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여, 어찌 그리 아름답소 스페이스 C 코리아나 화장박물관·미술관

2022.12.05 10:30:00

쑥과 마늘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인물들이 있다. 백일동안 햇빛을 멀리하고(忌諱) 오로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염원으로 동굴 속에서 근신하던 그들! 웅녀는 호녀보다 참을성이 많았거나 목표의식이 강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고대사회의 지배층이 하얀 피부를 귀히 여겨 피부를 희게 만드는 쑥과 마늘이 등장하였다는 대목은 뜻밖이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신라의 화랑은 화장을 하였다. 일본은 백제로부터 화장법을 배워갔다 하고, 1922년 출품한 박가분은 하루에 5만 갑이 팔렸단다. 쌀겨와 녹두를 이용한 각질제거제와 살구씨 가루에 달걀을 섞은 마스크팩 비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예나 지금이나 K-뷰티는 뭇 여성과 남성들의 맹렬한 관심 속에 성업 중이다. 

 

아트산책의 보고, 도산대로 사거리
도산대로 사거리는 도산공원을 중심으로 반경 300m 내외에 아틀리에 에르메스, 호림아트센터 스페이스 C 화장박물관 등 굵직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작심하고 나서도 하루 안에 다 둘러보기가 벅찬 아트산책의 보고이다. 다만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기가 일론머스크 무일푼 되기보다 어려운 일이니, 대중교통 이용이 마음 편하다. 

 

압구정역 3번 출구에서 출발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박물관이 스페이스 C이다. 스페이스 C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은 국내에서 유일한 화장전문 박물관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각종 도자기·장신구·복식·화장도구 등 5,300여 종의 기증품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1969년 유상옥 회장이 동아제약에 근무할 때였다. 가까이 알고 지내던 한 양복업자가 지나가는 말로 “당신은 너무 공학적이라 감수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충고하였다. 흘려듣거나 다소 언짢게 들렸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뭔가에 집중하면 굴을 파는 것인데, 그 굴이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이 파놓은 굴보다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이후 점심시간이면 인사동 골목을 순회하게 되었다. 잦은 아이쇼핑은 지갑을 열게 하는 지름길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남들이 내다 버린 골동품들이 신문지에 둘둘 말린 채 유 회장의 집안 곳곳을 점령해가게 되었다. 아파트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평소 봐 두었던 소정 변관식의 수묵화를 사려고 연말 보너스를 몽땅 털어 넣었다. 이 바닥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양복·시계·구두 등에 전혀 관심이 없고 돈을 쓰지 않는 그가 이상하게 명품유물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지금도 인사동을 쏘다니며 비슷한 유물들을 사들여 집안 식구들의 핀잔을 듣기도 한단다. 

 

뜨거운 욕망에서 실현으로
관심은 지식으로, 지식은 구매로 이어지던 어느 날, 외국의 세계 유명 화장품 회사 집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온통 화장품 관련 미술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자신도 놀랄 만큼 서서히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부러움 반, 질투 반. 그는 아름다움과 전통에 대한 ‘어떤 것’을 구현하고 싶다는 뜨거운 욕망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88년 영업사원 5명에서 출발한 KOREANA 화장품은 한국사회의 외모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1천억 대 대기업으로 폭발적 성장을 한다. 그의 탁월한 사업경영은 그 옛날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집안에 도움이 되고자 홀로 신문보급소를 경영하게 된 것이다.

 

애초 100여 곳으로 시작되었던 신문배달은 그의 꾸준한 영업력을 발판으로 500여 곳까지 확장되어 동생의 도움으로 고려대를 졸업한 후 동아제약에 입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늘 새벽잠을 자지 못했다. 독자에게 제시간에 뉴스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항상 앞섰다.”

 

 

 

 

 

 

 

 

 

 

 

그는 신문을 들고 달리고 또 달렸다. 습관이 되어버 청년의 시간은 그의 미래가 되어갔다.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나니 자금력이 생겼고, 이미 모아 놓은 유물과 작품들은 넘쳐났다. 2003년 박물관을 세워 유물들을 모두 입주시켰다. 고고한 역사 속에서 자연의 재료로 가꾸어 왔던 여인들의 일상이 이제 세계의 아름다움을 채워가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물론 집 정리에 기여한 바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겠다. 

 

살아있는 문화공간, 도심 속의 문화공간
스페이스 C는 ‘도심 속에 자연을 심어 놓다’라는 콘셉트로 7층 건물 전면을 통유리로 마감하고 건물 안에 나무를 심었다. ‘삶이란 풍경을 소비하는 것, 혹은 풍경과 관계 맺는 것.’ 건축가 정기용의 신념이다. 사계절 초록으로 성장하는 나무의 푸르름이 건물 밖에서도 보이게 설계되었다.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볼 때 위아래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동선이 그대로 보이는 계단설계도 독특하다. 주제는 ‘살아있는 문화공간, 살아 있는 집, 도심 속의 문화공간’이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등 생태건축가로 불리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건축을 담아내던 정기용의 건축관을 모두 담아내었다. 그와의 인연은 건축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하였다.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정기용은 자신의 설계대로 시공할 수 있어 “고마웠다”는 말을 박물관 측에 전했다. 


