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령인구 급감과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전문대학이 새로운 생존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 중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서 만난 김영도 회장(동의과학대 총장)은 인터뷰 내내 ‘슈퍼 테크니션(고숙련 기술인)’과 ‘직업교육은 복지’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를 방문해 대학이 산업 인력을 책임지며 지역 혁신을 이끄는 모델을 직접 확인하고 돌아왔다. 4년제 대학보다 9% 이상 높은 취업률을 기록하며 실용 교육의 저력을 증명하고 있는 전문대학. 이제는 단순한 학위 기관을 넘어 인공지능(AI)시대를 선도하고 지방을 살리는 ‘평생 직업교육 플랫폼’으로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1월 애리조나주립대(ASU)를 방문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미국은 우주 산업 등 첨단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동시에 제조 현장의 숙련 기술 인력이 부족해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업입니다. 설계 능력은 뛰어나지만 실제 배를 만들 인력이 없어 산업 경쟁력이 무너졌습니다. 반면 애리조나주는 사막이라는 불모지임에도 TSMC(220조 원 투자), LG에너지솔루션(4조 5천 억 원 투자) 등 거대 투자를 유치하며 지역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기업들이 애리조나를 선택한 핵심 조건은 ‘안정적인 인력 공급’이었고, 그 역할을 ASU가 자임했습니다. 대학이 기업 유치 단계부터 ‘우리가 인력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며 산업을 견인하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한국 전문대학도 지역 혁신의 중심에서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고자 현장을 찾았습니다.”
ASU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ASU 측은 솔직했습니다. ‘우리는 연구 인력인 엔지니어는 양성하지만, 공정을 실제 운영할 테크니션과 오퍼레이터는 충분히 길러내지 못한다’라며 한국 전문대학의 현장 교육 역량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국내 전문대 12개교를 포함해 총 14개 대학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 ASU 총장과 제가 단체 대화방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협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선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과 헬스케어 두 분야에서 교육콘텐츠를 공동 개발하고 공유할 계획입니다. 단순한 학생들 연수 수준을 넘어 공동 커리큘럼 설계와 인증 체계 구축을 통해 한국 직업교육 모델의 글로벌 확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벌써 임기 1년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성과를 꼽는다면.
“규제 혁파를 통해 전문대의 지평을 넓힌 점을 꼽고 싶습니다. 임기 동안 성인 학습자 입학 정원 제한을 완화해 현장 인력이 언제든 학교로 돌아올 길을 열었고, 전문기술 석사 과정에 간호 분야를 포함시켜 고숙련 기술교육의 전 트랙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학문 중심의 석사 과정과는 다른 실증기술 연구·개발 및 사업화(R & BD) 중심 과정입니다. 최근 영진전문대 전문기술 석사 졸업생이 창원폴리텍대 교수로 임용된 사례는 숙련 기술이 ‘설명 가능한 기술’로 정리돼 교육 현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입니다. 남은 임기에는 학사 학위 전공심화과정의 정원 제한(현행 20%)을 확대해 성인 학습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직업교육의 법적 토대가 될 「직업교육법」 제정을 반드시 마무리하겠습니다.”
취임 초부터 「직업교육법」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직업교육은 특성화고(중등), 전문대(고등), 평생교육(고용부)으로 완전히 분절돼 있습니다. 특성화고 학생이 전문대에 진학해 숙련도를 높이려 해도 교육청의 ‘고졸 취업률’ 지표에 묶여 제도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직업교육법」은 이 흐름을 하나의 연속된 트랙으로 묶고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단년도 사업 중심이 아닌 지속 가능한 재정 지원 체계가 마련됩니다. 직업교육은 국가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식 도제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프랑스는 2018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위한 법’을 통해 교육 바우처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국민 개개인에게 연간 500유로(약 75만 원) 상당의 계좌를 지급해 원하는 시기에 대학이나 도제학교(CFA)에서 기술을 배우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교육기관은 정부 공모가 아니라 학습자의 선택으로 평가받습니다. 우리도 공모 사업 위주 지원에서 벗어나 학습자 중심의 바우처 체계로 전환해 자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높여야 합니다.”
