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아름다이 손잡으니

2022.10.05 10:00:00

한양도성을 병풍으로, 부암동을 정원으로
안도 타다오(Tadao Ando)나 알바로 시자(Alvaro Siza) 같은 건축가가 선사하는 미친 공간감, 수십억 대 미술작품을 영접하는 흐뭇함, 이제라도 알게 될 작가들을 학습하는 지적 호기심, 곁들여서 교양미 충만 등등이 아마도 우리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기대하는 몇 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곳은 기대할 것이 없다. 이곳에 유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냥 사람. 문인과 무인, 그들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와 어린아이, 김돌석과 박을녀가 저승 갈 때 타고 간 상여. 그들의 길에 함께 가는 친구 꼭두. 부록으로 재앙을 막아주던 해태 한 마리 등등. 이들은 지금 한양 도성 성곽의 호위 하에 부암동의 가가호호를 내려다보며 평화를 누리고 있다. 


목인박물관 ‘목석원’가는 길엔 운동화가 필참이다. 길이 오르막이기도 하거니와 올라가다 석파정과 ‘유금와당 박물관’을 기웃거릴 수도 있고 목석원 관람 후 ‘윤동주문학관’이나 ‘청운문학 도서관’으로 떠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인박물관 ‘목석원’은 2018년 개관하였다. 태평양에서 녹차사업을 전담하던 김의광 회장이 퇴직 후, 박물관 건립에 전념하여 인사동 ‘목인박물관’을 개관한 지 13년 만의 이전이었다. 김 회장은 이곳에 산책 나왔다가 그야말로 한눈에 반해버렸다. 사비를 털어 별다른 공사 없이 수집한 작품을 모두 입주시켰다. 방문한 이들은 하나같이 김 회장의 안목에 한 번, 실행력에 두 번 감탄을 쏟아냈다. 

 

목인을 알리고픈 투사가 되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삶의 방향등이 켜지는 어떤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김 관장에게는 1970년대 초 외국인 친구가 우리 공예품을 모으는 것을 본 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것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이 전무하여 수많은 공예품이 외국으로 쓸려나가던 시기였다. 이후 월출산 차밭에서 마주한 상여 나가는 모습은 운명의 신이 강림한 두 번째 순간이었다. 민속예술품을 찾아 헤매는 중독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목인 찾기의 여정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주로 중앙시장을 돌아다니며 목인들을 사들였다. 안 팔겠다는 여인상을 “박물관을 세우려고 한다”며 설득하고, 상여에 쓰이던 것이라며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귀신 쫓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 안심시키기도 하였다. 어쩌면 사람들이 멀리하는 물건들이었기에 값이 싸 월급쟁이 임에도 골동품들을 사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30년 넘는 세월을 우리나라 방방곡곡, 인도·네팔·티베트까지 헤매며 얻은 작품들이 8,000여 점에 이르렀다. 김 관장에게는 야심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우리의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야심이었다. ‘목석원’은 3,000평 규모의 야외전시장과 총 7개의 실내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향로석을 살펴보고 사진 한 장. 눈을 부릅뜬 문인석과 무인석 옆에서 나도 눈을 부릅뜨고 친구와 또 한 장! 그러다가 깔깔깔 웃어도 본다. 마당이 넓어 아이들이 조금 재잘거려도 여느 미술관처럼 굳이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된다.

 

극락으로 가는 길에 길동무 꼭두
목석원의 하이라이트는 목인창고 전시장이다. 상설전시는 ‘극락으로 가는 길: 상여(喪輿)’이다. 한국 전통 나무상여와 상여를 장식하는 천여 개의 목인이 전시되어 있다. 마당에서 발랄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도 이곳에서는 잠시 조용하다. 상여가 갖는 의미를 아는 아이들이다. 상여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수레로 운구하였으나, 세종 때 국상에는 어깨에 메도록 바꾸었으며, 점차 일반인에게 퍼져나갔다. 


