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문화의 찬란과 만나다 서안(西安)

2022.08.05 10:00:00

 

중국 산시성 서안(西安)은 아테네와 로마 못지않은 고도다. 13개 왕조의 도읍이자 한때 당나라의 수도 장안이기도 했던 이곳에는 진시황의 유적인 병마용갱을 비롯해 양귀비가 노닐던 화청지, 실크로드를 증언하는 회족거리 등 찬란한 중국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병마용갱, 세계 8대 불가사의

중국 산시성의 성도인 서안은 약 3,000년의 깊은 역사를 지닌 도시다. 역사상 서주·진·서한·신망·동한·서진·전조·후진·서위·북주·수·당 등 역대 13개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와 육국을 통일한 진시황과 항우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한 고조도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 이집트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로도 꼽힌다.

 

서안은 우리에게 당나라의 장안(長安)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당나라는 세계 최강 제국으로 인구가 200만 명에 육박했을 정도로 번성했다. 온 세계에서 사신과 상인들이 몰려드는 국제도시였고, 외국에서 방문하는 사신만 해도 연간 수천 명에 달했다. ‘구중궁궐 대문이 활짝 열리니, 만국 사신들이 황제에게 절을 올리네( )’. 당나라 전성기인 8세기에 활동한 시인 왕유가 수도 장안을 묘사한 시구다. ‘장안의 풀로 태어나는 것이 변방의 꽃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가 바로 서안이다.

 

서안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과 같다. 중국의 첫 통일왕조인 진나라 시 황제 때 만들어진 병마용갱을 비롯해 당나라 측천무후 때 세워진 대안탑, 당 현종과 양귀비가 노닐었던 화청지 등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유적 가운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병마용갱과 진시황릉이다.

 

병마용갱의 발견은 우연이었다. 1974년 3월 29일 서안시 외곽, 양신만(楊新滿)이라는 사람은 우물을 파다가 ‘쨍’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가 이상해 땅을 더 파고 들어가니 토기 파편들이 무더기로 발견된다. 그가 발견한 것은 바로 진시황의 병마용 종장갱(從葬坑·부장품을 넣어둔 구덩이)이었다. 2,200년 동안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진나라 대군들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1976년 1호 갱의 북쪽에서 2호 갱과 3호 갱이 연이어 발견된다. 1~3의 숫자는 발굴 순서에 따라 붙인 것으로 가장 큰 1호 갱은 길이 230m, 넓이는 62m에 이른다.

 

 

1호 갱에 들어서면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정면을 바라보며 도열해 있는 6,000여 기의 병사들 앞에 서면 ‘아~’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조각 하나하나의 표정이 제각기 다르고 생생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 병마들은 그 옛날 한·위·초·연·조·제 등의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던 진시황제의 정예부대들이다. 병사들은 모두 전방을 향해 서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이들의 손에는 무기가 없다는 것.

 

병마용갱 앞에는 발굴품을 전시하는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이 자리한다. 이곳에는 유명한 청동마차도 보관돼 있다. 진시황 사후 2,200년 후에 발견된 것으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이 마차는 발굴 당시 완전히 깨어진 상태였는데, 1980년부터 8년간에 걸쳐 천여 개에 달하는 조각들을 이어 붙여 복원했다고 한다. 크기는 실물의 절반 정도인데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을 보면 당시 주조 기술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병마용갱의 발견은 중국을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1978년 병마용을 관람하고는 “현존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진시황 병마용의 발견으로 인해 8대 불가사의가 됐다”며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으면 진정으로 이집트를 여행한 것이 아니고, 병마용을 보지 못했다면 진정으로 중국을 여행한 것이 아니다”라고 극찬했다.

 

진시황릉은 병마용갱에서 약 1.5km 떨어져 있다. 기원전 246~208년 36년에 걸쳐 70만 명이라는 대인원이 동원돼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76m, 동서 폭 345m, 남북 길이가 350m에 이르는 능 앞에 서면 마치 커다란 산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발굴이 되지 않아 그냥 멀리서 능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양귀비와 당현종의 애틋한 사랑

화청지(華淸池) 역시 서안을 찾은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당나라의 왕실 원림이었던 화청지는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6,0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43℃의 온수가 나오는 온천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주(西周) 유왕(幽王) 때부터 이곳에 탕을 만들었고, 총 9명의 황제가 이곳을 피한지로 삼았다고 한다.

