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는 4개의 권리가 존재한다. 학생인권·교사인권·학습권·교권이다. 학생인권과 교사인권은 학생과 교사 모두가 갖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않는 기본적 권리이다.
학습권은 학생의 교육적 성장을 위한 교과교육·생활교육·인성교육 등을 포괄하는 교육받을 권리를 말하며, 교권이란 학생의 교육적 성장을 위해 교사가 교과교육·생활교육·인성교육 등을 통해 학생을 교육할 권리를 말한다.
아울러 이 4가지 권리는 상호대립과 충돌 구도가 아닌, 상호협력과 보완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
2010년. 교육계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경기도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여 학생인권 존중과 보호에 노력을 가했다. 이를 시작으로 타 시도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함으로써, 학생인권에 대한 인식은 전국적으로 제고되고 확산하였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가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고 학생이 인격적 주체로 존중받는 학생인권 신장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반면 구체성이 결여된 보편적 문구와 권리 중심의 해석으로 인해 ‘내 인권, 내 자녀의 인권’만 소중하고, 다른 학생들과 교사 등 ‘타인의 인권’은 간과하는 인식도 생겨났다.
그리고 이는 학교폭력 사안,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라는 타인의 인권에 대한 침해 현상으로 이어지며, 학생인권조례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 주요 조항들의 개정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제1조(목적) 이 조례는 (…중략…)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서 ‘학생인권’보다는 ‘자신과 타인의 인권’이라는 구체적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리고 일방향적인 ‘자유와 권리’보다는 ‘나의 인권존중을 위한 권리와, 타인의 인권존중을 위한 노력’이라는 양방향적 가치를 함께 언급한다면 학생인권 신장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제4조(책무) 3항.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장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자신의 인권’보다는 ‘자신과 타인의 인권’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담은 문구를 사용한다면, ‘교장 등 타인의 인권’ 보다는 ‘다른 학생 및 교직원 등 학교구성원 모두의 인권’이라는 문구로 학생의 시각에서 노력의 범위를 구체화한다면 인권에 대한 교육적 가치가 제고될 것이다.
셋째, 제4조(책무) 각 항의 주요 내용은 책무의 주체로서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 및 경영자, 학교의 장과 교직원의 책무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보태어 학생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주체인 학부모의 책임과 의무를 제시한다면, 다양한 교육주체의 협력적 기반이 조성될 것이다.
넷째, 제4조(책무)에서 단순히 학생인권 보호의 노력보다는, 학교현장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교육활동 침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자 학교의 4권리를 함께 존중하는 노력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학생 및 학부모는 모든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권을 존중하여야 한다’ 등의 문구로 학습에 관한 권리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교사인권과 교권은 교사만을 위한 권리가 아니다.
교원의 교육활동에 대한 교권침해와, 교사의 심리적·정서적 소진을 야기하고 교육활동 의지를 위축시키는 교사인권 침해는 결국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 이어지며, 그 피해는 모든 교육주체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학생을 교육하는 교사의 인권과 교권은 교육공동체 모두가 향유하는 공동의 권익임을 인식하고 노력함으로써 이러한 피해를 예방하고 상호 인권존중의 학교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학생이 갖는 세부적인 권리들에 대해서는 학생의 권리뿐 아니라, 다른 학생의 권리 보장을 위한 책임을 병기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제6조(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제7조(위험으로부터의 안전), 제13조(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 등에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학생의 노력, 안전수칙 준수 의무, 타인의 개인정보보호 책임 등을 함께 언급한다면 각 조항에 걸쳐 모든 학생의 권리를 더욱 폭넓게 보장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탄생한 지 13년이 흐른 2023년
최초의 학생인권조례가 탄생한 지 13년이 흐른 2023년. 우리는 또 한차례의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 중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의 가슴 아픈 사건과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 등으로 범국민적 공분이 끓어오르기 한참 전인 지난 5월부터, 이미 경기도교육청은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하고 있었다.
학생인권조례 개정 TF팀을 구성하고, 새로운 개념의 조례인 (가칭)‘경기도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로의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는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든 학생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개정으로, 다음의 가치를 추구한다.
첫째, 단위학교 교육공동체의 ‘자율’을 추구한다. 단위학교에 대한 일률적 규제를 다소 완화함으로써, 학교의 특성 및 상황, 교육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수렴 및 의사소통을 통한 생활교육과 학생인권이 실현될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한다.
둘째,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균형’을 추구한다. 자신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을 권리와,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책임의 균형을 강조함으로써, 학생인권을 위해 서로가 노력하는 인권친화적 학교문화를 조성한다.
셋째, 지속가능한 동행과 성장을 위한 ‘미래’를 추구한다.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는 학생집단,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교사집단의 동행은 위태롭다. 현재를 넘어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사제동행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학생의 교육적 성장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담은 조례를 통해 인성과 역량을 갖춘 미래인재를 육성한다.
지금까지 학생인권·교사인권·학습권·교권 등 모든 학교구성원의 권익이 보장되는 인권친화적 교육풍토 조성을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학생인권조례 개정이 학교현장의 인식 제고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기대가 큰 만큼 한편으로는 우려도 크다.
모든 교육공동체가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취지를 이해하고,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문제를 반영한 개정의 필요성을 이해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인식하고 실천하기를 소망한다.
아동복지법 등 개정 법안들 입법처리 서둘러야
더불어 학생인권조례 개정 및 교육공동체의 노력 등 교육분야의 역할만으로는 학교구성원의 권익 보호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법률 개선을 강력히 건의한다.
첫째, ‘「아동복지법」 제3조 7항’에 명시된 아동학대의 개념 및 주체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 기존 문구에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은 아동학대로 인정하지 아니한다’ 등의 문구를 추가함으로써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
둘째,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15조’에 교육활동 침해행위와 교사인권 침해행위를 각각 정의하고 명시함으로써 교권뿐 아니라 교사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18조’에 교육활동 침해 학부모 등 성인에 대한 조치를 포함하여야 한다. 법률에서 교육활동 침해행위의 주체는 ‘소속 학교의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으로 규정한 반면, 침해행위자에 대한 조치는 학생에 대한 조치만 있을 뿐, 학부모 등 성인에 대한 조치는 없다.
즉 학부모가 교권침해 행위를 하더라도 「교원지위법」으로는 제재할 근거가 없다. 침해 학부모에 대한 제재를 위해서는 별도의 신고 내지 소송이 필요하며, 이는 피해교사의 행정적·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2차 피해를 유발하고, 결국 피해교사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침해 학부모로부터 교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교원지위법」의 울타리 내에서 침해 학부모에 대한 조치가 가능해야 한다.
넷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1항’에 명시된 학생생활교육위원회의 징계 항목에 ‘전학’과 ‘심리치료’를 추가해야 한다. 의무교육기관인 초등학교·중학교의 경우 줄 수 있는 최고 중징계는 출석정지이며, 그마저도 1회 10일 이내, 연간 30일 이내라는 제한이 걸려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의 행동 개선을 위한 교육환경 변화를 줄 수 있는 적극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심리적 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은 치료를 통해 행동이 개선되도록 도와야 한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와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활용되는 ‘전학’과 ‘특별교육 또는 심리치료’ 조치가 학생생활교육위원회에서도 활용되도록 관련 법률 간 형평성 및 학교와 학생의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
모든 발전은 변화가 맞지만, 모든 변화가 발전은 아니다. 학생인권·교사인권·학습권·교권이 모두 존중받는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와 신뢰받는 공교육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교육분야를 넘어선 사회적·국가적 노력과 함께 할 때, 교육변화가 아닌 교육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