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이념이 지배한 퇴행의 ‘에듀폴리틱스’

2021.12.06 10:30:00

문재인 정부 5년, 교육정책 공과는?

 

 

문재인 정부 5년이 저물어 간다. 기회는 공정하고 과정은 투명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국정 슬로건으로 진보 이념에 충실한 교육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와는 달리 갈등과 혼란, 그리고 역량 부족이 드러났다. 결과는 어땠을까?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의 공과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는 유아에서 대학까지 공공성 강화를 모토로 내걸었다. 누리과정 확대와 사립유치원 회계 강화, 그리고 초등돌봄확대가 기초를 이뤘다. 특히 한국사립유치원총연합회와 극한 대결을 벌이면서 에듀파인을 도입, 유치원 회계 투명화를 시도했다. 돌봄교실 확대를 둘러싸고는 운영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이냐를 두고 교사들과 돌봄전담사 간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중등교육에서 관심의 초점은 단연 고교학점제로 모아졌다. 준비 부족을 이유로 시행 시기를 3년 늦추면서 현장 안착을 시도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2025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법으로 규정했지만 법원은 잇달아 자사고 손을 들어줬다. 자사고와 교육당국 간 소송전 1라운드는 10 대 0. 문재인 정부의 참패로 끝났다. 

 

대학입시는 공론화라는 새로운 의사결정 시스템이 도입됐다. 정시냐 수시냐를 둘러싸고 전국이 소란스러웠다.  교육당국의 무능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옷을 벗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학령인구 감소 탓으로 지방대학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제기된 것도 문재인 정부다. 지방대 위기가 단순히 대학의 위기를 뛰어넘어 지방소멸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대학기본역량진단사업을 통해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학들의 강한 반발에 진통을 거듭했다. 

 

이번 호는 이 같은 문재인 정부 5년 교육정책을 평가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교급별 영역을 나눠 세부 정책의 공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는 시대와 교육 생태계의 변화, 그리고 정권의 성향에 따라 교육개혁을 내세워 제도를 바꿔왔다. 역대 정부는 국민의 뜨거운 교육열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돈은 가장 적게 쓰면서 생색은 가장 많이 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교육 분야였던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학생은 교육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교육은 목적 그 자체여야 한다”고 설파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이 되어온 지 오래다. 

 

다음 <표>에서 보듯이 역대 정부의 교육 공약은 현란했다. 공약대로 교육정책이 실현되었더라면 우리의 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저만큼 앞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났고 여러 혼란을 불러왔다. 그 피해는 교단을 묵묵히 지키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몫이 돼 버렸다.

 

 

역대 정부 중에서도 문재인 정부 때만큼 교육이 혼란을 겪은 시기도 드물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를 내걸고 교육개혁을 공약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 교육은 외려 역사적 퇴행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만 나의 아이”인 ‘내로남불 교육’이 곳곳에서 국민의 마음에 피멍을 들게 했다. 그러다보니 교육 분야의 국정지지도는 30%(한국교육개발원 ‘2019년 교육여론조사’ 보고서)에 불과했다. 전체 응답자의 59.7%가 “교육정책에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왜 그럴까. 바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손발이 맞지 않았고, 획일주의와 평등주의의 이념이 지배하면서 정치가 교육을 지배하는 에듀폴리틱스(edu-politics)가 횡행했기 때문이다. 대입과 고교체제 문제, 그리고 혁신학교 등으로 상징되는 교육의 정치화는 교육혁신 설계 타이밍을 놓치고 ‘교육 퇴보’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학력 격차가 문재인 정부 기간 더 심화했다. 전교조가 전국학업성취도 평가를 일제고사라며 반대하자 문재인 정부는 학업성취도 전수조사를 표집조사(전체 학생의 3%)로 전환했다. 전수평가 시행 9년 만인 2017년부터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표집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수포자’ ‘과포자’ ‘영포자’가 양산됐고 학생 간 학력 격차가 심화했다. PISA 등 국제학력비교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성적이 밀리기 시작했고, 100점 만점에 20점 미만인 기초학력 미달자는 이전 정부 때보다 2~4배 많아졌다. 

 

초조한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몰았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와 사교육비 총액은 모두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정권 내내 입시가 흔들린 결과다. 2019년 초·중·고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7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2020년에는 주춤했다지만 학령인구 감소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험 없는 포퓰리즘 교실 정치가 ‘교육의 희망 사다리 복원’은커녕 사다리 붕괴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격수업과 교육격차 해소 치명적 한계 노출

문재인 정부에서의 코로나 팬데믹 2년은 학생들의 교육격차 심화를 부채질했다. 초·중·고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오락가락하면서 학생들의 학습 몰입도가 떨어졌고, 대학은 대부분 비대면 수업으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불가피한 면도 있고 팬데믹 초반의 준비부족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학교·교원의 노력과 가정환경에 따라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능력에 차이가 큰데도 이런 요소를 잘 반영하지 못해 교육격차는 더 심화했다. 2020년 7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교사 대상으로 원격수업에 따른 교육격차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79%가 교육격차가 커졌다(매우 커졌다 포함)”고 답했다. 빅 데이터·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 인재 확충도 절대 부족하다. 교육인력·인프라 부족 등으로 현재 대학별 인재 양성 시스템은 한계가 노출되어 있다. 

