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예박물관) 장인의 손길, 안동별궁에 나빌레라

2022.09.05 10:30:00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고, 만들고, 온몸으로 공예를 경험하는 공간이 탄생했다. 일상을 여미던 보자기, 환생을 염원하는 연꽃 방석, 소중한 물건을 담던 화각함에서, 길상의 마음을 담아 색동으로 지어 입힌 까치두루마기까지. 흩어지고 숨어있던 전국의 작품 2만여 점이 모셔진 곳. 낡은 유물함의 봉인이 해제되고 그들이 살아낸 과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 ‘서울공예박물관’이다.

 

 

시간과 공간을 엮는 플랫폼, 공예박물관

박물관 자리는 예로부터 안동별궁이라 칭해지며 왕가의 저택과 왕실의 혼례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곳은 세종이, 아들 영응대군을 위해 집을 짓고, 성종이 월산대군에게 하사하였으며, 1910년에는 환관들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되는 등 부침을 거듭하였다. 이후 1944년 개교한 풍문여고가 70년 역사를 뒤로하고 자곡동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이곳의 쓸모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점차 박물관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안국역 인근은 경복궁과 더불어 인사동 북촌 등에 인접해 있어 다양한 전통문화의 허브로 기능할 수 있는 곳이고, 가까운 종로일대는 조선시대에 수공예품을 만들어 관에 납품하던 ‘경공장’들이 즐비했었기에 역사적 가치 또한 엄연한 곳이다. 박물관 건립을 고민하던 서울시는 이곳 풍문여고 자리가 박물관의 정체성에 매우 적합하다 판단하였다. 5년간의 공사 끝에 2021년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이자 시간과 공간을 엮는 플랫폼 ‘서울공예박물관’이 탄생한 것이다.

 

당신이 이곳의 주인입니다.

서울공예박물관에는 문과 담장이 없다. 안국동 대로 건너편에서 바라보기에도 입구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안국역 1번 출구 또는 감고당 길에서도 입장이 가능한 이곳은 담이 없는 까닭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산책이 가능하며, 시민들의 들고남이 자유롭다. 골목길의 폐쇄성을 순화하여 시야를 확보하고 진입장벽을 없애 공예박물관이 갖는 도시재생의 의미를 배가시켰다. 마치 ‘당신이 이곳의 주인이랍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관람객의 동선을 통제하지 않는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작품 훼손에 대한 우려는 전혀 없다. 이와 같은 결정은 시민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물관은 풍문여고의 기존 5개동에 안내동과 한옥공간을 포함 총 7개 동에 이르는 모든 건물이 400년 된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사전가직물관·아트리움·본관·교육관·동관·관리동 등 각기 다른 형태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마당 안에 들어서면 스툴 하나가 45kg에 달하는 이강효 작가의 ‘휴식, 사유, 소통의 분청의자’ 세트가 먼저 눈에 띈다. 아직은 수줍은 어린나무 아래 무심한 듯 놓인 분청들은 감상품이자 실용품이다. “작품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민들이 앉아 쉬면서 감상해 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을 아이들은 아는가 보다. 시키지 않는데 누구라도 관람 후 이곳에 앉아본다.

 

창작의욕에 불 지피는 체험활동 가능한 어린이 공예마을

학생들과 함께 체험활동이 가능한 교육동은 외벽을 테라코타의 띠줄로 마감한 원통형 건물로, 2·3층에는 어린이 ‘공예마을’이 있다. 2층에서는 철물·그릇·가구 공방체험이, 3층에서는 옷과 모두(모든 것이라는 뜻) 공방체험이 이루어진다. 특히 우리 교육현장 여건상 부족한 노작활동이 다양한 형태로 가능하여 이곳에 들어서는 아이들은 작은 작품부터 예술성 가득 담긴 작품까지 무엇이든 완성해 낸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보호자나 선생님과 함께(12세 이하) 입장해야 활동이 가능하다. 공예체험은 만드는 과정도 물론이거니와 안전하게 활동하며 공예도구를 제자리에 정리하는 습관, 친구들과 어울리며 배려하는 마음, 도구와 작품을 소중히 다루는 태도까지 함께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교육동 옥상의 전망대에서는 안국동·종로·송현동과 그 뒤를 두르는 인왕산·안산, 덕성여고 뒤 북악산·북한산까지 두루 둘러볼 수 있다.

 

한평생 공예와 살고 지고

이제 박물관 관람의 본편을 시작해 보자. 박물관 상설전시의 2개 콘셉트는 역사와 직물이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광석·흙·나무·전복껍질 등이 장인의 손에서 금속공예와 도자기·나전칠기로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과 더불어 독창성과 예술미, 치열한 장인정신이 만나 쌓아 올린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장인들은 어린 시절 도제를 거쳐 한평생을 공예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양자를 들이거나 제자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업을 잇기도 하였다. 목공·도자·농기구에서 신발·갓에 이르기까지, 국중 연회에서 서민제사까지 그들의 손길이 안 미치는 곳이 없었다.