“평생교육이 복지”라는 말씀도 그런 맥락인가요.
“그렇습니다. 복지를 현금 지원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것은 일시적 방편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복지는 개인이 다시 배워 스스로 자립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퍼주기식 복지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경제활동 기간을 늘리는 것이 ‘교육 복지’의 핵심입니다. 전문대는 이미 지역 주민 재도약을 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복지 예산의 일부를 평생 직업교육과 연계하고 전문대를 전 연령층이 드나드는 ‘커뮤니티 칼리지’로 공식화해야 합니다. 이것이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선진적 복지 모델입니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전문대 인기는 높습니다.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최근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급여 격차가 줄거나 역전되는 사례가 늘면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블루칼라는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스마트 팩토리에서 로봇과 협업하며 공정을 관리하는 고난도 기술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알려지면서 전문대는 71%에 달하는 높은 취업률과 높은 입시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 취업률은 4년제 대학보다 9% 이상 높고, 정시모집 지원율은 16대 1에 육박합니다.”
그러고 보니 전문대에서도 AI 활용 교육이 활발합니다.
“전문대는 AI 알고리즘 자체를 연구하기보다는 AI를 실무에 접목해 생산성을 높이는 ‘활용 전문가’ 양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종종 ‘서울대생을 이기는 셈법’을 이야기합니다. 학업성취능력이 7인 학생이 AI 활용 능력 10을 갖추면 7×10=70의 성과를 냅니다. 반면 학업성취능력이 10이라도 AI 활용 능력이 1이면 성과는 10에 그칩니다. 이제는 학벌이 아니라 AI 활용 역량이 성과를 좌우하는 시대입니다. 다만 AI 결과를 무조건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교육을 병행해 AI의 답을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앞으로 대학 간 경계를 허물고 AI 실무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인증제와 경진대회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저출산과 지역 소멸 위기 속 생존 전략은 무엇입니까.
“인구절벽은 위기이지만, 전문대에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자체와 지역 산업체가 인력난에 직면하면서 지역 밀착형 전문대의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전문대는 4년제 대학보다 지역 정주 비율이 10%가량 높습니다. 지역에서 배워 지역 기업에 취업하는 ‘밀착형 인재’를 키우기 때문입니다. 라이즈(RISE) 체계 안에서 지자체가 정주 인프라를 만들고 대학이 교육을 공급하는 구조를 통해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엔진이 될 것입니다.”
유학생 정책도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유학생 30만 시대지만 이제는 ‘왔다가는 유학’이 아니라 ‘정주하는 유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역 중소기업과 산업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정주형 인재가 필요합니다. 법무부와 협의해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제도를 공식화했고, 올해 3월부터 전국 24개 대학에서 첫 입학생을 받습니다. 전문대 유학생의 약 70%가 한국 정착을 희망하는 만큼, 교육부터 취업·비자 전환까지 책임지는 ‘정주 유학의 전초기지’가 되겠습니다.”
전문대에 대한 재정 지원은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초·중등 예산은 70조 원 규모지만, 고등교육은 15조 원 수준입니다. 전문대 예산은 9천억 원으로 1조 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초·중등 예산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늘어나지만, 전문대는 16년간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을 겪었습니다. OECD 국가와 비교하면 50%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고등직업교육 재정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현실화하고 안정적인 재정 트랙을 마련해야 합니다.”
향후 10년, 전문대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전문대는 2~3년 학위기관이라는 인식부터 깨뜨리겠습니다. 청년부터 은퇴자까지 언제든 찾아와 마이크로 디그리나 자격과정을 이수하는 ‘지역의 평생 직업교육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10년 뒤 전문대는 산업 경쟁력을 지탱하고 지역 정주를 이끌며 복지 기능까지 수행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남은 임기 동안 그 제도적 기반을 닦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