 

입시 대혼란, 정시 비율 40% 강요 등 자율 후퇴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입시였다. 대입과 고입 모두 오락가락했다. 수능 절대평가는 교육부→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특위→공론화위원회를 오가며 ‘폭탄 돌리기’를 반복하다 없던 일이 되었다. 조국 사태에 놀란 문 대통령의 ‘공정’ 한마디에 정시 확대가 강요됐다. 서울소재 16개 대학은 숨죽이며 정시 40% 이상 확대를 받아들였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일괄폐지도 계속 논란이다. 자사고들은 교육기본법이 명시하는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라며 헌법소원을 내 모두 승소했다. 다음 정부의 일괄폐지 시점인 2025년까지 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고와 자사고 폐지로 ‘강남 8학군’ 쏠림이나 조기유학 풍선효과가 우려되고 공교육 전체의 관점에선 학력의 하향평준화도 우려되고 있다. 정치가 입시를 지배하며 교육의 정치 예속이 가속화한 것이다.  

어설픈 고교학점제 시행은 대입 혼란 점화의 또 다른 불씨다. 교육부가 당초 2025학년도 전면 도입을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3년부터 적용하겠고 발표함으로써 정권 교체 직후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학생들이 공통 과목을 이수하면서 대학생들처럼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들으려면 교과목이 다양해야 하고 교사도 더 많아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덜 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2 대입개편을 통해 정시 비중을 30% 이상 확대하면서 수시 입시에 어울리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는 것은 모순이다. 현장 교육과 제도 사이에 큰 크레바스(crevasse)가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가운데서도 고교 무상교육이 완성됐고, 유치원 3법 개정 등 유아교육의 공공성 제고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고교 무상교육의 완성은 의무교육의 보편화란 측면에서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론 고교 교육의 질적 향상이란 숙제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고교 특성별로 차별화된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개편은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3~5세 유아교육시설을 유아학교로 전환하여 공교육화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 정부에서는 추진하지 못했다. 5세 아동은 초등학교처럼 의무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고등교육 경쟁력 하락, 정책 재설계 시급

미래 세대의 경쟁력은 교육과 학문, 문화·예술, 과학·기술과 같은 소프트파워에서 나온다. 그 원천은 대학이다. 대학이 소프트파워의 핵심인 ‘인재 양성’을 책임진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인재의 창의성을 극대화하고 다양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그런 고등교육의 재구조화는 시도하지 않았다. 전국의 대학들은 비슷비슷한 전공, 비슷비슷한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이제는 그런 학사운영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서울대 영문과는 전임교원만 30명이 넘는다. 그런데 지방의 군소 대학까지 모두 영문과를 운영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대학에 자율적인 구조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첫 단추로 국립대부터 변화의 전주곡을 울렸어야 했는데 교육부는 손을 대지 않았다. 40여 개 국립대를 권역별로 단계적으로 통합해 ‘원 유니버스티, N캠퍼스’를 구현하는 시동을 걸었어야 했다. 중복 유사학과 정리, 경쟁력 있는 학문과 커리큘럼을 재구조화했더라면 국립대 미달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한 국립대 재구조화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사립대는 선별적으로 재정지원을 늘리는 동시에 수익사업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정원 탄력제를 통해 사회적 수요가 큰 미래기술인력 양성 중심으로 개편하고, 우수교수진 확보를 위해 연구기금과 주거 환경을 최고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 사립학교법 개정, 해산 사학법인 설립자의 재산 일부 환수 허용, 해외 우수학생 유치를 위한 정부장학기금 확대 및 졸업 후 정착 지원 등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교육담론(educational discourse)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 고등교육의 국제 경쟁력도 추락했다. 글로벌 대학평가 경쟁에서 중국 대학에 밀린 지도 오래다. 고등교육 분야의 뒷걸음은 현 정부의 가장 뼈아픈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교육 5년은 횡보(橫步)로 요약할 수 있다. 글로벌 인재 경쟁시대에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에 정파성에 휘둘린 교육정책으로 앞으로 치고나가지를 못하였다. 그런 평가는 국민 10명 중 7명이 낙제점을 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정치가 교육을 지배하는 에듀폴리틱스를 정권마다 되풀이해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지식과 연구 고도화 사회의 교육 역할에 대한 위정자들의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영유 단국대학교 특임교수/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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