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방과 후, 학부모님 두 분이 학교로 무작정 찾아와 교장실에 가야겠다며 소리를 지릅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전날,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싸웠는데 학교에서 조치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무조건 교장실에 들어가야겠다고 고성을 지르며 난리를 피우는 상황. 들여 보내주지 않으면 현관문을 부숴버리겠다는 엄포도 놓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이런 상황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어요?
1. 그래도 민원인인데 교사로서 차분하게 응대하고 학부모를 진정시켜서 돌려보낸다.
2. 강력하게 응대하며 필요시에는 똑같이 소리를 지른다.
3. 경찰에 신고한다.
선생님마다 판단하는 준거가 다르기 때문에 위의 세 가지 말고도 여러 가지 대응법이 나올 수 있어요. 여러 대응법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3가지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듯합니다. 우선, 1번의 태도는 투철한 대민봉사 정신으로 친절하고 공손하게 민원인을 대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입니다. 비록 악성 민원인이라도 말이지요. 2006년 7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발간한 ‘교육 민원처리 e-매뉴얼 1.0’에는 따지고 들거나 불평을 하는 유형의 민원인에게는 ‘고객의 요구가 정당하고 잘못이 우리에게 있다면 즉각 용서를 구하고 성의를 다해 언쟁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지침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지요. 지금부터 15년 전의 매뉴얼이고 악성 민원인이 많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이런 매뉴얼도 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 현장에서 헛웃음을 지었을 테니까요. 혹시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도 이런 매뉴얼을 보고 얼굴이 빨개지는 선생님들이 계셨을지도요.
2번의 태도는 법이나 매뉴얼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태도로 응대해주고 싶은 민원인이 많지만, 자칫 시비에 휘말릴 수가 있어서 많이 권장하지 않는 방법이에요.
3번의 태도는 2020년 교육부에서 발간한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과 궤를 같이하는 대응법입니다. 보호자 등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는 지침이 명시돼 있습니다.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민원의 양상이 달라지며 선생님들이 고충을 겪고 있는 만큼 대응하는 지침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있습니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지요.
그런데,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혹은 상급 기관의 지침이 달라졌다고 악성 민원이 하루아침에 사라질까요?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처음 예시로 들었던 사례에서 학교에서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요.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현관문을 부수는 것처럼 공공기물을 파손하면 출동할 수 있지만, 학교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는 경찰서에서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었지요. 만약 그때, 민원인이 한발 더 나아가 기물을 파손했더라면 민원인도 처벌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을 거예요. 어쩌면 그걸 알기 때문에 소리 지르고 협박하는 것으로 끝냈을 수도 있고요.
악성 민원에 대응할 수 있는 법령과 지침이 있어도 상황이 유리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파악만 잘해 놓아도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편해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수위를 높이면 당신도 자유롭지는 못하다’라는 생각으로 한결 마음을 놓고 민원인을 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태도 하나가 우리의 정신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만약 민원 때문에 짜증이 나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면 매뉴얼과 관련 법령도 찾아보세요. 당당하게 대응해도 괜찮겠다는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