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소설 <토지> 홍이처럼 깔끔하게 생긴 나무

2022.12.05 10:30:00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는 소설 <토지>를 주제로 한 박경리문학공원이 있다. 작가가 1980년 원주로 이사 와 1998년까지 살면서 <토지> 4~5부를 집필한 옛집 터에 조성한 공원이다. 이곳에는 평사리마당, 용두레벌 등 <토지>에서 지명을 따온 공간이 3곳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홍이동산이다. 소설 <토지>에서 홍이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용두레벌에서 홍이동산으로 가는 입구에는 자작나무도 한그루 심어놓았다.


홍이는 용이와 임이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예닐곱 살 때 서희 일행과 함께 용정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홍이는 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강두메, 박정호 등과 친하게 지내는데, 애국심이 충만해 일본 학교 학생들 가방을 강물에 던지는 일화가 나오고 있다.


친구 강두메는 최치수를 살해한 귀녀가 처형당하기 직전 낳은 아들이다. 강두메가 어미가 없어서 슬픈 아이라면 홍이는 어미가 너무 많아 괴로운 아이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제사를 지내니 강청댁도 엄연히 어미요, 임이네는 생모이고, 홍이에게 여한 없는 사랑을 주는 월선이도 어미이기 때문이다. 홍이는 탐욕스러운 생모 임이네를 혐오하면서 월선이를 ‘옴마’라고 부르며 따른다. 어린 시절 아비의 무심함도 생모의 무관심도 월선의 사랑으로 다 녹여내며 밝게 자란다. 홍이에게 아버지를 대신한 인물이 주갑이 아저씨다. 홍이가 방황하지만 나쁜 길로 빠져들지 않은 힘도 월선과 주갑에게서 받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홍이의 첫사랑은 진주 이웃집에 사는 염장이였다. 장이를 좋아한 것은 ‘옴마’ 월선이를 닮았기 때문이다. 홍이가 장이를 처음 보았을 때 ‘옴마 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는다. 홍이는 장이와 멀리 도망칠 생각도 하지만 아버지 용이가 죽었을 때 ‘상주 없는 관’이 나갈까 걱정 때문에 망설인다. 그 사이 장이도 일본으로 시집가기로 정해졌다. 아버지 용이가 첫사랑 월선이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했듯 아들 홍이도 첫사랑과 맺어지지 못하고 서로 그리워하는 것이 흥미롭다.

 

홍이는 아버지 용이가 죽자 가족을 데리고 간도로 옮겨가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을 돕는다. 또 뜬금없이 나타난 일본 밀정 출신 김두수와 부품 거래까지 트는 등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나가다 마지막으로는 만주 신경(新京)에서 영화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작가 박경리의 부친이 화물차 운전을 했다고 한다. 통영에서 진주를 오가며 통영의 생선과 진주의 과일을 날랐다는 것이다. <토지>에서 작가 본인을 홍이의 큰딸 상의에 대입시켰는데, 아버지도 홍이에 대입시킨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럼 홍이를 상징하는 꽃 또는 나무는 무엇일까. 소설에서 홍이를 직접 꽃이나 나무에 비유한 대목은 찾지 못했다. 작가는 <토지> 4부 연재를 마치고 5부 연재를 앞둔 1989년에야 중국 여행을 갔다. 그때까지 한 번도 용정 등 중국 현장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간도를 묘사할 때 꽃이나 나무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다음 문장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달포 전에 홍이는 용정촌(龍井村)을 다녀왔다. 송장환의 형, 영환의 부고를 받고 갔던 것이다. 장례에 참석하기에 앞서 홍이가 찾은 곳은 월선의 묘소였다. 공 노인 부부의 묘도 그 부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산재해 있는 산속의 무덤 세 곳을 차례차례 돌며 술을 부어 놓고 절을 한 뒤 홍이는 월선의 무덤가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일어섰다. 달리 할 말도 없거니와 감회도 없었다. 할 말이나 감회가 없었다기보다 죽음과 이별의 냉혹함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해야 옳을지 모른다.

<토지> 17권, 17쪽

 

홍이는 <토지>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간도 용정이 고향인 인물이다. 자작나무는 간도에 흔한 나무여서 자작나무가 홍이 나무라 해도 큰 하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이가 ‘늘씬하게 잘생긴 인물에 땟물이 쑥 빠진 듯 깨끗한 인상’인 것도 자작나무를 연상시키고 있다.

 

껍질이 탈 때 나는 ‘자작자작’ 소리
자작나무는 북방계 나무다. 북한에서도 평안북도와 함경남북도 등 위쪽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등 남한에 자라는 자작나무는 모두 심은 것이다. 물론 중국·일본·러시아·유럽에서도 자란다. 그래서 <닥터 지바고> 등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는 어김없이 자작나무 숲이 나오는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불이 잘 붙고 오래 가서 불을 밝히는 재료로도 사용했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껍질이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붙은 것이다. 결혼하는 것을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이때 화(華)가 바로 자작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나무껍질(수피)은 흰색이고 종이같이 옆으로 벗겨진다. 무엇보다 수피가 피부처럼 매끈하면 자작나무라고 볼 수 있다. 자작나무엔 가지 흔적인 ‘지흔(枝痕)’이 군데군데 있다. 나무가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가 불필요하면 스스로 가지를 떨어뜨리고 남은 흔적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눈썹 모양이라고 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산에 자작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 숲에는 수피가 흰색 계통이어서 자작나무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이 몇 개 있다.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가 대표적이다. 이들 세 나무는 흰색 계통의 수피와 잎 모양이 비슷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다.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는 둘 다 비교적 높은 산지에 자란다. 그러니까 높은 산에서 만나는 자작나무 비슷한 자생나무는 사스래나무 아니면 거제수나무인 것이다. 사스래나무는 껍질은 흰색이라기보다는 회색에 가깝고 화상으로 피부가 벗겨지듯 얇게 벗겨져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사스래나무 이름 유래는 알려진 것이 없다. 반면 거제수나무는 수피가 약간 붉고 두꺼운 종이처럼 벗겨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냥 수피를 보고 적갈색을 띠고 있으면 거제수나무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거제수나무라는 이름은 거제도와는 무관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물을 가졌다는 뜻의 ‘거재수(去災水)’가 변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잎까지 있으면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자작나무 잎은 거의 삼각형이고 측맥이 6~8쌍으로 가장 적다. 사스래나무 잎은 삼각형 모양이지만 계란형이고 측맥이 7~11쌍, 거제수나무 잎은 타원형에 가까운데 측맥이 9~16쌍이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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