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안전하게 수업할 순 없을까?

2022.08.05 10:30:00

때리고 욕하고 신고하는 무서운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게다가 문제행동을 일삼으며 폭주하는 학생들의 연령이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최근 몇 년새 초등학생들의 학교폭력이 늘어난 것도 무관하지 않다. 이제는 초등 4학년만 돼도 교사의 통제권을 벗어나 버린다고 한다.

 

전북 익산 한 초등학생의 문제행동이 교직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학교폭력 가해자로 강제전학 처분을 받고 전입한 학교에서 반성은커녕 학생 폭행을 일삼고, 이를 말리던 담임교사와 교장·교감에게까지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했다. 심지어 소란을 제지하면 아동학대라며 경찰에 신고까지 하는 등 거침없이 폭주했다.

 

이번 사건이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이같은 현상이 교육현장에서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두 번쯤 경험했거나 경험담을 통해 익숙해진 탓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교사들은 좌절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고 「아동학대방지법」이 버티고 있는 한, 교사는 무력한 존재다. 자칫 아동학대범으로 몰리기라도 하면 교직을 내놓을 각오로 맞서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학생에 대한 치유와 함께 교원에게 실질적인 생활지도권 부여, 문제행동 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교사의 생활지도와 훈육에 필요한 교육적 권한의 제도적 뒷받침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호는 소위 문제학생·부적응학생이 교육활동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을 다룬다. 먼저 교사의 교권은 물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실태와 함께 교사들이 어느 정도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지 살펴본다. 이어 교육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생활지도법 제정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학생들의 위협으로부터 교사의 안전을 지켜줄 교원보호정책는 어떻게 보완돼야 하는지 현장교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통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북 모 초등학교 학생의 경우처럼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한 전문가 의견도 들어본다.

 

 

교단에 선지 4년 차가 되던 해의 일이다. 그때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학기 초반부터 여름 때까지 나는 어떻게 하면 교사를 그만둘 수 있을지, 다른 직업에 도전한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매일 같이 고민하던 중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소화불량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출근길이 지옥으로 걸어가는 통로처럼 느껴졌고, 운전하다가 차 사고를 내면 출근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어리석은 마음으로 사고를 내고 싶은 충동에 자주 휩싸였다.

 

남들이 보면 회사 거래처에서 갑질을 당하거나, 상사나 동료에게 말 못 할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가 겪은 고통은 직장인이 흔히 겪는 고통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직장 내 고통의 근원이 11살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11살은 길에서 만나면 어른들이 도움을 줘야 할 존재고, 슬쩍 봐도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한창 귀여울 때이며,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 해도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법적 처벌도 면하는 나이이다.

 

이런 이유로 교사가 아닌 친구에게 학교에서 어떤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해봤자 돌아오는 반응은 “그래 봐야 어린 애가 아니냐”는 전혀 공감받지 못하는 응답뿐이었다. 상급자가 괴롭히면 각종 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갑질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학교의 주인인 ‘어린이’가 교실을 붕괴시키는 건 법으로든, 단체든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교사가 강경하게 대처할 경우, 아동학대로 신고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은 그 아이

나를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만든 우리 반 A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벌어지면 수업 중에도 상대가 교사든 학생이든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다. 반응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소리 지르는 A를 무시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A의 신경에 거슬리는 일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일어났고, 그때마다 악을 쓰는 A를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아이를 붙잡고 상담하고, 학부모와도 상담했지만, A의 상태는 더 악화될 뿐이었다. A는 언제부턴가 나에게도 막말이나 폭언을 하기 시작하더니,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시시때때로 폭력을 썼고, 교실의 폭군이 되었다.

 

A가 교실에서 한껏 흥분해서 친구를 때리는 상황에서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A를 막기 위해 몸에 손을 대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소리를 질러도 아동학대, 교실 밖으로 내보내도 아동학대, 교실 한쪽에서 뒤를 보고 앉게 해도 아동학대였다. 성인이자 교사인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A가 위협적으로 느꼈다면 전부 정서적·신체적 아동학대에 해당했다. 게다가 정상적인 수업운영을 하다가 아동학대로 고소당한 교사들의 사례가 종종 들려오고, 그들이 무죄로 끝나기까지 어떤 정신적·금전적 피해를 겪는지 자세히 봤기에 더욱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은 기껏해야 난동이 일어날 때마다 교감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고 학부모를 학교로 부르는 것이었다. 더불어 학교폭력예방교육과 친구사랑교육 같은 것들도 꾸준히 했지만, 하나 마나 한 일들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A를 제외한 우리 반 아이들이 교실에서 상처받고 괴로움을 겪는 걸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A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말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당하고만 있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학습된 무기력이 아이들에게서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은 유순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없었기 때문에 A가 때려도 맞고 있거나 울기만 했다.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교사로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차라리 학부모가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A는 여름이 지나고, 다음 학기에 본인의 집 가까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교감선생님과 나, 학부모 셋이 모여 기나긴 상담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A가 떠나자, 교실은 빠르게 정상을 되찾았다. 반년 만에 교실에 평온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 A는 여전히 비슷하게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A의 전학은 그야말로 폭탄 돌리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겨울 언젠가, A가 다시 우리 학교로 전학 온다는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돌았다. 나도 아이들도 그 소식에 너무 깜짝 놀라서 교실은 순간적으로 정적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A가 우리 반으로 돌아오면 안 된다’고 아우성쳤다. 다행스럽게 소문은 소문으로 끝났고, 그 뒤로는 A를 다시 볼 수 없었다. A는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지옥 같았던 하루, 술을 버티던 시간들

