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화홍문화제 백일장에 참가하여 광교저수지 둑에서 200자 원고지에 무엇을 끄적이던 중학생 소년. 졸업 즈음에는 수필 한 편이 수원북중 교지에 실려 가슴 벅참을 체험했다. 이 학생은 나중에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어 고향 후배들의 선생님이 되었다. 학창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수원에서 태어나 줄곧 수원에서 생활한 완전 수원토박이 필자의 이야기다.
얼마 전 수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화성문화제 60주년 기념 사진전 ‘축제 현장 60년의 발자취’(전시기간 3.30∼6.25)를 둘러 보았다. 올해가 바로 수원화성문화제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사람으로 치면 회갑, 즉 환갑이다. 지자체 행사가 환갑을 맞이한다는 것, 대단한 일이다. 아니 위대한 일이다.
기획전시를 담당한 수원박물관 김지나 학예사는 “기획전에는 1964년 10월 1회 화홍문화제부터 작년 59회 행사까지의 액자사진 70점과 영상자료 등 총 1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며 “수원시청 공보실과 수원문화재단의 기록 사진 수 천 장 중에서 각 회 한 장 정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것이 선정되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이 같은 문화제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의 문화행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성격을 보여준다. 시민들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축제를 통해 지자체 홍보와 시민들의 화합과 결속을 꾀할 수 있다. 문화의 장(場)을 펼침으로써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참여하는 시민들은 지역의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 또 문화적 안목과 수준을 높여준다.
수원화성문화제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정조(正祖)의 개혁 이념을 기리는 문화축제다. 1964년 10월 15일 경기도청사 기공을 축하하는 행사로 시민의 날이 지정되면서 화홍(華虹)문화제로 시작했다. 1997년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1999년부터 수원화성문화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지금은 전국단위 축제, 종합문화예술제로 알려져 있고 국제문화행사로 발전하였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잠시 옛 추억에 떠올려본다. 학창시절 수원시내 각 고등학교에는 밴드부가 있었다. 수원고, 수성고, 수원농고, 수원공고 밴드부는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축제 때에는 시가행진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학교에서 출발하여 장안문, 종로, 팔달문, 삼거리 등 시내 중심부를 행진하면서 브라스 밴드 음악을 선보였다. 밴드부는 시민들의 자랑이었다.
여고생 제등행렬도 기억에 남는다. 수원여고, 영복여고 등 여학생 수 백 명이 곱디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등불을 들고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나 같은 선머슴 같은 학생들은 천사들을 보며 가슴을 두근거리며 여학생의 행진 모습을 지켜 보았다. 행사 후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귀가하였다.
2016년 수원화성문화제에서는 한교닷컴 e리포터로서 문화제의 꽃인 정조대왕 능행차를 서울 창덕궁에서부터 노들섬까지 취재 보도한 적이 있었다. 관련 지자체와 공동재현한 것인데 규모의 장대함, 장중함으로 국내외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당시 국내외 관람객은 80만 명을 넘어서 대성황을 이루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시민들이 대규모로 직접 참여하는 기회가 있었다. 능행차 바로 전에 이루어진 조선백성 환희마당에 필자가 지도하는 포즐사(포크댄스를 즐기는 사람들) 동아리가 출전하여 시가행진을 하면서 세계의 포크댄스를 선보여 우수상과 인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시민들 앞에서 춤 솜씨를 뽐내던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터뷰 마무리로 김지나 학예사는 “수원화성문화제가 올해 60년에서 100년 그 이상까지 계속 이어져 수원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렸으면 한다”며 “나아가 대한민국 중심 축제, 세계적인 축제로 완전히 자리매김 했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