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간에서 인레까지 미얀마 여행

2022.07.05 10:30:00

 

비행기는 늦은 밤에서야 양곤 국제공항에 바퀴를 내려놓았다. 버스를 타고 호텔에 들어온 시각은 새벽 한 시. 입국장부터 따라온 모기가 침대에 누웠는데도 귓가에 윙윙거렸다. 잡아야지, 잡아야지 하며 서너 시간 눈을 붙였을까. 알람이 울렸고 다시 바간으로 가는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바간, 낮잠의 도시

1시간 20분 동안의 비행. 냥우 국제공항에 도착해 거리로 나오니 동남아시아 특유의 시끌벅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첫 목적지는 냥우 시장이었다. 냥우는 바간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도시다. 바간은 바간왕조와 불교의 주요 유적지가 위치한 ‘올드 바간’, 휴양시설이 몰려있는 ‘뉴 바간’, 행정청과 시장 등 도시의 주요 기능이 몰려 있는 냥우 지역으로 구분된다. 냥우에는 그다지 볼만한 것은 없지만, 재래시장인 ‘냥우 시장’은 많이 찾는다.

 

시장 입구부터 상인들이 팔꿈치를 잡아끈다. 얼굴에 바르는 타나카를 뺨에 슬쩍 발라주며, 선물이라고 내밀고는 1달러를 달라고 계속 쫓아다닌다. 미얀마 사람들이 외모에서 다른 동남아시아 사람들과 구분되는 점은 얼굴에 바른 타나카다.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로 타나카라는 나무의 가지를 돌에 갈아 가루를 낸 뒤 물과 섞어 바른다. 직사광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고 보습 효과도 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 중 반은 이 타나카를 바르고 있다.

 

시장에는 롱지를 입고 타나카를 바른 사람들로 가득했다. 롱지는 미얀마 전통의상이다. 치마처럼 생겼는데 발목까지 내려온다. 남자들이 입는 것은 파소, 여자들이 입는 것은 타메인이라고 부른다. 보기에는 ‘스윽’하고 입으면 될 것 같지만 막상 입으려고 하면 좀 어렵다.

 

타나카를 얼굴에 발라준 소녀는 아직도 팔꿈치를 잡아끌며 1달러를 달라고 조르고 있다. 주고 싶지만, 지갑을 버스에 두고 왔다. “미안해, 난 돈이 없어.” 소녀는 약간 실망한 눈빛으로 바지 주머니에 타나카 하나를 넣어준다. “돈 없어도 돼. 이건 그냥 선물이야. 미얀마를 여행하려면 필요할 거야. 햇볕이 따갑거든.”

 

문득 일본의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책 <동양기행>에서 본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후지와라 신야가 양곤을 여행하던 중 뜨거운 뙤약볕 아래 노천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어떤 아이 두 명이 그의 등 뒤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후지와라는 그 아이들이 소매치기일까 의심하며 배낭을 꼭 안고 국수를 다 먹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 갈 길을 갔다. 후지와라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저 아이들은 소매치기냐고 물었는데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아이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땡볕 아래에서 쌀국수를 먹는 이방인이 너무 더울까 봐 그들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나는 바간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타나카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바간은 미얀마 이라와디강 동쪽에 자리한 도시다. 11~13세기 버마족은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아 바간왕조를 세웠다. 2,000여 기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아득한 들판을 메우고 서 있다. 바간에는 고고학 구역이 있다. 서울 강남구 면적과 비슷하다. 불탑은 이곳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불탑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사원 안에 자리를 펴고 낮잠을 잔다. 여행자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 탑과 탑 사이를 건너다닌다. 가이드북에는 ‘바간에서는 사방 어디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켜도 반드시 불탑을 볼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며칠 머물며 주요한 불탑과 사원을 돌아본다. 금장식이 화려한 쉐지곤(Shwezigon), 파고다와 건축미가 빼어나고 내부에 불상과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아난다(Ananda) 사원 등이 반드시 봐야 할 곳이다.