 

화청지는 또 다른 중국 근대사의 큰 사건인 1936년 서안사건(서안사변)의 현장이기도 하다. 서안에 주둔하던 동북군 총사령관 장쉐량이 이해 12월 12일 이곳에 머물고 있던 총통 장제스를 급습해 체포한 뒤 홍군 토벌 중지 및 항일전쟁을 위한 제2차 국공합작을 종용했던 것이다. 당시 장제스가 머물던 관저에는 서안사건 때의 총격전 흔적이 남아 있다.

 

서안 도심 곳곳에도 볼거리가 널려 있다. 서안 한복판에 자리한 서안성곽은 당나라 성곽을 기초로 명나라 때 다시 만들어진 것. 둘레가 13.6km에 달한다. 자전거로도 한 바퀴 돌아보는데 한 시간 이상이 넘게 걸린다. 본래 당나라 장안성은 이보다 7배는 족히 컸다고 전해지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대안탑(大雁塔)은 당나라 고종 때 만들어진 탑이다. 모두 7층으로 전체 높이는 64m에 달한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서안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중국 고전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한 뒤 보관한 곳으로 유명하다.

 

비림(碑林)은 말 그대로 비석의 숲. 서안 일대에서 출토된 석각 비문 2,000여 개를 한데 모아놓은 곳이다. 당 현종·왕희지·안진경 등의 작품도 볼 수 있어 서예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필수 코스로 꼽힌다. 주·진·한·수나라의 유물·유적 등을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는 산시역사박물관도 가볼 만하다.

 

화산, 수묵의 세상을 오르다

어렸을 적 무협지를 즐겨 읽었던 30대 이상 세대들에겐 ‘화산파’가 익숙할 것이다. 서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중국의 ‘오악(五岳)’ 중 하나인 화산(華山)이다. 오악은 중앙의 숭산, 동쪽의 태산, 남쪽의 형산, 북쪽의 항산, 그리고 서쪽의 화산을 일컫는다.

 

화산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중화(中華)’의 ‘화’가 바로 이 화산의 ‘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오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제일 높고 산세가 험해 오래전부터 무림 고수들과 수행자들이 즐겨 찾은 곳이다. 도교 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한 화산에는 총 21개의 도교 유적지가 있다.

 

산 아래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케이블카 입구로 갈 수 있다. 6명이 꼭 붙어 앉을 정도의 작은 케이블카를 타면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정상으로 올라간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감히 창밖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아찔하지만, 경치만큼은 태어나서 다시 보지 못할 절경이다.

 

중국에서 만나는 이슬람 문화

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비단과 도자기를 비롯한 중국 수공예품이 아랍세계로 전해지던 교역로였던 실크로드는 한나라 때 처음 개척돼 당나라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사람과 물품이 오갔다. 불교와 기독교 전파도 이 길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당나라 시절 천축에서 불경 600권을 들여와 불교 중흥을 이끈 현장법사,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횡단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 고승 혜초도 이 길을 걸어갔다. 길은 서안에서 출발해 지중해 연안까지 장장 7,000여 km에 걸쳐 이어진다.

 

서안 중심에 자리한 ‘종고루 광장’은 서안 시내 중심에 위치한 ‘종루’와 ‘고루’ 사이에 위치한 광장으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번화가다. 이곳 뒤편에 위치한 회족거리는 옛날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무역을 하던 회족들이 자리를 잡고 이루어 놓은 시장이다. 회족은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지만 인구가 900만 명에 달한다. 서안에만 5~6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 가면 흰 모자를 쓰거나 두건을 두른 회족들이 양꼬치와 해산물 꼬치는 물론 면·러우자모·양러우파오모 등 산시성 특색 음식과 호두·곶감 등 각종 먹거리를 판다. 이슬람 글씨도 곳곳에 눈에 띄어 이국적 느낌을 자아낸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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