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 슝~ 슝~ 슝~”교실 한 켠에서 들리는 쳇바퀴 소리에 모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띄워진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부모가 된다. 녀석들이 좋아하는 젤리며 견과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새로운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으며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그야말로 딸을 키우는 내 모습이다.
2020년 5월, 우리 반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귀여운 햄스터 밤이, 부끄러움이 많은 소라게 고마와 구마, 젤리를 좋아하는 사슴벌레 사슴이까지….
올해 실과시간에는 동물기르기 단원을 재구성해서 직접 동물을 길러보고, 이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개 관심있는 동물들을 조사하고 정리해서 발표하게 했지만 이번엔 조금 색다른 도전을 하기로 했다. 솔직히 교실에서 동물을 기르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무래도 관리가 어렵고, 동물을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는데 이렇게 좋은 공부가 있을까? 세상에는 글로 배울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단순히 동물을 기르기만 한다면 교육과정과 큰 교차점이 없는 것 같아 국어, 실과, 미술교과를 묶기로 했다. "반려동물관리사, 유튜버"라는 두 가지 직업을 직접 체험해보고 거기에서 생기는 문제와 보람에 대해서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다.
드디어 맞은 실과시간, 모둠별로 정해진 예산(학급 운영비) 안에서 키우고 싶은 동물과 준비물들을 정하고 직접 주문을 했다. 다만 동물을 고를 때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이 필요했다.
1. 실내에서 키우더라도 냄새와 소음이 심하지 않는 동물
2. 쉽게 죽지 않고,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동물
3. 관찰을 하거나 촬영이 쉬운 동물
4. 방학 때 한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동물
한참을 고심한 끝에 아이들이 선택한 동물은 햄스터, 소라게, 사슴벌레였다. 처음에 닥터피쉬를 이야기 한 모둠도 있었는데 저녁이 되면 교실 전기가 차단된다는 점과 방학 때 한 아이가 집까지 가져가기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물이 하나씩 도착하자 집을 꾸미는데 한참 열을 올리는 아이들이었다. 동물을 키우는 모습을 올리는‘유튜버’가 되어 보기로 했기에 ‘언박싱’영상이 아이들의 첫 영상이 되었다. 동물들을 맞을 준비가 끝나고 햄스터는 직접 대형마트에서, 소라게와 사슴벌레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분양을 받았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유난히 소란스러운 아침이었다.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진짜 소라 안에 게가 들어있어.”
“햄스터가 톱밥을 파고 들어갔는데 무서워서 그런가?”
여기저기서 조잘조잘 수다가 끝이 없었다. 아이들은 한참을 모여 고민하다 햄스터에게는 ‘밤이’, 소라게에게는 ‘고마’와 ‘구마’, 사슴벌레는 ‘사슴이’로 이름을 지었다. 그날부터 너나 할 것 없이 쉬는 시간이 되면 녀석들의 집을 둘러싸고 앉아 마치 부모나 된 것처럼 훈수가 계속 되었다.
“만지면 스트레스 받아.”
“소라게는 촉촉한 환경이 좋으니까 분무기로 물을 자주 뿌려줘야 해.”
스마트폰을 고정 해놓고 하루 종일 타임랩스를 찍기도 하고, 야행성인 녀석들이 밤에는 어떻게 활동하는지 궁금해서 촬영을 누르고 집에 가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모은 영상을 편집해서 다시 새로운 영상을 만들고 유튜브에 올렸다. 어설프지만 의미있는 도전,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은 유튜버가 되었다.
그 후로 녀석들과 우리의 동거는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꽤나 적극적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관심과 책임감의 차이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책임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리라. 그 사이 햄스터는 무럭무럭 자라 꽤 덩치가 커졌고, 소라게는 여기저기 쉘을 바꿔 다녔다. 애벌레는 어느덧 귀여운 아기 사슴벌레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11월...... 그동안 사랑과 정성으로 기른 동물들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계절이 되었다. 국어 토의 단원에서 그 고민을 해결해보기로 했다. 원래 처음부터 생각했던 프로젝트였지만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듯이 아이들에게 툭! 화제를 던졌다.