 

 

옛 영화는 없고, 만달레이

이튿날 바간을 떠나 만달레이로 갔다. 냥우 국제공항에서 8시 30분 날아오른 야다나폰 항공 7y131 편은 이륙 후 16분 만에 착륙 안내방송을 했다. 스튜어디스가 나눠 준 사탕 하나를 다 먹기도 전이었다. 비행시간은 24분. 하지만 차로 가면 여덟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니 바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는 삼륜 오토바이와 자동차·마차로 북적였다.

 

미얀마 정중앙에 자리한 만달레이는 약 200만 명이 넘게 사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미얀마가 19세기 중엽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수도였다. ‘황금의 도시’로도 알려졌던 이 도시는 19세기에 버마왕국 최후의 왕족들이 건설했다. 만달레이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왕궁이다.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뿌라에서 이곳으로 천도하고 지었다. 성벽의 높이가 8m나 된다. 1885년 영국군이 미얀마를 점령했을 때, 영국군은 왕궁을 클럽으로 이용해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1942년 일본군에 함락했을 때는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의 왕궁은 1990년 복구된 것이다. 높이 33m의 전망대에 오르면 왕궁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우베인 다리도 유명하다. 타웅타만 호수를 가로지르는 1.2km의 다리다. 1850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다. 당시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잉아궁전을 짓다 남은 티크목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 굳건하게 버티던 다리기둥은 양식사업을 위해 호숫물을 가두는 바람에 썩기 시작해 지금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교체하고 있다. 다리 기둥 수는 무려 1,086개에 달한다.

 

 

쿠도더 사원도 특별한 곳이다. 사원 경내에는 하얀색 탑이 무려 729개나 있다. 탑마다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안치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별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책’(The World’s Biggest Book)이다. 미얀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핫스팟으로 불리는 곳이다.

 

인타족의 영역, 인레 호수

다음날 다시 인레 호수로 향했다. 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의 리조트에 체크인을 하고 다시 배를 30분이나 타고 나가 점심을 먹었다. 샨족 전통요리라고 했는데 중국 광둥요리와 비슷했다. 호수는 해발 880m 고원지대에 자리한다. 호수 주변에는 1,2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의 넓이는 충주호의 두 배쯤(116㎢) 된다. 길이는 22km, 폭 11km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 위의 수상마을만 스무 곳에 달한다. 미얀마에는 160여 개의 소수민족이 살아가는데, 이곳 인레 호수에는 샨족·인타족·파오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사는 부족은 인타족이다. 미얀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타족의 75%인 8만여 명이 호수 주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은 장대로 물을 내리쳐서 고기를 잡고, 배를 타고 한 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를 가로지른다. 한발은 배 위에 딛고, 노는 다른 발 장딴지에 끼워 젓는데, 드넓은 호수에서 방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통옷을 입고 삿갓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노를 젓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주기 위해 공연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어부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평상복을 입고 그물질에 열중이다. 고기잡이 외에도 이들은 갈대와 대나무를 이용해 물 위에 밭을 만들어 수경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대부분의 인타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호수 위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티크목을 호수 바닥에 꽂아 기둥을 세운 뒤 수상가옥을 짓는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호수 위 상점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연줄기에서 실을 뽑아내 천을 만드는 마을, 은세공 상점, 목이 긴 카렌족 가옥 등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여자는 관광객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팔려고 하고 남자들은 의자에 누워 꽁야를 씹고 있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테마파크 같다.

 

여행은 언제나 옳다

인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공항이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공항 대합실에서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여행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떠나는 일, 잊는 일, 보내는 일 그것은 어쩌면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가 놓는 일일 지도 모른다.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는 덧없지만, 모래를 쥐었던 손의 감촉은 남아있겠지. 그 옛날 소중했던 일이 지금은 아무 일도 아니듯, 지금의 간절한 하루 역시 먼 훗날에는 한낱 사사로운 일이 되어 희미해질 것이다. 새로운 기억을 시작하기에 공항만한 곳이 또 있을까. 그나마 우리에게 다행인 건 우리가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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