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수기 동상] 징검다리 선생님의 결혼 30주년

2021.11.29 16:57:38

 

교사의 중요한 정체성은 학생 성장의 디딤돌 역할과 연결고리가 되는 징검다리 역할에 있다고 본다. 성장기에 잠재력을 톡 터뜨려 학생들이 지닌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일, 자신과 만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이야말로 교직 생활의 보람이다. 
 

2016년 11월. 결혼 30주년 리마인드 웨딩을 졸업생 부부들과 함께했다. 학업은 느리지만, 자신의 꿈을 나누고 미래를 얘기하곤 했던 40대 후반 제자가 있었다. 그는 꿈꾸던 펜션형 문화공간을 강원도 홍천에 만들고서 선생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열어주고 싶다고 제안했다. 망설였지만 멋지고 귀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싶었다. 장소는 제자가 꿈꾸었던 공간에서, 식사 및 제반 비용은 내가 제공하는 조건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품을 거쳐 간 많은 졸업생 중에서 소수를 선별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어서 나름 엄격한 기준을 정했다. 우리 집에 부부가 방문했거나 외부에서라도 우리 부부와 함께 만난 적이 있는 20대에서 40대까지 졸업생 명단을 적어보니 33쌍이었다. 그들 중에 상황이 허락된 20쌍과 함께했다. 그중 3명의 졸업생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3명은 중학 시절 담임 반이었던 현재 30대 J(남)와 40대 H(여)와 그녀의 30대 여동생이다. 성실하고 진실한 삶의 태도를 지닌 제자들과 그들의 삶에 동참하고 개입한 징검다리 교사의 만남으로 서로가 연결되면서 열악한 환경을 넘어선 감동에 대한 것이다. 

 

지난주 아침에 카톡과 함께 날아 온 ‘케이크와 커피’ 쿠폰. "선생님! 바람이 점점 차게 부는 게 겨울이 다가오고 있네요." 지금도  J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촉촉하게 젖곤 한다. J의 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 오래전 막내아들 담임 선생님에 대한 기도를 지금도 하신다고 한다.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다. 
 

2005년에 중 3이었던 J는 주변에 친구가 많고 외모도 깔끔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빚보증으로 인해 갑자기 어려워진 경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던 아이였다. 보통 때는 티가 안 나는데 돈을 낼 일이 있으면 얼굴이 어두워졌다. J네는 2층 양옥집에서 살다가 고양시 벌판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살게 됐다. 하루아침에 바뀐 기가 막힌 현실 속에 국가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허덕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그해 그동안 쭉 연락하고 지내던 H가 학교로 찾아왔는데 다른 때와 달리 우리 집 앞까지 차로 태워다 준 후 내리는 내 손에 청첩장을 쥐여 준다. 그리고 급히 떠났는데 봉투 안에는 청첩장 외에 30만 원이 있었다. 그 안에 ‘중학교 때 버팀목이었던 학교와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기처럼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도움이 되고 싶다’는 쪽지가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안 받을까 봐 마음을 쓴 것이었다. 그 귀한 마음을 당시 우리 반이었던 남학생 J에게 전달했다.
 

H가 준 30만 원을 보내고 난 후 J의 아버지께서 눈물로 보내주신 5장의 편지는 교사로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 30만 원이 없어서 비닐하우스에서조차 살 수 없는 현실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절박했던 30만 원이었고 하늘이 도왔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2015년인 5년 전 J가 장가가던 날. 결혼식장에서 하객을 맞이하던 신랑은 나를 옆으로 데려가더니 속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줬다. 20만 원과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 …이것은 꼭 선생님을 위해서만 쓰셔야 해요. "
 

