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무구유언] 교육의 배신, 교육의 실패

2021.09.06 10:30:00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성공 신화는 고도의 경제성장 덕분  
청년 중 실업자가 절반인 지금은 ‘전원일기’ 같은 옛 향수일 뿐 
딜레마에 빠진 한국 교육 파괴적 혁신 절실 … 지금이 변신 적기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학은 곧 개인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인생 변수’가 되곤 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학 졸업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직장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경제성장을 교육이 이끌었다는 ‘한국판 드라마’의 신화가 세계적으로 회자 되었다. 한국 교육이 한 편의 ‘드라마’로 표현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학교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경제현장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다면, 교육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학교 문을 나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쳤다면,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도, 대한민국에 대한 교육 찬사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칭송은 이제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추억일 뿐이다. 경제가 침체하고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학교교육은 별반 바뀌지 않고 고학력자들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전체 고졸자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해 미래의 부푼 꿈을 설계하지만,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절반은 실업자 신세가 된다. 4년제 대졸자가 좋은 직장은커녕 전문대 졸업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심지어 고졸자들의 일자리마저 위협한다. 교육의 배신이자 교육의 실패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5월 경제인구 활동조사-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실감이 난다. 우리나라 청년층 인구는 879만 9,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만 6,000명(-1.5%) 줄어들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49%, 고용률은 44.4%에 불과했다. 주목할 대목은 대졸자 통계다. 대졸자 휴학 경험 비율은 48.1%였고, 졸업(중퇴) 후 첫 취업 소요기간은 10.1개월로 나타났다.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6.2개월, 첫 일자리 임금은 150만~200만 원 미만이 37%, 200만~300만 원 미만이 23.2%, 100만~150만 원 미만이 20%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나. 필자는 ‘대한민국 교육의 딜레마’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은 교육을 통한 희망사다리 오르기로 상징되는 교육 출세론에 부모주의(parentocracy)가 결합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칠판 하나만 놓고 가르쳐도 학생들이 넘쳐났고, 졸업장을 받은 청년들은 쉽게 취업하는 황금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환경이 확 바뀌었다. 대졸자의 절반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외국 대학 유학파까지 응시하니 이거야말로 교육의 실패이자 딜레마가 아닌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입학자원이 급감하고 4차 산업혁명 등 국내외 환경변화로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2021년 이후 대학 입학정원이 입학 가능 학생 수보다 커지는 역전현상이 본격화하는 격변기를 맞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을 갖고 대응하는 것(피터 드러커)’인데 우리 교육이 딱 그런 꼴이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
왜 그럴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번 가까이 칭송한 한국 교육의 우수성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한국 교육은 우리가 못 살고 학교 교육환경이 엉망이었을 때는 ‘인기 드라마’를 방영했지만, 외국 대학도 부러워할 정도의 쾌적한 호텔 같은 인프라를 갖춘 대학이 수두룩한 현재는 ‘실패의 드라마’를 억지로 내보내고 있다. 2021년도 전체 대학의 충원율은 91.4%로 미충원 인원이 4만 586명이었다. 


