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킴 교수 “‌질문이 없으면 배움도, 성장도, 미래도 없다”

2026.01.06 10:00:00

 

“AI 시대는 자기 역량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최고의 나’를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기존 성공 모델의 ‘플러스 원(Plus One)’은 될 수 있지만, 결코 ‘더 원(The One)’은 될 수 없습니다.”


세계적 교육학자 폴 킴 전 스탠퍼드대 부학장은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해진 길 따라가기’ 식 성공 모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대세를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됐다”며 “학교에서의 배움이 잉여지식이 되지 않도록 교육의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는 국내 한 대학이 주최한 포럼에서 AI를 질산암모늄에 비유하며 “잘 쓰면 인류를 이롭게 하지만 교육이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제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창의적 질문을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 없는 교실에는 미래가 없다”
폴 킴 교수는 “학생이 배웠는지 확인하는 유일한 증거는 ‘질문’이다”라고 단언했다. 단순히 외운 내용을 말하는 것은 배움이 아니며, 스스로 궁금함을 느끼고 질문할 수 있을 때 배움이 비로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질문이 없는 교실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질문이 없으면 배움도, 성장도,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창의적 질문을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색다른 방식을 소개했다. 서로 다른 주제의 단어를 결합해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주의를 공부한다면 ‘민주주의 + 아픔’처럼 전혀 다른 맥락의 단어를 섞는 방식이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했을 때 MC 유재석 씨에게 ‘돼지고기’와 ‘피아노’로 질문을 만들어보라고 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생각하지 못했던 조합에서 창의적 질문이 나온다”고 말했다.

 

“커닝이 문제가 아니라 평가가 문제 … AI와 협업하는 평가로 바꿔야”
최근 대학가에서 챗GPT를 이용한 부정행위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교육의 책임을 강조했다. “챗GPT가 학생을 커닝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교수의 평가 방식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교재 내용을 베껴 쓰는 과제나 정답 찾기식 평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AI 활용을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AI 시대에는 AI를 활용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를 만들어야 한다. AI와 협업하며 더 나은 답을 끌어내는 능력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AI 디지털교과서(AIDT) 논란에 대해서도 “종이교과서를 그대로 전자책으로 옮겨놓은 수준”이라며 “AI를 파트너처럼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러 AI를 경쟁시키는 ‘메타 AI 활용 능력’을 강조했다. 챗GPT로부터 의견을 얻고, 클로드에게 더 나은 대안을 요구하며, 퍼플렉시티로 사실 검증을 시키는 방식처럼 인간이 AI 팀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티칭의 시대는 끝났다’
AI가 교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은 이미 AI가 더 잘하기 때문에 ‘티칭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 교사의 핵심 역할은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 경로를 설계해 주는 코치(coach)나 멘토(mentor)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AI는 설명을 잘하지만, 학생의 성향·흥미·정서까지 파악하며 길을 만들어 주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AI를 활용해 기존의 자기주도성이 수십 배 확장되는 ‘초자기주도력(Hyper-Self-Directedness)’을 새로운 핵심 역량으로 제시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AI와 드론을 결합해 농장 측량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사례를 언급하며 “AI와 협업할 줄 아는 학생은 능력이 폭발적으로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학생이 이런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초수동적 학생’들에겐 먼저 정서적 회복력, 즉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를 그는 ‘태도의 지능’이라고 표현했다.

 

‘태도의 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폴 킴 교수는 자신의 과거를 예로 들었다. 그는 초·중·고 시절 ‘하위 1%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스탠퍼드대에서 교육 혁신을 논의하는 자리에 서 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그때의 상황을 고정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태도의 지능이란 “실패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배움의 증거로 보는 태도”라고 정리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실패 경험’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 실패를 주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초자기주도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핵심 역량 4C(창의력·협력·비판적사고·소통)에 연민(Compassion)과 헌신(Commitment)을 더한 ‘6C’를 제시했다. “AI 시대일수록 인간에 대한 연민과 헌신이 기술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IBM 등 빅테크기업들이 AI 프로젝트에 실패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인간의 고통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술은 반드시 엇나간다”고 강조했다. 

 

폴 킴 교수는 한국 교육이 입시 중심으로 고착화된 현실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한국에서는 결국 의대가 정답이라는 구조가 굳어져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 대세를 따르는 것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는 “남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은 더 이상 생존 전략이 아니다. 그렇게 얻는 지식은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잉여 지식이 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배움의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배움은 종착점이 아니라 평생 이어지는 여정이며, 실패조차 배움의 일부라고도 했다. “오늘 실패했다면 ‘오늘 또 하나 배웠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AI 시대의 강자”라고 덧붙였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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