지하 1층은 미술관, 5·6층이 화장박물관이다. 7층을 지나 옥상정원에 오르면 압구정 뷰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설전시관인 5층에 들어서면 한국 화장문화의 역사·연표·영상에서 시작하여 각종 세안제·화장분·연지 등 화장재료가 가득하다. 동경·빗·분항아리 등 화장용기·화장도구 등이 통일신라부터 근대까지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에서 근현대까지 일상 속에서 사용되던 작은 화장용기, 사소한 그릇 하나도 시간의 더께가 쌓이고 쌓여 모두 작품이 되었다. 6층에서는 주로 기획전시가 이루어진다. ‘時時刻(시시각)갓전. 2020년 5월’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특수를 겨냥하여 코로나 시국임에도 많은 사람의 발길을 이끌었다. 그 외 전시 투어 후 큐레이터에게 전시기획의 과정과 현장 이야기 듣기, 청소년 진로·직업탐색(메이크업 아티스트, 화장품연구원, 조향사 등) 체험과 어린이 대상의 ‘슈링클스로 백자청화 마그넷 만들기’ 등 각종 교육을 진행하여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유익하다. 

 

나의 꽃은 가깝고도 낯설다
미술관은 스페이스 C 지하 1층과 2층에 위치한다. 박물관이 시간과 역사에 천착하였다면 이곳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현대미술의 적극적 수용과 화장, 신체 미디어, 여성의 정체성에 관심을 실어 퍼포먼스·음악연극·무용·문학을 아우르는 전시가 주로 행해진다. 그러나 주장하지 않고 보여준다.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다. 지하 2층에 내려서면 먼저 8m에 이르는 층고 덕분에 답답하지 않다.

 

대형작품 전시와 영상설치도 가능한 넓이이다. 기억에 남길 만한 전시가 많다. ‘댄싱 마마(Dancing Mama)’전에서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여성의 몸짓을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현대 무용가 안은미는 전국을 돌며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에게 즉석 춤을 제안하여 영상으로 작업하였다. 1년간의 전국 방랑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로 탄생하였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이자 시 제목인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전에서는 가깝게 존재하나, 너무 흔해서 놓치기 쉬운 꽃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펼쳤다. 소치 허련의 ‘묵란’, 고암 이응노의 ‘홍매화’에서 시작하여 이쾌대의 ‘춘경’을 거쳐 함현주·조이솝의 연작에 이르면서는 이토록 아름다운 꽃들을 몰랐던 무딘 감각을 자책하게 되는 경험을 하였다. 이 전시는 스페이스 C 코리아나 미술관 지난 전시 영상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온라인 큐레이터 아바타 코코가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시선에서 찾아내는 현대인의 불안을 해석해주고 있는데,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자발적 ‘투르먼쇼’의 난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모 철학자는 ‘타인의 부름에 응답할 때 책임 있고 윤리적인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지만, 타인의 시선만을 갈구하는 최근의 동향이야말로 자발적 복종’으로 향하는 첫걸음임을 그녀가 들려준다. 아바타가, 허구가 실제를 품평하니 그 또한 현대성일 것이다. 스페이스 C 코리아나 미술관은 관람객들이 매번 다시 찾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강남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전시기획과정에서부터 현장 이야기를 듣는 ‘애프터 워크살롱, 큐레이터 토크’가 진행되는데 전시를 실행한 큐레이터에게 듣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생생하다. 미술관은 매주 토요일·일요일·월요일이 휴관이므로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문화체험과 삶에 대한 관심을 함께 나누며
“많은 분이 物氣(물기)를 높이고 文氣(문기)도 함께 높이길 바란다.” 그가 자주 하던 말이다. 많은 사람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고 세계와 삶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유상옥 회장의 소망이다. 최근 각 기업이 자신의 브랜드와 관련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개관하고 있어 시민들은 즐겁다. 이곳은 지나가다 잠시 둘러보기도 하고, 퇴근 후에는 작품교육도 받고, 아이들 손을 잡고 만들기를 할 수도 있는 진정한 도심 예술 쉼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물관으로 인해 높아진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다시 기업으로 환원되는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 좋은 전시를 놓치지 않는 지름길이다. 모름지기 현대사회는 정보력! 
 

글 ● 전 리라아트고등학교 교사 그림 ● 박지숙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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