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게 책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한창 뛰어놀기 바쁜 나이인 초등학생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고역일지도 모른다. 사실 책 읽기는 낙숫물과 같아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독서를 많이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요즘 아이들’은 책 읽기 말고도 재밌는 것이 많다. 책을 보지 않아도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고,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는 유튜브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반면에 책 읽기는 공을 들여야 한다. 동화책을 읽는 경우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기 위해선 상당한 집중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이들 입장에선 유튜브로 5분이면 볼 이야기를 왜 그보다 더 긴 시간동안 책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치는 아이들을 종종 보곤 한다.
초등학교 3~6학년 국어 교과서 첫 시작에 들어가 있는 독서단원에서는 독서 전, 독서 중, 독서 후 이렇게 세 개의 단계로 나누어 여러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독후활동 못지않게 독서 전 단계와 읽는 단계도 강조하여 책을 고르는 과정부터 책을 읽으면서 할 만한 활동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다. 이 교육과정을 따라가면서도 우리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수업을 꾸려나가고 싶었다. 책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이번 도서관 수업을 통해 책에 대한 재밌는 경험을 쌓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생들에게 익숙한 매체를 활용하여 책 애니메이션을 창작해보는 수업을 계획하게 되었다.
수업 준비과정
우선 수업에 활용할 책을 선정하였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지나치게 가볍지 않은 책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명탐견 오드리: 추리는 코끝에서부터>는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연작동화이다. 이야기의 호흡이 짧고, 주인공인 오드리가 추리를 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또한 3차시로 나누어 함께 읽고 활동을 하기에 적합하여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창작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태블릿PC이다. 도서관에서 태블릿PC를 이용하여 수업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도서관에서만 사용하는 태블릿PC를 한 학급의 모둠 수만큼 준비한 다음 활용하는 방법이다. 툰타스틱 3D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으려면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접속해야 해서 구글 계정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학교의 정보부로부터 학교 구글 계정을 받은 후, 태블릿에 미리 로그인을 해놔야 한다. 관리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태블릿PC를 일일이 관리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는 학생 개인별로 지급된 태블릿PC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올해 수업에는 이 방법을 활용했다. 본교 4학년 학생들은 개별로 사용할 수 있는 태블릿PC가 있다. 이 경우엔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위해 학생마다 구글 계정이 필요하다. 정보부에 요청하면 학생 개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구글 계정을 알려준다. 이후 수업 전 시간을 활용하여 로그인을 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았다. 구글 계정 생성과 애플리케이션 설치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해야 해서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수업 이외의 시간에도 툰타스틱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활용할 수 있어서 창작과정이 수월했다는 장점이 있었다.
활용 애플리케이션 ‘툰타스틱 3D’
1. 툰타스틱 3D 소개
툰타스틱 3D 애플리케이션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 아이들이 자신만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여러 가지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구성이 상당히 직관적이라 학생들이 스스로 이야기의 구조와 구성을 선택할 수 있고, 사건·인물·배경을 설정하여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할 수 있다. 또한 제작 후 동영상을 다운로드하여 공유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학생이더라도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제공하고 있는 배경세트와 인물·사물·배경음악이 다양하여 선택의 폭이 넓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직접 배경세트나 인물·사물을 그려 넣을 수도 있어서 애니메이션이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
2. ‘툰타스틱 3D’를 선택한 이유
‘툰타스틱 3D’는 조작이 간단하고 어린이도 쉽게 창작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2차 창작’은 원저작물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을 만드는 것으로 독후활동으로 하기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이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그 어려움을 다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꽤나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어떤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 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책의 내용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책을 집중해서 읽고 계속 살펴봐야 하는 효과가 있다.
어떤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 정했으면 다음엔 대본을 작성해야 한다. 대본은 독후감상문과는 달리 구어체로 써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에게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점도 알려줄 수 있고 대본을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 평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장문의 글을 작성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선 배경과 캐릭터를 고르거나, 그림을 그린 후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한다. 학생들은 마치 성우처럼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이야기의 구조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처음→ 중간→ 끝’의 3단계 이야기 구조부터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단계 이야기 구조를 선택하여 제작을 할 수 있는데 이때 이야기 구조에 대한 설명도 덧붙일 수 있다.
애니메이션 창작수업
1~3차시: <명탐견 오드리: 추리는 코끝에서부터> 함께 읽기
한 차시당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다. 첫 차시에는 읽기 전 활동으로 책에 나오는 단어를 활용하여 ‘지우개 지우기 게임’을 했다. 이 게임은 빙고판처럼 생긴 판에 단어가 여러 개 적혀있고, 그중에 책에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지워내는 게임이다. 간단하게 게임을 한 후, 작가 인터뷰 영상을 짧게 보고 책을 훑어보았다. 책의 앞뒤표지와 책날개에 적혀있는 작가소개·차례·그림 등을 살펴보고 읽기를 시작했다. 읽는 방식은 사서교사가 일부분 읽어주고, 나머지 부분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었다.
