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수기 동상]진짜 엄마 선생님으로 살았던 2020년

2021.12.09 17:00:28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오후. 어둠이 금세 땅으로 내려앉아 길이 가물가물한 가운데 어렵게 찾아간 낯선 아파트 주차장. 큰 우산 아래에서 반가움과 고마움이 분명한, 그러나 어색함에 어쩔 줄 모르던 한 학부형과의 짧은 조우가 있었다. 어머님 직장 동료의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 격리 통보를 받아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우리 반 아이에게 교과서와 학습꾸러미 주기 위한 만남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연신 울리는 카톡 알림음에 흘낏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니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득 품은 이모티콘과 함께 어머님의 길고 따스한 인사 글이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과한 인사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쑥스러운 웃음이 번지면서 지난 몇 개월의 폭풍 같았던 일들이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새록새록 머리에 떠올랐다.
 

코로나로 아이들 등교가 미뤄지고 오후 내내 교문 앞에 서서 한 보따리씩 포장한 교과서와 학습 꾸러미를 들고 지나가는 자동차마다 고개를 빼며 낯선 미소를 연신 지었던 일. 온라인 수업을 위해 핸드폰 카메라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영상을 찍었던 일. 어떻게든 등교 개학 전에 아이들 얼굴을 익혀보겠다고 학부모님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며 사람 얼굴 기억 잘하는 것도 재주라는 것을 느꼈던 일. 아이들을 만나는 날 그동안 익혔던 사진과는 다른 분위기여서 적잖이 당황했던 일. 오후 내내 촬영한 영상에 문제가 생겨 동영상 편집하다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찔끔거렸던 일.
 

올 한해는 교직 생활 20여 년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롭고 당황스러운 일들의 종합선물세트를 받았던 특별한 해였다.
 

"학교에 오면 내가 너희의 엄마야."
 

해마다 아이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이 말이 무거운 책임감의 갑옷이 되어 나를 옥죄었던 것 같다. 1학년 담임교사로 학교생활의 첫 시작을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맞이하는 아이들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찰나도 허락하지 않는 현실은 치열함과 걱정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밥 먹이는 일을 매일 걱정해야 했고, 열이 나는지 체크하고 수시로 만지작거리며 마스크 끈을 끊어 버리는 아이들의 마스크 관리까지 해야 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집안 살림하듯 매일 교실 구석구석을 쓸고 닦아야 했으며, 아이들 자리를 꼼꼼하게 소독하고, 소독약과 손 소독제가 부족하지 않는지 챙겨야 했다. 다음 날 수업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학습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보내며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처럼 허둥지둥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내가 보육교사인지 방역 담당자인지 영상 편집자인지 교사인지 여러 혼란스러운 정체성 속에서 아수라 백작이 된 기분으로 매일 매일을 보낸 것 같다.
 

정식 등교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돌봄 아이들은 학교에 계속 나왔다. 긴급 돌봄 문제가 불거지면서 원격학습 도우미, 돌봄 도우미 등 새로운 인력을 찾기에 학교가 바빠지기 시작했고 학교 안에서도 저마다의 입장과 생각이 달라 충돌했다. 매일 학교에 오는 아이들도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없던 정신이 돌아오자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희 반 긴급 돌봄 아이들은 제가 보겠습니다."
 

이런 나의 결정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예년 같았으면 당연히 교실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었고, 담임교사도 매일 학교에 출근하고 있는 마당에 구태여 우리 반 아이들을 다른 교실에 있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눈과 마음에 담으면서 수업 동영상에 어떤 것을 담아낼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온라인 수업만 듣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학부모님들을 통해서 아이들의 학습 결과를 통보받자니 아이들이 나와 부모님 사이 어딘가에 존재는 하는데 손에 닿지 않는 허상처럼 느껴졌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아이들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실제로 만나고 싶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줌을 시작했고, 선생님과 ‘영상통화’를 매일 한다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힘듦을 보람이라는 감정 속에 숨기며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긴급 돌봄으로 학교에 오는 아이들과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같이 연결해보겠다고 교실에서 같이 줌을 열었다가 아비규환의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함이 가져온 대단한 용기였던 것 같다.
 

줌을 통해 온라인 수업을 따라오는 정도가 확인되자 제대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님들께 연락드려 가정에서 함께 돌봐주시기 어렵다면 무조건 학교로 보내시라고 부탁드렸다. 당연히 오는 학교인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렇게 하나둘 교실에 오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줌 화면에서 보이는 아이들 창이 한 페이지로 끝나는 날도 점점 늘어났다. 아이들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급식실에 연락해서 급식을 조금씩 늘려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일도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흔쾌히 받아주셨던 학교 영양사님께도 정말 감사했다.
 