눈물이 났다. 부끄럽지만 당시 나는 남편의 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로 카드조차 막히게 된 상황이었기에 너무 커다란 선물로 다가왔다. J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큰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 또 한 가지 감사한 일은 J는 가정 형편으로 인해 대학을 가지 못했지만,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개근을 하고 성실한 생활태도는 인정받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 S 전자에 취직하는 쾌거를 이뤄내었으며 현재는 4살 딸 바보 아빠로 아내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J에게 큰 선물을 하게 된 H. 1994년. 중3이었던 H는 다른 교사들이 예쁜이라 부를 정도로 인기 있고 재주 많은 학생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이혼, 새엄마의 학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치매 할머니 돌보기,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 참 견디기 힘든 환경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예쁜 학생이 그런 슬픔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학교에서 매우 친한 친구와 담임교사밖에는 몰랐다. 오랜 세월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만난 학생 중에 손 꼽을 정도로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며 사춘기를 보낸 학생이다. 너무 힘든 날은 울면서 우리 집으로 왔는데 따뜻한 밥도 해 먹이고 용돈도 주고 잠을 재우기도 하였다. 3년 후에 입학한 동생도 담임을 맡게 되었고, 언니 이상으로 담임 선생님을 따르던 동생은 거의 매일 아침이면 교무실에 와서 어제의 일상을 얘기해주곤 하여 나와 그 자매는 특별한 인연을 맺으며 지냈다. 슬픈 소설 같은 인생 속에서 빨강 머리 앤처럼 살아왔던 자매는 현재 전문직을 갖고 있으며 정말 열심히 삶을 살아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의 생일 즈음이면 남편과 자녀들까지 축하해주러 찾아오곤 했다. 
 

나의 30주년 리마인드 웨딩은 이렇게 사연 깊은 졸업생들을 위한 만남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리마인드 웨딩이 펼쳐진 그 날은 교사생활의 최고의 날이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부산, 울산, 세종, 인천, 수원, 서울 등지에서 온 졸업생들이 홍천에 모여 선생님의 결혼 30주년 리마인드 웨딩을 기념하며 결혼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한 선생님 가정 및 선후배의 삶을 통해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제자들에게 사전 공지했다. 선생님이 주인공이 아니고 모두를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이니 선생님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지 말 것, 자신의 배우자를 전체 앞에서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알렸다. 선물을 준비해오지 말라는 선생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제자들은 저마다 마음을 가져왔다. 사진, 노래, 들꽃, 시, 편지…. 오는 길에 아내의 머리카락을 소아암 어린이들 가발 만드는 곳에 기증하고 긴 편지를 써오는 감사한 일도 있었다. 1부에서는 아들의 사회와 남편이 준비한 주례사와 세 부부의 축가로 결혼의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2부에서 뷔페로 식사를 나누며 동문과 가족이 친교를 하고, 3부에서는 각자의 배우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선생님 중심으로 모인 그 자리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공감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 아름다운 그 날을 위해 부부끼리 더욱 돈독하게 지냈다며 웃는 모습.‘러브 액추얼리’의 광경처럼 배우자 몰래 스케치북에 준비해 와서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배우자를 울리는 모습. 서먹했던 부부가 어색해하다가 서로의 깊은 마음을 얘기하고 읽는 모습. 잊었던 마음이 살아나고 추억을 꺼내 들며 나의 사랑을 얘기한다. 흐르는 눈물 속에 아름다운 선율이 퍼지고… 이건 너무 감동이다. 교사로서 최고의 시간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유와 회복이 30여 년의 세월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 함께 있는 이들이 숨죽이고 들여다보며 같은 숨을 쉰다. 행복한 만남이다.

 

교사가 되어 살아온 것이 너무 감사하다. 왜 교사를 하느냐는 본질적인 질문 속에 학생들이 자아 정체감 속에 행복을 찾아가는 데 매개체가 되고 싶다는 대답을 늘 해왔던 나. 그날은 징검다리 교사로서 역할을 충분히 한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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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교사의 삶은 축복이다

 

38년 동안의 대서사시. 짧은 글로 풀기가 어려웠다. 또한 사랑하는 제자들의 사생활은 최대한 보장해 주고 싶어 조금은 겉돌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 교단에서 선물 받은 기적같은 일들과 함께한 진한 감동은 교직의 길을 걷는 후배들과 살짝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그중에 한편 밖에 못 나눴지만….

 

글에도 썼지만 2016년 결혼 30주년 기념일에 제자들 20쌍 부부와 함께했던 리마인드 웨딩은 교사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꽃봉오리 중학생 때 만나 20대, 30대, 40대, 50대를 보내고 맞이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 매번 눈물로 듣기도 하고 함께 해결하려 뛰기도 하며 기쁨도 슬픔도 깊은 마음으로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들.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 시간을 한 명의 선생님의 삶 속에 함께 했던 선후배가 모여 한 울타리 안에서 예식을 진행하고 식사하고 각자의 짝꿍을 소개하며 일어난 역동. 오우! 눈물꽃, 웃음꽃 모두 폈다. 기독교사로 존재케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행복한 만남의 길을 걷게 진심으로 함께한 내 짝꿍 염준길 님과 가족들, 그리고 친애하는 동료교사들과 선생이라 불러주는 수많은 제자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홍정희 서울 영락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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