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날이 있어요. 퇴근하면서 왠지 마음이 허전한 날. 뭔가 일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제대로 한 일이 없이 하루가 그냥 지나간 느낌. 바삐 흘러갔던 날인데,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서 마음이 공허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바쁜 하루였어요.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쉴 새 없이 퇴근 시간까지 달렸던 하루이기도 하지요. 그런 날엔 퇴근하기 전 조용히 앉아서 뭘 했는지 노트에 써 보고는 해요.
08:30 ~ 08:40 출근, 컴퓨터 켬
08:40 ~ 08:50 메신저 확인, 수업 준비
08:50 ~ 09:10 학생 발열 체크
09:10 ~ 12:00 수업(블록 수업이라 쉬는 시간은 딱 10분)
12:00 ~ 12:40 급식지도
12:40 ~ 12:50 잔반 처리, 바닥에 떨어진 국물이랑 반찬 치우기
12:50 ~ 13:20 교실 청소
13:20 ~ 14:00 업무(학교폭력 공문 기안, 학생선수 전수조차 후속처리)
14:00 ~ 15:40 회의(교육부 속보 때문에 갑자기 회의, 하지만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해도 회의는 길다.)
15:40 ~ 16:40 업무(공문 발송 준비, 학생 확인서 스캔, 소송 관련 변호사 사무실 통화)
문제점: 일은 열심히 했는데, 결과물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한 느낌
16:40 ~ 17:00 학급 알림장(온라인 학습 전환 관련 안내, 교과서 배부 관련 안내)
17:00 ~ 17:20 알림장 답글에 댓글 달기, 학부모님 메시지 확인
‘오늘은 하는 일 없이 그냥 지나갔네….’ 하는 헛헛한 마음에 펴놓은 노트. 노트 위에 빼곡히 적은 하루의 궤적. 그렇게 하루의 일을 상기하고 나니 왠지 뿌듯해져요. ‘오늘도 열심히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요즘 우리는 뿌듯한 마음을 충전하면서 살아야 해요. 코로나19 상황으로 바삐 돌아가는 학교.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하면서 이것저것 다른 업무도 추가되는 현실. 또 하나, 감염병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일상적인 우울감도 무시하지는 못하니까요. 마음 하나 잘 챙기면서 사는 것도 능력인 시대가 되었어요.
그래서 하루의 일을 노트에 적으며 작은 성취를 맛보는 일도 중요해요. 작은 성취의 순간들이 모여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아효능감을 키워주기 때문이지요.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 작가는 『자존감 수업』을 통해 자존감을 위해서는 3대 기본 축이 있다고 역설했어요. 자신을 쓸모 있게 느끼는 자기 효능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어 하는 마음인 자기 조절감,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인 자기 안전감. 이렇게 3개의 기본 축이 모여 자존감을 이룬다고 했지요.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노트에 정리하는 하루의 일과는 우리의 자존감까지 챙겨줘요. 정말 가성비가 넘치는 시간이지요. 뿌듯한 기분으로 퇴근하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우리의 마음도 더욱 당당해질 거예요. 열심히 일했는데, 찝찝한 기분이 드는 하루. 그런 하루는 헛되게 흘려보낸 하루가 아니에요. 그런 날엔 퇴근 전에 노트를 펴 놓고 하루를 정리해 보세요. 집에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실 테니까요. 힘들고 바쁜 요즘, 마음을 잘 챙기시면서 힘내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