코로나로 인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전략에 익숙해지자 예년과 같이 교실 시스템을 가동하고픈 욕심이 눈을 들었다. 한글교육과 독서교육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기 시작했고 기초학력을 잡아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거리 두기를 감안한 밀착지도에 들어갔다. 등교 개학 전부터 학부모님들과 주고받던 단체 카톡방은 개인 카톡방으로 세분화해 각 방에서 거의 매일 알림을 울려댔다. 
 

그렇게 애쓴 결과였을까? 올해 우리 반에서 한글 미해득으로 교육청 보고하는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를 나 혼자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매우 뿌듯한 결과라 여기며 잘했다고 격려하고 싶다.
 

반쪽짜리 같은 1학년 생활이었지만 아이들의 첫 학교생활을 궁금해할 부모님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학부모 상담 기간도 만들었다. 대면 상담을 희망하시는 부모님들은 마스크를 끼고 거리를 유지한 채 교문 앞에 서서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쭈뼛쭈뼛 멀찍이 서서 나누는 학부모와의 상담이 때론 어색했지만 짧은 만남 속에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아이들에 대한 또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상담을 나누면서 접한 한 어머님의 고백이 2020년의 작은 구슬들을 한 줄로 단단히 꿰어 주었다.
 

"솔직히 올해는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아이들 등교일도 얼마 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시기라 아이의 첫 학교생활에 대한 실망감에 속상함만 커질까 두려웠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이 와중에 선생님이 해주신 교육 속에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제 아이는 엄청 성장한 것이 보여 감사하고 이것이 가능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로는 부족한 한해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내년도 담임 선생님으로 만나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의 사랑 표현도 남다르다. 툭하면 종합장에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실물보다 더 젊고 예쁜 모습의 마스크 낀 내 얼굴을 그린 작품을 자주 선사하고 생각날 때마다 여러 가지 종이접기 작품을 선물이라고 내민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주머니에 챙겨온 마이쭈를 강아지 간식 주듯 매일 하나씩 건네는 아이도 있고 어느 날 불쑥 보고 싶다는 영상편지를 카톡으로 보내는 친구도 있다. 올해 아이들의 편지에는 사랑한다는 말과 공부를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는 인사가 특히 더 많이 등장한다. 
 

학교에서는 내가 너희들이 엄마라는 말을 처음 건넸을 때는 "네에?"라며 놀란 토끼 눈을 뜨던 아이들이 이제는 "맞아요. 선생님은 엄마 같아요." 쉽게 인정한다. 자기도 모르게 "엄마. 아, 아니지." 하며 멋쩍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도 자주 본다. 솔직히 아이들과 함께 한 모든 순간에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텅 빈 교실에서 나의 유치한 말과 행동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반성하는 날도 꽤 많았다. 하지만 다른 어떤 해보다도 올해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보내주시는 사랑과 감사와 인정의 말들이 더욱 특별하고 감사하게 다가온다. 
 

코로나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던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힘든 과정에서 시곗바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차곡차곡 시간을 채웠다.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과의 시간 속에서 더 엄마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듬어야겠다. 아이들이 힘든 사회가 주는 상처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기를,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채우는 시곗바늘처럼 생채기에 대한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쑥쑥 잘 성장하도록 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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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더 많은 열매 맺는 교사 될 것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가 매우 힘겨운 한 해를 보냈습니다. 교육계도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과 원격 수업의 시행으로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20여 년의 교사 경력 동안 처음 겪었던 다사다난한 한 해를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이 교단 수기 공모까지 이어졌고 수상의 영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걱정과 염려 속 한 해의 기록들을 수기라는 형식을 빌려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으로 글을 적었지만, 되돌아보니 여러분들의 큰 도움이 함께 녹아있었습니다. 아이의 첫 학교생활을 혼란 속에서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했던 학부모님들께서는 걱정의 마음을 뒤로하고 누구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학교생활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답답한 마스크 안으로 감추며 지내야 했던 1학년 학생들은 어른들의 걱정을 잠식시키며 누구보다 씩씩하게 한 해를 잘 지내주었습니다. 어느 해보다 힘들고 정신없었던 한 해였지만 비가 온 뒤 땅이 더 단단하게 굳는다고 더욱더 많이 성장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교단 수기 수상으로 마지막까지 따스하게 채워주시니 올해가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기억되리라 생각됩니다. 건강하고 힘있게 성장해 더 많은 열매 맺는 교사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임미현 경기 왕방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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