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여자’ 노란 장미 선사하다

2023.07.05 10:30:00

 

박완서 작품 중 <서 있는 여자>라는 장편소설이 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야 알았다. 박완서 관련 평론이나 대담집 등을 읽다 보니 이 소설이 자주 언급됐다. 특히 많은 여성이 이 소설을 80년대판 <82년생 김지영>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찾아 읽어보았다. 작가가 1982~1983년 <주부생활>에 ‘떠도는 결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소설인데 제목을 바꾼 것이다.

 

“앞으로 결혼생활에 있어서 자기와 나는 절대적으로 동등하기, 알았지?” 
약혼식 후 주인공 연지가 철민에게 한 말이다. 연지와 철민은 이렇게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둘은 한 명은 일해서 돈을 벌고 한 명은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집안 살림을 맡기로 약속한다.

 

우선 철민이 공부하고 연지가 잡지사 기자로 일을 하는데, 하나씩 갈등이 쌓인다. 철민은 묵묵히 설거지 등 집안 살림을 하는 것 같지만, 일부러 주말마다 친구들을 불러들인다. 연지도 남의 이목을 생각해 손님이 오면 별수 없이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 장만을 도맡기 때문이다.


첫 번째 위기는 낙태 때문에 생겼다. 실수로 아기가 생기자, 연지는 남편과 의논하지 않고 중절수술을 한다. 얼마 후 철민은 이 사실을 알고 연지를 폭행하고 일을 그만두라며 연지의 중요한 원고마저 찢어버린다.
연지는 이혼하려고 했지만, 친정 부모가 말리는 바람에 참는다. 잠시 유지한 결혼생활은 철민의 외도로 끝장난다. 연지는 이 결혼이 뭐가 잘못된 것일까 고민하다 ‘한 남자를 사랑하기보다는 바로 남녀평등이란 걸 더 사랑’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 경숙 여사는 딸 연지와는 반대로 전통적인 여성관에 매여 있다. 그래서 어머니와 딸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경숙 여사는 대학교수로 학문에 빠져 자신을 소홀히 하는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어깃장을 놓는다.
“그래요, 난 일부종사 못 했어요. 하고 싶어도 남편이 하나를 줘야 하죠. 당신이 한 번이라도 나에게 당신의 하나를 다 준 적이 있어요? (중략) 백분의 일쯤이 얼추 들어맞을 거예요.”


경숙은 먼저 이혼한 친구들 생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이혼 순례’를 떠난다. 여기서 석류나무가 경숙이 이혼 뒤에 꿈꾸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오고 있다. 여고 동창인 닥터 박은 경숙의 남편이 기르는 석류나무가 작다며 자기 집에는 그보다 훨씬 무성한 석류나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닥터 박의 집 석류나무는 그녀의 이야기와 사뭇 달랐다. 경숙은 기대가 무너지는 서운한 기분을 느낀다. 경숙은 돈과 직업이 있지만 불안정하고 고독하게 사는 친구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순례지인 은선네 집은 깔끔하지만 자식과 관계가 삐걱거리고, 내연남과 관계도 좋게 보이지 않았다. 경숙은 이혼녀들의 이 같은 모습에 실망해 남편 없이는 못 살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연지는 이혼의 아픔을 딛고 기자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글을 써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 대목에 노란 장미가 나오고 있다.

 

그녀는 불을 켤까 하다가 먼저 노란 장미를 항아리에 꽂았다. 그걸 방바닥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쓰는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노란 장미가 등불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동안 불을 안 켜고도 불편 없이 파를 다듬고, 쌀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벗은 양말과 속옷을 세탁기에 처넣었다. 그녀는 예쁘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따라서 쟁반에 받쳐 들고 장미 옆에 앉았다. (중략) 그녀는 정교한 모습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장미 송이에 코를 댔다. 아름다운 이의 옷깃에 향수를 한 방울 살짝 뿌렸을 때처럼, 그녀는 그녀만의 정적과 고독에 한 다발의 노란 장미를 더한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다. 행복감이 미주(美酒)처럼 그녀의 피돌기를 훈훈하고 활발하게 했다.

 

 

마치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연지라는 인물의 새로운 출발을 노란 장미로 축하해 주는 것 같다. 소설에도 나오듯이 다른 색보다는 좀 희귀한 노란색 장미로. 작가는 이처럼 석류나무와 노란 장미를 대비시키면서 결혼생활과 이혼문제를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여성이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하고 있었다. 결혼 4년차라는 여성은 블로그에 ‘이 소설이 1980년대 초반에 나왔으니 벌써 40년 가까이 흘렀지만, 연지의 모습은 <82년생 김지영>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다른 여성은 ‘연지는 지금까지 읽은 박완서 소설 속 여주인공 중 가장 멋진 여자’라고 했다.


<삼국사기>에도 등장하는 장미
장미는 전 세계인이 좋아하고 가꾸는 꽃이다. 그래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온갖 품종을 만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1만 종 이상의 품종이 있고, 해마다 200종 이상의 새 품종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잉글랜드·룩셈부르크·루마니아·불가리아 등 여러 나라의 국화(國花)이기도 하다.


품종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5월 중순쯤부터 9월쯤까지 장미꽃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장미에 관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삼국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2014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 30%가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장미를 꼽았다. 20년 넘게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킨 것이다. 2위는 국화(11%), 3위는 코스모스(8%)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저절로 자라는 식물 중에서 해당화·찔레꽃 등이 장미의 할아버지뻘이다. 하나같이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진하다. 찔레꽃은 주로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지름 2㎝ 남짓의 하얀 꽃잎이 다섯 장이고, 꽃송이 가운데에 노란색의 꽃술을 촘촘하게 달려 있다. 분홍색이 살짝 들어간 찔레꽃도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다.


해당화는 진한 분홍색 꽃잎에 노란 꽃술이 아름다운 꽃이다. 산기슭에도 피지만, 바닷가 모래밭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에는 화단이나 공원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탐스럽게 달리는 주홍빛 열매도 볼거리 중 하나다.


남부지방 해안이나 산기슭에서는 땅이나 바위를 타고 오르며 자라는 돌가시나무(땅찔레)를 볼 수 있다. 이름은 돌밭에 사는 가시나무라는 뜻이다. 흰 꽃이 피는 것이 찔레와 비슷하지만, 포복성으로 땅을 기며 자라는 것이 다르고, 꽃도 지름 4cm 정도로 찔레꽃보다 크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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