 

3동 3층의 상설전시는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이다. 보자기는 삼국시대 육가야 시조설화에 등장한 홍폭(紅幅)에서 지금까지 무려 1,700여 년 이상 활약하였다. 보자기·포대기·보자 등의 이름으로 전국팔도 궁중과 귀족·평민 등 그 일상적 활약이 팔방미인이었다. 보자기는 청·홍·오색의 다양한 색상과 예술성에, 조형적 배치와 독보적인 컬러감으로 두루두루 일상을 감싸 안았다. 그러나 지금은 쇼핑백과 캐리어에 밀려 거의 소멸에 이르러 있다. 최근 나이키 제품 중 신발의 뒤축과 안쪽, 밑창에 귀여운 원앙 캐릭터가 프린트 되어 있는 제품이 출시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깜찍하게도 운동화를 감싸고 있는 속지가 한국의 청·홍색 보자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자긍심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드는 대목이었다.

 

보따리 할배가 모은 자수, 꽃이 피다

서울공예박물관에는 평생 ‘보따리 할배’라 불리던 어떤 이의 일생이 담겨 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에 참전, 공훈 화랑무공훈장도 받았다. 이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도자기를 보러 다니다 보자기와 자수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남들이 내팽개친 것도 내 눈에는 참 예쁘게 보였다”니 일상에서 예술을 보는 심미안을 타고났을지 모른다. 그는 해외로 반출되는 우리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이후 자수는 물론 자수를 싼 보자기에 주목하기 시작해 치과의사인 아내와 함께 40년 수집가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의 이름은 ‘보따리 할배’라 불리우는 허동화 선생. 구운몽 병풍 하나를 구하는 데는 10년 동안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이렇게 쌓여간 그들의 수집활동은 보자기와 흉배·꽃신·수저집에서 방석과 꽃버선 등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의 소장품 5,129점은 서울시에 기증되어 2021년 서울공예박물관 직물관이 탄생하였다.

 

‘자수, 꽃이 피다’는 상설전시관 2층의 콘셉트다. ‘~이 피다’, ‘~을 감싸다’와 같은 표현에서는 언어의 우아함이 배어난다. 모국어 사용자만이 감지할 수 있는 따뜻함과 배려가 묻어나는 문장이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색실과 솜씨의 향연이 펼쳐진다. ‘자황색·담자색·치자색·흑록색·추향색·옥색·소색’ 색깔 못지않게 이름이 어여쁘다. 이제 치자로 물을 들여 염색하지 않으니 치자색이라 이름하지 않고, 가을 분위기는 추향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물건과 풍습이 사라지니 언어도 사라져 간다. 색색가지 수실의 아름다움과 이름은 여기 남겨진 이곳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조선여인의 여문 손끝으로 만들어낸 색색가지 작품들에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어린아이가 입었을 법한 두루마기, 색동 자투리 천의 소매가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관람 학생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섣달그믐에 아이들에게 입혀 ‘까치두루마기’란 이름을 갖게 되었단다. ‘우주 삼라만상이 가진 아름다운 색으로, 길하고 상서로운 기를 받고, 장수와 영화를 기원하며’ 아기들에게 지어 입혔다 하니 그 마음만으로도 아기는 무병장수하리라.

 

과거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의 문,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게 하다.

전시3동 4층의 ‘보이는 수장고’와 ‘보존 과학실’은 학생들에게 미래의 직업 중 하나를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보이는 수장고에는 자수품·보자기 같은 작품들과 이름을 대면 알만한 1세대 패션 디자이너들의 의상작품 6,0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 보존과학실은 손상된 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거나 보존 처리작업을 수행하는 곳이다. 창 너머로 학예연구사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서울공예박물관을 돌아보는 시간은 감동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공예박물관은 민속박물관임에도 옛것에 침잠하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있다. 일단 아날로그적 정서를 진심에 담아낸 뛰어난 솜씨의 큐레이팅은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탁월하다. 자수코너에서는 자수의 본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고, 수를 놓는 순서는 어린 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설명해 놓았다. 곳곳에 자리한 디지털 미디어 교육자료와 함께 전시해설·유물탐색·동선을 안내하는 스마트기기인 ‘크래프트 아이’는 사뭇 미래적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체험코너와 음성안내 기기는 재미있고, 교육적이며, 편리하게 꾸며져 있어 전시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리면서도 관람자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역사와 전통을 배우고, 조상들이 아로새긴 미감을 체험하며, 우리 것을 바탕으로 세계와 미래를 꿈꾸게 할 수 있는 곳, 소녀들의 웃음소리 가득하던 교문이 사라진 자리는,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누구나 무시로 넘나드는 시간여행의 문이 되었다.

양인숙 前 서울리라아트고 교사·박지숙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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