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을 사거나 팔 때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있을까?

2020.10.06 10:30:00

집값이 오르면서 집을 사야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택 거래량이 급증합니다.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높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다수가 집을 사야겠다고 판단했으니 지금 집을 사는 게 현명해보입니다. 그런데 거래량이 늘었다는 것은, 사실 집을 파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집을 사거나 파는 것은 우리 일생에 가장 중요한 시장 참여 결정입니다. 우리는 여러 합리적 이유를 조합해 이 중대한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 결정은 합리적일까? 우리는 어떤 사회현상에 대중들의 수요가 결합하면 그것을 옳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우연’일 경우가 많습니다.

 

데런 브라운(Derren Brown)은 <마인드 컨트롤>, <러시아 룰렛> 등의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의 심리학자이면서 작가 마술사다. 그는 어떤 조작도 없이 TV에서 동전을 던져 10번 연속 앞면이 나오는 마술을 선보였다. 10번 연속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확률은 1/1024, 0.1%도 되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 이 마술을 선보였을까?

 

간단합니다. 미리 녹화하면서 10번 연속 앞면이 나올 때까지 계속 동전을 던졌습니다. 9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 마술(?)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그의 마법 같은 능력을 믿거나 아니면 특별한 눈속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틀렸습니다. 그는 단지 우연을 위해 계속 동전을 던졌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연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배 A가 2번 집을 팔았는데 그때마다 집값이 올랐다면 그가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그가 어리석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친구 B가 집을 사서 집값이 크게 올랐다면, 그때 그의 판단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합니다. 회식자리에서 집을 사라는 그의 충고에 솔깃해집니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

6연발 리볼버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할 경우, 한번 방아쇠를 당겨 죽을 확률은 1/6입니다. 하지만 5번, 10번, 20번, 할수록 죽을 확률은 100%에 수렴합니다. 그런데 만약 드미트리 야프센코가 러시안룰렛 게임을 30번 해서 살아남았다면 대중들은 이를 우연이라고 평가할까? 그는 어쩌면 종교지도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과학적인 주장을 하는 전문가는 진짜일까. 그가 서울의 집값이 오른다고 예측한 뒤에 서울의 집값이 오르는 걸까? 서울의 집값이 계속 오르니, 서울의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는 걸까? 또 다른 사례 하나.

 

어느 날 한 주식브로커가 나에게 메일로 A기업의 주식을 사라고 권한다. 그 주식은 다음날 주가가 오른다. 다음날도 메일이 왔다. K기업의 주식매입을 권한다. 실제 다음날 K기업의 주가가 오른다. 이렇게 10일 연속 볼티모어 주식중개인이 나에게 추천한 10개의 종목이 모두 다음날 주가가 올랐다. 통계적으로 1/1024의 확률이다. 다음날 그는 자신을 믿고 돈을 맡기라고 권한다. 나는 이제야 그를 온전히 믿고 전 재산을 그에게 맡긴다. - <틀리지 않는 법> 중에서. 조던 앨런버그

 

어떻게 가능했을까? 볼티모어 주식중개인은 모두 10,240명에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절반의 전망이 맞고, 다음날 5,120명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이런 식으로 열흘이 지나면 통계적으로 10명에게는 10번 모두 정확한 예측이 전달됩니다. 제약회사의 실험도, 펀드상품의 안전성도 모두 대규모 표본을 통해 검증됩니다. 몇 개의 한정된 표본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문가’의 시장 예측이 두어 번 맞았다면 우리는 그를 신뢰합니다. 대중은 서둘러 공신력을 부여합니다. 그의 예측을 쉽게 믿습니다.

 

합리적 판단을 위해서는 수많은 과학적 요소가 투입돼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매일 제한된 몇 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판단을 합니다. 게다가 그 판단의 상당부분은 내 마음의 ‘선호’입니다(오징어 먹물파스타를 고를 때 우리는 얼마나 과학적인가?). 류현진이 수학을 계산하며 공을 던지지 않고, 이치로가 물리학을 이용해 타격하지도 않습니다. 사실은 합리적 사고가 아니고, 남들이 하니까, 내 마음도 끌리는 겁니다.

 

우리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것들

경제가 복잡해지면서 우리가 시장에 합리적으로 참여하기는 갈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경제학은 이를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제한된 합리성 속에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할까? 사실은 어림짐작합니다. 휴리스틱(Heuristics)이 동원됩니다. 류현진이 공을 던질 때 매번 과학적인 동작을 계획하고 던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훈련된 휴리스틱으로 슬라이더를 던집니다. 우리 일상에서 그 휴리스틱이 매번 적중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류현진이 수천만 달러를 받는 이유다). 우리의 휴리스틱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는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아주 간단한 실험입니다.

 

다음 값은 얼마인가? 즉시 어림짐작으로 답하시오.

1) 8*7*6*5*4*3*2*1 =

2) 1*2*3*4*5*6*7*8 =

 

학생들은 1)의 경우 평균 2,250이라고 답했지만, 2)번으로 질문하자 같은 학생들은 평균 512로 답했습니다(정답은 물론 40,320이다). 이런 우리가 강남 아파트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통계를 서너 개씩 해석하며 합리적 판단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 사람들 다수가 요즘 그런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무도 연초에 토정비결을 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설날 연휴에 토정비결을 보러 갈까?

 

우리의 제한적 합리성에는 수많은 바이어스(Bias)가 끼어듭니다. 휴리스틱이 ‘어림짐작’이었다면 바이어스는 편견입니다. 하루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까, 자살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까? 대부분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을 거라고 답합니다. 참고로 2019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3,349명, 반면 우리나라는 해마다 만2천여 명이 자살하는(신고된 통계만) 나라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주로 큰 교통사고를 보도하고 우리는 교통사고가 더 흔하다는 바이어스에 빠져듭니다. 이 결합오류(conjunction bias)가 또 우리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합니다.

 

블랙 스완이 일상화가 된 지금, 누가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시장엔 늘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터집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그것, 경제학은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고 합니다. 실제 1969년 호주에서는 검은 백조가 발견됐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그런데 그런 일은 늘 터집니다. 전염병이 번져 국경이 막히고, 병실이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선진국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이 영화 같은 일은 지금 우리 곁에서 현실이 됐습니다.

 

그러니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증권사의 펀드매니저와 앵무새가 주식시장에 참여해 올리는 수익률은 통계적으로 비슷합니다. 그러니 수많은 전문가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미래가 현실이 된 이후에 그것을 설명할 뿐입니다. 그러니 전문적이지 않은 우리가 시장에 참여해 수억 원이 넘는 집을 사는 결정이 합리적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주변에 어떤 친구(전문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지금 왜 집을 사야 하는지 설명한다면, 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지금 왜 집을 팔아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누가 맞을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잘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는 제한적으로 합리적일 뿐입니다.

김원장 KBS한국방송 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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