“토의 주제는 밤이(햄스터), 고구마(소라게), 사슴이(사슴벌레)를 어떻게 할까? ”
간단하게 각자의 의견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비슷한 것끼리 분류한 후 모둠으로 만들어 토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 결과 대안은 세 가지,
1. 학교에 미니 동물원을 만든다.
2. 6학년 교실로 데려간다.
3. 모둠원 중 한 명이 집으로 데려간다.
방안을 정한 후에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영화로 만든 'P짱은 내친구'를 보여주었다. 일본 오사카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음식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돼지를 길러 졸업할 때 잡아먹자는 제의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영화다. 아이들의 관심은 폭발했다. 그동안 수많은 영상자료를 봤지만 이렇게 열심히 집중해서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진짜 우리 상황이랑 똑같아”
“저러다 진짜 잡아먹는 거 아냐?”
“그렇다고 졸업하는데 계속 키울 수도 없잖아.”
영화는 동물을 안고 오신 선생님에서부터 시작해 이름을 지어주고 집을 만들어주며 열심히 돼지를 키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드디어 한 해가 끝나가는 마지막 쯤 P짱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토의가 시작된다. 영화 중간부터 P짱을 먹느냐, 아니면 먹지 않느냐를 두고 셀 수 없이 많은 토의를 나눈다. 돼지고기 자체를 먹지 않겠다는 아이들도 생겨나고, 토의를 하다가 감정이 상해 싸우기도 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그 과정이 우리 반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모든 회의가 다 깔끔하고 아름답게만 끝날 수는 없지. 어려서부터 많이 연습해야 어른이 되었을 때 진짜 토의를 할 수 있어.’
비슷한 대안별로 모둠을 구성하고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신감에 가득찬 표정으로 발표 준비를 했다. 근거를 들어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기특했다. 발표를 들으며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근거들을 칠판에 정리해 주었다. 그런 다음 대안이 실행되었을 때 일어나는 문제나 결과 등을 예측해보고 궁금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내용을 포스트잇에 썼다. 정리한 포스트잇은 칠판에 붙이고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는데 꽤 많은 의견들이 나왔다. 우리 학급은 바로 의견을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고 써서 정리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각 대안별로 쪽지들을 정리를 해봤는데 따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 모두들 문제점들이나 결과를 잘 예측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경제적인 면이나 책임감, 6학년 선생님의 수용 여부 등등 본인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일 것이다. 친구들의 의견을 가져와 모둠별로 답을 찾는 과정을 거쳤는데 생각보다 열심히 해서 깜짝 놀랐다.
'이래서 토의 주제가 중요하구나’
어느 정도 모둠별 의견이 종합되고 드디어 자유토의를 시작했다.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나 결과, 해결방안들을 나눴다.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니까...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다보면 목소리가 커지고 화를 내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차분하고 여유롭게 말할 때 더 설득력이 있고, 그 사람의 인품이 느껴진다는 것을 이런 기회를 통해 배운다고 생각한다.
결국 토의의 결론은 '6학년 교실로 데려간다'로 결정되었다. 만약 6학년 선생님이 반대할 경우에는 최대한 설득을 위해 노력하고, 안 될 경우에는 모둠별로 정해진 사람이 데려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결국 방안 중 2안과 3안이 절충된 결론이 나온 것이다. 문제점, 실현 가능성, 결과 예측까지 수많은 의견 조정 과정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결론이라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프로젝트는 지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좋은 수업이자 경험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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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교단수기 공모 - 대상 수상 소감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배울 기회로…
처음 이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가 떠오른다. 주제를 정해놓고, 어떻게 재구성을 하면 좋을지 참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또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생명, 존중, 배려, 공동체 등등.. 세상은 참 빨리 변해가고, 그 속에서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와 가치가 교차하고 역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험과 시간을 걸어온 우리도 가끔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는데 하물며 아이들은 어떨까? 도덕교과에서 말하는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과 가치들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아이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교사로서 꽤 행복할 것 같다. 물론 같은 활동을 진행했다 하더라도 각자의 생각과 느낌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1년 동안 함께 키운 ‘밤이, 고구마, 사슴이’의 미래에 대한 토의를 할 때 아이들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것, 그 판이 적어도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깨달음을 주었다면 나는 행복한 교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난 이 맛에 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