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혁명의 차이
진보와 혁명은 둘 다 변화를 의미한다. 둘의 차이는 변화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진보는 연속적 변화라면 혁명은 단절적 변화이다. 혁명은 어제의 지배계층이 하루아침에 몰락하여 피지배계층이 되는 지배계층의 단절적 변화를 의미하는 사회과학 용어이다. 이로 인해 갑작스럽게 새로운 제도와 질서가 등장한다.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뒤집히는 과정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르며, 과학의 발전도 누적적인 것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일어남을 설파했다.
사회 변화나 과학 패러다임의 변화처럼 인간의 신체와 뇌도 완만한 곡선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급격한 단층을 형성하며 변화함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쇠퇴가 아니다. 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 구조를 버리고 새로운 질서(패러다임)를 구축하는 ‘생물학적 혁명’의 순간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뇌 지도 재편 _ 5단계 혁명적 변화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Mousley et al., 2025)은 0세부터 90세까지 약 4,000명의 뇌 스캔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인간의 뇌가 평생에 걸쳐 9세, 32세, 66세, 83세라는 네 번의 결정적 변곡점을 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는 이 시기마다 리모델링 수준이 아닌 재건축 수준의 구조적 변화를 겪는다.
● 유년기: 폭발적 연결과 기초 공사
첫 번째 시기인 ‘유년기(아동기)’는 출생부터 9세 무렵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 동안 수십억 개의 새로운 신경 연결이 만들어지고, 불필요한 신경 연결은 삭제된다. 이 시기에 뇌 안의 회백질과 백질의 부피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피질의 두께(바깥쪽 회백질과 안쪽 백질 사이의 거리)가 최고점에 도달한다. 동시에 바깥쪽 뇌의 특징적인 융기부인 피질 주름이 안정화된다. 회백질은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하고, 백질은 그 정보를 신경계의 다른 부분으로 전달하는 뇌의 통신 네트워크 역할을 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경험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며 배우게 하는 직·간접 체험방식을 많이 활용한다. 이 과정을 통해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상상하고, 그 과정에서 질문하면서 배우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시기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배우는 단계이므로 친구와 놀기, 협력, 감정 표현, 갈등 경험 및 해결 등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이때 새로운 자극은 새로운 회로를 생성하고 반복은 회로를 강화한다.
● 확장된 청소년기: 이성 발달과 효율화
두 번째 시기인 청소년기는 9세 전후로 시작되어 최대 32세까지 지속된다. 이때는 백질이 성장하고 신경계의 여러 부분이 더 효율적으로 연결된다. 이성적 사고 중추인 전두엽이 발달하고, 시냅스 가지치기를 통해 뇌 효율화가 진행된다. 정서적·사회적 인식 능력이 확장되고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도 증가한다.
32세경까지 뇌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이 시기의 충동과 시행착오는 뇌의 미성숙함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뇌가 최적의 효율을 찾아가는 치열한 튜닝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교육은 실수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자율적인 선택과 책임을 연습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 성인이라 해도 뇌는 아직 성장 중임을 인지해야 한다.
● 성인기: 안정과 최적화
세 번째 시기인 성인기는 32세 경에 시작하여 최대 66세까지 지속된다. 연구팀에 따르면 30대 초반이 되면 뇌는 폭발적 성장이나 급격한 쇠퇴가 아닌 안정화된 모습을 보인다. 32세 전까지는 연결을 키우고 효율을 높이는 ‘재배선의 시기’라면 이 시기는 배선 구조가 안정된 상태에서 선택적으로 약간씩 바뀌는 시기이다. 뇌 구조는 안정화되지만, 기능은 고도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뇌는 새 판을 짜기보다는 기존에 형성된 인프라 위에서 구조를 재배치하고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뇌의 이러한 특성에 따라 성인교육은 사례기반학습, 문제중심학습, 다학문적 접근을 한다. 이 시기에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새 구조로 엮어낼 줄 아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동시에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성찰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느리지만 선택적인 재배선이 계속되는 시기이므로 뇌 가소성을 유지하기 위한 도전을 하는 것이 좋다. 예술·외국어, 최근의 AI 활용 시도처럼 아주 새로운 분야, 또는 글만 쓰던 것에서 영상을 통해 표현하는 시도처럼 익숙하지 않은 방식을 시도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는 뇌 건강과 창의력·적응력 유지에 보탬이 된다.