3차시에는 사서교사가 일부분 읽은 후, 나머지는 묵독을 하기도 했다. 묵독과 음독은 각 학급의 읽기 수준 및 상황에 따라 다르게 운영했다. 읽은 후에는 간단한 퀴즈활동을 통해 읽은 내용을 확인했다.
4차시: 애니메이션 제작 준비하기
먼저 학생들과 애니메이션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니메이션을 봤던 경험과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캐릭터 등에 대해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많이 봐와서 그런지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은 생소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과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인지 미리 만들어 둔 PPT 자료를 활용하여 설명하였다. 이후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세 가지 주제를 제시해주었다. 그 주제는 아래와 같다.
주제를 고르기에 앞서 모둠을 구성하였다. 모둠은 1~3인이 적당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3인 이내로 모둠을 구성해야 한다고 안내하였다. 모둠구성 후 모둠원들이 협의하여 애니메이션을 만들 주제를 정하였다.
5차시: 대본 작성하기
정한 주제에 따라 어떤 내용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인지 모둠원들끼리 협의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였다. ‘뒷이야기 상상하기’의 경우 지나친 막장 전개가 될 수 있으므로 교사가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책 속 장면 표현하기’는 전체의 내용을 담기보다는 한두 장 내외의 짧은 장면을 표현하도록 했다. 또한 대사를 쓰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는 책에 나온 대사를 그대로 인용해도 괜찮다고 안내했다. 이런 경우엔 장면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중요 대사를 선별하여 쓸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책이나 등장인물 소개하기’는 주인공 오드리의 성격·특징 등 주인공에 대한 소개와 함께 책에 나온 인물들에 대한 소개, 책의 간단한 줄거리 등을 소개하는 글을 구어체로 쓰도록 했다.
6차시: 대본 수정 및 배경·캐릭터 선정하기
학생들이 5차시에 작성한 대본을 살펴보고 한글파일에 옮겨 적은 후 피드백을 작성하였다.
한글파일로 옮겨 적는 이유는 모둠원은 여럿인데 활동지는 한 장이다 보니 녹화할 때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의 글씨체가 바르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어서 잘 알아보기 위해서 필요하다. 옮겨 적을 때는 그대로 옮겨 적고, 맞춤법만 수정했다. 비문이나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은 피드백에 작성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수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은 피드백을 보고 대본을 수정한 후, 녹화할 장면의 배경과 캐릭터를 직접 골랐다. 미리 캐릭터와 배경을 그려온 모둠은 조금 더 수월하게 녹화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담임교사와의 상의를 통해 도서관 수업시간 외에도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7차시: 녹화하기
애니메이션에 목소리를 깔끔하게 입히기 위해선 장소 확보가 필요하다. 본교 도서관은 별실이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녹음하게 되면 여러 학생의 목소리가 겹쳐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도서관 앞 복도와 체육관 등 거리두기가 가능한 넓은 공간을 활용하였다. 대본 최종 수정까지 완료한 모둠은 교사의 확인을 받은 후 지정된 장소에서 녹음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8차시: 애니메이션 상영회
애니메이션 상영회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우리 모둠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작한 애니메이션 소개, 주제와 장면을 선택한 이유,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 활동하면서 느낀 점을 발표하였다. 도서관을 영화관처럼 꾸미고 작품을 감상하였다. 이후엔 간식을 나눠주며 8차시 도서관 수업을 마무리하였다.
수업을 마치며
짧고도 긴 8주간의 수업을 하며 학생들이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고, 독후활동 표현방식이 조금만 달라져도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확연히 높아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책 읽기를 어려워하던 학생도 이번 수업시간에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기 위해 수업이 끝난 이후 개인시간을 할애하여 완성할 정도였다. 학생들이 애플리케이션 사용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하던 우려와는 달리 꽤 빠르게 애플리케이션에 적응했고 그만큼 수업이 더 수월해질 수 있었다. 사서교사가 단독으로 진행한 도서관 수업이긴 했지만, 담임교사와의 협력도 빠질 수 없었다. 담임교사들은 도서관 수업시간 이외에도 학생이 애플리케이션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었고, 수업시간에 다 끝내지 못한 과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학교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특히 초등학교 도서관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학교도서관이기 때문에 그 경험과 추억들이 더욱 소중하다. 이렇게 책과 도서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언젠간 그것들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평생 독자’라는 말이 있다. 어릴 적부터 책과 함께 놀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가까이하며 평생 독자가 된다는 말이다. 사서교사와 학교도서관의 이러한 크고 작은 노력들이 모여 우리 어린이들을 평생 독자를 키울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