진 제자들이 마이크 앞에서만큼은 자유로웠으면 했다. 언젠가 꽃 피울 그 날을 위해 다양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실수해도 괜찮았다. 실수로 인한 뒷일은 모두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실수는 학생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퇴임을 앞둔 그는 “이름처럼 해주다 보니 받는 게 어색한 사람”이라며 “선생님~ 하고 부르면 언제든, 어디에 있든 달려갈 수 있다”고 했다.

 

윤 교사의 방송부 제자들은 학창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배우, PD, 방송작가, 아나운서, 광고기획자, 연출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평생 대접받아 본 적 없는데, 정 있는 제자들을 만나서 행복하고 참 고마운 일이다. 선생은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울타리, 방파제가 돼 너희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선·후배가 만나 서로 아끼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게 키우고 싶었다. 학교 아버지고 싶었다. 너희는 평생 AS다. 언제든 힘들면 달려가겠다.”

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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