교사라면 아이가 교실을 붕괴시키는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나 통계가 없다. 내가 겪었던 일 역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고, 우리들의 기억에만 남아있다. 당시의 나는 교사를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인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지 않고 넘어갔다. 교권보호위원회는 학생이 그 학교에 재적하는 순간에만 강제력이나 구속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즉, 학생이 전학을 가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린다고 학부모에게 통보하는 순간, 전학이 쉬운 초등학교에서는 바로 옆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이 순순히 징계를 받는 비율과 옆 학교로 전학 가는 비율이 어떤지 궁금할 정도다. 이렇게 도망치듯 가버리면, 교사는 학생에게 반성의 말조차 들을 기회가 없다. 교권보호위원회 절차를 밟는 것조차 학교구성원 누군가가 행정적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무기력함에 찌들어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힘들 때, 주변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며 학생 때 자신이 교사에게 얼마나 많이 맞고, 폭언을 들었는지 떠들었다. 나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부당한 체벌이나 처벌을 당했었다. 그런데 2010년에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나서 어른 세대가 학교에서 겪었던 부당한 체벌이나 처벌들은 정말 거의 다 사라졌다. ‘라떼’를 말하는 사람이 보면 천지개벽할 정도로 학교가 바뀌었다. 이제 어른인 교사가 어린 학생을 때리는 건 너무 희귀하고 드문 일이라 사건이 발생해야만 뉴스에서 다뤄 줄 정도가 되었다. 반대로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건 통계에 잡히는 것만 이틀에 한 번꼴로 일어난다. 방학을 제외하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까지 따지면 매일 학생이 교사를 때리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학생의 교사 폭행은 너무 흔해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학생이 교실을 날려버리는 정도는 돼야 뉴스에서 다뤄준다.

 

교사들이 학생 때문에 얼마나 많이들 정신질환에 걸리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이 휴직하는지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교사이기에 우울증·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흠이 될까 봐, 참고 참다 병을 키운 다음에서야 머뭇거리며 정신과가 아닌 상담센터를 찾아간다는 사실도 안타까울 뿐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주변의 몇몇 교사가 교권침해로 고통을 겪다가 휴직에 들어갔다. A와 함께했던 시간 동안 내가 겪었던 증상들도 돌이켜보면 전형적인 우울증세였다. 당시에는 매일 술을 마시며 하루를 버텼다. 지옥 같았던 시간이 끝나면서 스트레스와 우울함도 같이 끝났는데, 가끔 꿈에 A가 나오면 몸서리치면서 잠에서 깬다. 덤으로 다시 그런 학생을 맡을까 봐 학기 초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교사를 지켜주는 울타리, 교권보호조례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 건 ‘교권보호조례’이다. 교권보호조례는 이름과 달리 교사를 보호하는 조례가 아니라 교실의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조례이다. 교사들이 조례에 요구하는 내용도 교실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대책을 달라는 거다. 아이가 교실에서 지속적으로 난동을 부리거나 수업을 방해할 때 학생을 교실에서 내보낼 수 있는 권한, 학부모를 소환해서 아이를 귀가시킬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은 교실에서 아이를 내보내는 것조차 ‘낙인찍기’로 정서적 아동학대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학생인권조례를 제일 먼저 실시했던 경기도에서 교권보호와 관련해서 학생인권조례를 개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누군가는 학생들의 인권후퇴·인권역행을 말하겠지만, 무력한 교사로서는 숨 쉴 구멍이 생기는 것 같아서 반갑다. 학생인권조례가 생기면서 약자였던 학생들의 인권이 올라간 것처럼, 교권보호조례로 교사들이 교실에서 안전하게 수업할 권리가 생겼으면 한다. 교사가 교실 속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법적인 도움까지 받아야 하는 처지가 우습지만, 그래도 교사를 지켜주는 법테두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강유진 경기 고양백양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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