백정이나 노비 등은 상여를 쓸 수 없다. 양인이라 해도 역병으로 죽는 경우 상여를 메지 않았다. 서민들에게는 상여 하나를 만드는데 드는 인력과 시간이 만만치 않으므로 마을에서는 각기 상여를 꾸며 몇 십 년 동안 공동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한 번 사용한 상여는 마을의 후미진 곳이나 언덕배기에 보관하였는데 이를 곳집 또는 상여집이라 하였다. 아이들이 얼씬거려 훼손할 것을 우려한 어른들은 그곳에 귀신이 산다며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목재 상여는 화려한 단청에 조립식으로 되어 있다. 기본틀인 장강에 관을 올려놓을 수 있는 횡목을 끼워 만든다. 이때 다양한 모양의 나무조각으로 관을 장식하는데 이를 꼭두 또는 목우라 한다. 흔히 ‘꼭두새벽’이라 할 때의 꼭두와 유사한 제일 위쪽, 경계의 의미를 갖고 있다. 꼭두는 ‘일상적 시공간과 초월적 시공간을 연결하는 존재이며 길동무’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모여 회의를 열었을 것이다 “길 안내는 말이나 용이 혀야재.” “암만~, 사악한 넘들이 올매나 많겄어! 호위무사는 꼭 있어야 혀.” “근디 허드렛일이 많을 것인디, 시녀도 함께 가야재.” “하이고~ 죽어서 호강함만, 근디 저승 가는디 을매나 슬프겄어, 줄타기 땅재주로 한바탕 재주를 부리먼 웃어불랑게!” 임무를 다한 꼭두는 태워져 저세상으로 함께 가야 한다. 다만 재사용되다 보니 이승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꼭두는 주로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목인창고 안에는 온갖 꼭두가 다 모셔져 있다. ‘호위무사’, ‘살판’, ‘어름’, ‘광대가족’. 모양과 눈초리 입매의 해학과 풍자가 김홍도를 뺨친다. 첩과 함께 있는 남편을 째려보고 있는 이는? 그렇다. ‘본처목인’이다. 미켈란젤로나 로댕도 아니면서 그들을 나무에서 해방시켜 살려낸 기적을 행한 이들은 그냥 동네에서 솜씨깨나 있는 농부, 장사꾼들이다. 망자를 보내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예술이지 싶어 보는 이의 마음도 따뜻해진다. 


영원한 자유로 가는 문 ‘목샤(moksha)’, 멍때리는 터에서 멍때리기
인도사람들은 죽음을 이르는 말로 목샤(moksha)라는 말을 쓴다. 영혼의 해방 또는 구원, 영원한 자유로 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누구나 모두 통과해야 하는 곳이다. 이승에서 건네진 위로와 해학으로 망자는 영원한 자유가 펼쳐지는 저승에 잘 도착할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손을 잡으며 이어간다. 일군의 학생들이 너른 마당에 가득하다. 이들이 불러일으키는 활기와 에너지와 수다를 바라보다 죽음에 가까운 이곳에서 저토록 생동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순간이다. 2021년 8월 목석원과 콜라보하여 기획전시를 펼친 콰야는 말한다.

목인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네의 지금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목인창고를 나와 제주의 뜰·해태동산 등의 테마 존과 편백나무 옥탑방·GP전망대 등을 올라간다. 최고의 전망이다. 너와집 ‘명상의 공간’에서 명상하기, ‘멍 때리는 터’ 그물 위에 벌러덩 누워 보기를 권한다. 이 그물침대는 최근에 새로 등장하였는데 친구와 같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멍’해지는 최고의 시간이다. 잠시라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노모포비아(Nomophobia) 증후군 환자들에게는 최상의 치유장소가 될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그런데 왜 멍은 때린다고 하는 거지? 멍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인데 그걸 때리면 멍이 깨져 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갑자기 “아! 나는 멍때리는 중이지!”하는 자각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공간에 대한 체험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숨통이고 사색이 될 것이다. 
유물들을 설명해 주고 석상과 목인 그리기나 사진 콘테스트를 펼쳐도 좋겠다. 다만 뛰거나 장난치지 않도록 주의 줄 필요가 있다. 석물들이 많아 다칠 수도 있다. 예약 없이도 11시, 2시, 4시에 맞춰 요청하면 도슨트와 함께 할 수 있다. 

 

가을 방문 필수! 정신 차리기 필수!
목석원에서는 모두 SNS에 올릴 사진 찍기에 바쁘다. 하지만 사진은 거기까지이다. 목석원을 에두른 파노라마 풍경 읽기는 사람의 눈으로만 가능하다. 목석원은 풍경이 작품이다. 노을 지는 시간에 관람을 마치면 5점 만점에 7점을 주고 싶다. 이런 순간이면 가끔 삶은 숭고해진다. 몇 시간을 돌다 보면 석물을 돌보는 흰머리에 풍채 좋고 인상 좋은 헤밍웨이풍의 노신사를 만날 수도 있다.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인테리어가 바뀌는 이유이다. 관장님! 이라고 부르면 깜짝 놀라실까? 아, 참! 헤밍웨이는 노년에 탈모가 심하셨지! 


여름철에 방문하려 한다면 모기기피제는 필수! 긴 바지와 긴팔 소매옷을 잊지 말아야 한다. 후유증이 오래간다. 가을에 방문 필수! 어쩌면 인왕산·북한산·한양도성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가을풍경에 빠져 길을 잃을지 모른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대중교통이 더 편리하다. 숨찬 가슴으로 부암동 전경을 내려다보는 기쁨 두 배는 뚜벅이들에게 주어지는 특별선물이다.
 

목인박물관 ‘목석원’/글 ● 양인숙 전 서울리라아트고등학교 교사 그림 ● 박지숙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sjlee@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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