● 초기 노화기
네 번째 시기는 66세 경에 시작하여 83세 무렵까지 이어지는 초기 노화기이다. 은퇴와 맞물리는 이 시점에 뇌는 첫 번째 노화의 계단에 들어선다. 백질이 퇴화하며 정보 처리 속도는 느려지지만, 반대급부로 ‘의미 기반 지식(semantic memory)’과 ‘지혜’는 정점에 달한다. 계산은 느려져도 통찰은 깊어진다.
새로운 내용을 학습할 때는 장기기억에 들어 있는 기존 경험과 연결시키는 것이 보탬이 된다. 뇌신경 회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핵심을 정리하여 시각적으로 재구조화해 보고, 이를 반복하여 학습하는 것이 좋다. 초기 노화기의 뇌는 단순 정보보다 ‘의미 있는 것’에 더 잘 반응한다. 뭔가를 배울 때 그것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것이 학습에 보탬이 된다는 의미이다.
학습의 의미를 단순 지식 학습에서 삶의 통찰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단 토론, 세대 간 대화, 코칭 방식의 상호학습 등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은 뇌 가소성 유지에 보탬이 된다. 어떤 방식으로 배울 때 잘 이해가 되는지, 어떤 방법을 활용할 때 기억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등 자신의 학습 특성을 성찰하는 것도 지속적인 학습에 보탬이 된다.
● 후기 노화기: 다 핵심 모듈화
마지막 시기는 83세 이후의 후기 노화기이다. 이 시기가 되면 멀리 떨어진 뇌 영역 간의 연결 효율이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뇌의 전체 네트워크가 잘 작동하지 않아 뇌의 영역 간 소통이 줄어든다. 하지만 가까운 영역끼리의 결합(모듈화)은 더 단단해진다. 처리 속도나 유연성은 떨어지지만, 언어 능력과 인생 경험에서 나온 지혜, 의미 기반 판단은 상당 부분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의 교육은 ‘핵심’과 ‘반복’이 키워드다. 고령자의 교육과 학습은 5~10분 단위의 짧은 블록으로 나눠 진행하는 것이 좋다. 복잡한 논리보다는 명료한 메시지, 새로운 정보보다는 과거의 행복한 기억과 연결하는 감성적 접근이 효과적이다.
개인차 _ 능동적 뇌 관리
케임브리지팀의 연구가 보여주는 뇌의 생물학적 시계는 거스를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력하면 뇌의 극적인 변화 시기, 혹은 노화 시작 시기를 늦출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좋은 식생활을 유지하는 등 건강 관리에 유의하면 나이보다 신체 연령이 훨씬 젊어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초기 노화기 이후부터는 뇌의 연결 상태에서 개인 간 편차가 커지고, 평생의 학습 습관에 따라 학습 가능 수준은 크게 달라진다. 다언어 사용, 지속적인 외국어 공부를 포함한 학문 활동은 뇌 노화 속도를 늦춘다는 연구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Amoruso et al., 2025).
며칠 전 대학 총동문회에 다녀왔는데, 1937년생인 최고령 선배님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행사장에 오셨다. 아직도 포도주를 즐기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건강 비법을 여쭈니 만사를 즐겁게 받아들이며 살라고 하셨다. 106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그의 새 책 <백 년의 유산>에서 나이를 먹더라도 정신은 늙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쉼 없는 공부와 일, 그리고 사회와 연결된 책임이 건강한 삶의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뇌의 변화가 ‘혁명적’으로 찾아온다면, 우리의 대응 역시 ‘혁명적’이어야 한다. 나이 듦에 혁명적으로 대응하는 길은 끊임없는 학습과 호기심으로 뇌의 회로를 재배선하는 주체적인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뇌의 혁명기를 자신의 삶이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여부는 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시스템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