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벽 칼럼] 장례식이 말해주는 리더십 교육

2025.02.05 10:00:00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 중계방송을 시청하였습니다. 남의 나라 일이어서 우두커니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니어서 슬펐습니다.


전현직 대통령 5명이 나란히 앉아 있는데, 분명 수십 년간 정적이고 앙숙으로 서로 대립하며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던 사이지만, 이날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가 맞닿도록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최근 대선에서 서로 강한 비판을 날렸던 오바마와 트럼프 대통령이 친구처럼 다정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환담을 나누는 모습이 여러 번 화면에 잡혔습니다.


전현직 대통령들이 시시비비를 따지는 법정이 아니라, 영성을 만나는 성당에 모인 것만도 부러운 데, 정파를 떠난 정다운 모습에 그만 눈물이 나왔던 것입니다.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의연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더 놀랍고 경이로운 모습은 수천 명이 모인 대규모였고 거의 4시간이 넘게 장시간 진행된 국가적 행사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자의 말 한마디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총 6명의 추모자가 등장했지만, 소개하는 사회자나 방송 하나 없었습니다. 그 대신 지팡이를 든 집사가 무언으로 근엄하게 일반 좌석에 앉아 있는 추모자를 한 명씩 단상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심지어 추모자 중 한 명이 현직 대통령 바이든이지만, 조금도 달리 대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은 오로지 망자에게 집중하였습니다.


안내 멘트 하나 없지만, 절도가 있고 질서가 있는 진행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미국인, 총기사건과 범죄가 넘치는 미국 도시, 다양한 인종과 다문화가 공존하는 미국 사회가 아니던가요. 우리가 아는 혼란스러운 미국 안에 또 다른 질서정연한 미국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쯤 우리나라에도 자유와 자율이 공존하는 날이 올까요.

 

하나가 더 부러웠습니다. 비록 사랑하거나 존경하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픈 날이지만, 그래서 추모객은 다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있고 얼굴에 비장함과 엄숙함이 묻어 있지만, 행사 중간중간에 웃음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추모사가 유머러스했기 때문입니다. 망자의 드높은 인격을 회상하고, 그가 남긴 거대한 업적을 기리는 중간에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도 언급했고,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유머는 그냥 웃기는 말이 아닙니다. 유머는 슬픔과 고통에서 순간적으로 초월하게 하는 힘입니다. 부정성에 매몰되기 쉬울 때 유머는 잠시나마 여유를 찾고 긍정성을 만나게 해주는 회복탄력성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유머감(sense of humor)은 정의감(sense of justice)과 쌍벽을 이루어야 하는 능력입니다. 유머감이 있어야 함께 불의와 고난을 이겨내고 갈등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머는 리더가 필시 지녀야 하는 최고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리더는 남의 슬픔과 고통을 이용하고 확대하는 게 아니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어 포용하고 치유해 주어야 합니다. 리더는 힘들어도 시민 앞에서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반대로 환상적 시나리오로 진실을 호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을 묵묵히 견디어내는 게 아니고, 초월해 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절망적이 순간이더라도 희망을 선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언제쯤 우리나라 리더에게 유머감과 공감력을 기대할 수 있을지요.


공과 사를 구별하고, 자유를 누리되 자율을 실천하고, 진중함과 유머감에 조화를 이룬 리더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닙니다. 리더십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교육의 결과입니다. 어릴 때부터 시작한 훈육과 초·중·고 시절 다져진 기본교육으로 양성되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이러한 교육이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뚜렷이 목격했습니다.

 

미리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미국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에 모인 대통령 5명과 부통령 3명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모습도 보였고, 서로 눈길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도 있었습니다. 최고위층에 유색인도 몇 있고 추모사를 낭독한 6명 중에 흑인 인사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초대받은 추모객의 압도적인 대다수가 백인인 점에서 미국이 인종 사이에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도 뚜렷했습니다.


평소에 은행이나 상점에서 직원을 보면 너무나 느려 터져서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병원에 가면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길거리에 노숙자와 마약중독자가 넘치고, 총기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빈부격차가 한국보다 훨씬 심합니다.


저는 미국교육도 찬양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평균 교육은 우리보다 훨씬 뒤처져 있기 때문입니다. 공립학교는 시설만 낙후된 게 아니라 실력 없는 교사가 허다합니다. 그냥 느낌이 아니라 팩트입니다. 3년마다 전 세계 교육을 비교하는 PISA 연구는 미국 교사의 역량은 미국 성인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학생 학업성취도 역시 미국 학생이 한국 학생보다 월등하게 낮습니다.


하지만 상위 15% 학생들만 따지면 미국 학생들이 한국 학생보다 더 우수합니다. 미국이 수많은 사회문제를 안고도 세계 최강국 지위를 유지하는 힘은 리더 그룹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발전하는 이유는 평균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이 힘든 것은 사회 리더 그룹이 허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인재상 수상자, 삼성전자 미래인재상 수상자, 영재교육원과 영재학교의 영재들을 두루 만났습니다. 저는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수상자와 영재도 만났습니다. 지적 우수함에는 둘 다 비슷하겠지만, 극명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생기의 정도입니다. 사회·정서적역량 면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영재들은 생기발랄합니다. 우쭐거리는 것도 없지만, 우물거리는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보이는 호기심과 도전정신과 당돌함에 오히려 제가 멈칫하게 됩니다. 그들과 말하다 보면 왠지 제가 초라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영재들은 뭔가 소심하고 주눅 들어있어 보였습니다. 스트레스에 찌든 모습도 역력하였습니다. 그들과 대화해보면 미래에 대한 설계가 아니라 공부에 대한 하소연과 주변 어른에 대한 불평을 듣게 됩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어두운 기운에 제 마음마저 무거워집니다.


국가 리더들도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똑똑함과 다부짐과 추진력에는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비전의 폭과 마음의 깊이에 차이가 보입니다. 국익과 공익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것에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도 리더 그룹에 대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험한 풍파 속에 믿고 기댈 수 있는 선장과 선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교육이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학교와 집에서 아이들에게 맞고 틀리는 것에 앞서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지식과 함께 지혜도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주어진 미션에 성공하는 방법과 더불어 원대한 비전을 갖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미국은 혼란스러운 사회를 엘리트 리더 그룹이 잘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같고, 한국은 정반대로 일반 시민이 혼란스러운 리더 그룹을 잘 버텨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한국 리더 그룹도 최소한 시민의 수준에 맞추도록 교육받아야 하겠습니다.
 

조벽 고려대학교 석좌교수/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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