특히 거점 국립대의 경우도 미달 사태가 속출했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지방 사립대는 말할 필요도 없다. 2021학년도 입학정원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정원 미달 인원이 2022년부터 매년 증가해 2024년에는 10만 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24년에 지방대학 10개교 중에서 1개교는 신입생 충원율이 ‘50% 미만’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 교육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초·중·고 교육은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으로 고착화했고, 객관식 위주의 교육은 여전하고, 커리큘럼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분들에게는 야박한 평가라서 송구스럽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을 3학기 보낸 시점에서 반추해보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여전히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고등교육 구조조정, 국립대부터 실시해야 효과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대학 문턱이 낮아진다고 해도 상위권 대학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많을 수밖에 없다. 대학 수십 개가 문을 닫아도 소위 ‘SKY 대학’ 입시 경쟁률은 별로 완화될 것 같지 않다는 게 필자의 우둔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녀를 한 명이나 두 명 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에 대한 교육비 지출을 결코 줄이지 않을 것이고, 교육 출세론에 대한 ‘희망 고문’ 또한 여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등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고등교육이 변화하지 않으면 고3 담임들은 계속 상위권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에 대한 평가 압박에 시달릴 게  자명하다. 유능한 교사와 무능한 교사의 평가 잣대가 SKY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가 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업적주의(meritocracy)의 악령이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정원 조정 개입→자율→방기→개입을 되풀이하는 사이 대학은 자강 능력을 잃고 ‘눈치 대학’으로 변질됐다. 대학구조개혁의 기본은 교육시장원리에 따른 수요 공급과 수요자의 선택권 보장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대학의 자생적 질(교육·연구·사회기여도)이 높아지는 데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 평가나 나눠주기 지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등교육기관 수를 장기적으로 최소 100개 이상 줄여 양적 팽창을 질적 팽창으로, 추격형 교육을 선도형 교육으로 바꾸는 파괴적 개혁이 절실하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한 정치권의 입김에 대학구조개혁은 답보 상태다. 정치인들은 개별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와 경제적 비중에 대한 실증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대학이 문 닫으면 지역 경제가 초토화한다’는 레토릭만 반복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수요자의 선택권과 대학의 성적표인 ‘교육수요자 원칙’을 냉정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 신호탄을 국립대가 쏴야 한다.  

 

국립대에 웬 안경광학과인가 … 국립대부터 구조조정 해야   
고등교육 재편은 곧 중·고교의 커리큘럼 변화와 교수법 변화와 맞물린다. 그런 만큼 신중해야 하고 수술 칼날은 예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립대와 국·공립대 개혁을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립대는 단계적으로 줄여 지역별로 통합해 광역화하는 게 당연하다. 궁극적으론 ‘1도(道) 1국립대’로 개편이 절실하다. 교육부가 대학을 인위적으로 손본다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대가 더 적합하다.  


국립대 개혁의 필요성은 전공만 봐도 알 수 있다. 왜 국립대가 전문대 전공을 카피하는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국전문대학교협의회에 의뢰에 근거 자료를 찾아본 결과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국·공립과 사립을 포함한 전국의 대학 중 114개 대학(원) 520개 학과(학부 307, 대학원 213)에서 전문대가 운영하는 학과를 중복 개설하고 있었다. 전문대가 처음 개설한 전공을 일반대학(대학원)이 따라 한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경광학·치위생·치기공·철도·물리치료·작업치료·방사선·뷰티/미용·응급구조·외식·조리·카지노·소믈리에·바리스타·반려동물·제과제빵 전공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국립대의 전문대 카피 사례는 다음 표와 같다. 

 


물론 국립대가 전문대의 전공을 더 심화해 학문적으로 발전시킬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유 장관은 20대 국회의원 시절 정책자료집(<전문대학 10년의 변화와 박근혜 정부 전문대학 정책 진단>)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행 법·제도 안에서는 4년제 대학의 전문대학 관련학과 신설을 막기 어렵고, 오히려 확대되기 쉽다. 정부는 산업계에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중소기업 경영 악화 등을 막기 위한 조치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있듯이, 대학교육에서도 전문대학만이 유지할 수 있는 학과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해 전문대학이 ‘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관이 된 후에도 고등교육 체질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교육의 실패이자, 고등교육의 실패다. 대학을 나온 청년들은 더 이상 사회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전공과 기업 수요의 미스매치(mismatch)는 고사하고 절대 일자리 수가 부족해서다.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신화는 앞으론 허망한 옛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치고 있다. 그런 교육의 딜레마가 계속된다. 


이제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도, 사회도, 기업도, 교육공무원도, 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의식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교육정책에 대한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또한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교육학자와 전국의 선생님,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이 적기(適期)다. 

양영유 단국대학교 특임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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