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교사 정치기본권, 금기에서 권리로

2026.01.06 10:00:00

 

세계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해외의 교육 환경 또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특히 중국과 같은 국가에서 한국 학생들을 교육하는 재외한국학교는 한국 교육의 방향과 교육과정을 해외에서 실현하는 동시에 현지 사회의 문화·법·정치 환경을 존중해야 하는 이중적 책무를 갖는다. 이런 특수한 맥락 속에서 교원의 정치기본권 문제는 단순히 국내 교육에서의 논의를 넘어, 국제사회에서 한국 교육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의 ‘교원의 정치기본권’
한국에서는 교원의 정치적 표현, 정당 가입 등을 폭넓게 제한하고 있다. 이는 1960~70년대 권위주의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규제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해 왔다. 그러나 해외에서 바라볼 때 이러한 규제는 국내보다 더 복합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는 공무원이나 교원의 정치적 활동을 어느 정도 제약하고 있지만, 정당 가입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OECD 국가들 상당수 역시 정당 가입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교원이 지역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은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직무 중 중립성’과 ‘직무 외 자유’로 명확히 구분해 보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의 경우 연방 대법원은 교사의 시민적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왔으며, 실제로 많은 주(州)에서는 교사가 지역 의회나 교육위원회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무 수행과 선거운동이 명확히 분리되는 한, 정치 후원이나 의견 표명, 정당 가입은 헌법적 권리로 간주된다. 


유럽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프랑스는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되 정당 가입의 자유는 보장하며, 영국은 교직을 ‘민주사회 형성에 참여하는 전문직’으로 규정해 지역 정치 참여를 장려한다. 핀란드·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교원이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학교 운영에도 다양한 정치적 배경을 가진 교사들이 참여함으로써 거버넌스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수업의 정치적 중립성’은 엄격히 유지하되, 교원의 일반적 시민권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진다. 이는 교원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침묵해야 교육이 중립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업에서 균형성과 다원성을 지키는 전문성을 통해 중립성이 실현된다는 철학에 기반한다.


독일·핀란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교사가 지역 정치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민주주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역할을 한다. 독일 연방의회에서 교사 출신 의원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교원의 정치 참여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점, 오히려 교사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참여할수록 교육활동이 성숙해지고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정치적 중립성은 전문적 윤리의 문제
그러나 한국의 법과 제도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재외한국학교 교사 역시 한국 법령을 기반으로 정치적 표현과 정당 활동이 전면 제한된다. 해외라는 특수한 사회적·정치적 환경을 고려할 때 교사의 신중한 정치활동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직무 외의 모든 정치기본권까지 제한받는 것은 글로벌시대의 교육 환경과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재외한국학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 교육의 얼굴’ 역할을 한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은 국제적 감각과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동시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주주의 가치를 함께 배우게 된다. 하지만 정작 이 가치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정치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면, 이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도 어긋나고, 나날이 높아져 가는 대한민국의 위상에도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민주주의적 권리는 제한된 채 살아야 한다는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이 재외한국학교는 단순히 한국 교육과정을 그대로 옮겨놓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법·정치 환경을 경험하는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세계 시민성을 길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교사들이 사회 현안에 대해 건전한 토론과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학생들 역시 국제적 감각을 익히고 복잡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주도성, 비판적 사고력, 세계 시민성 등을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교사의 사회적·정치적 이해 능력을 필수적 요소로 전제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같이, 수업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특정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 전문적 윤리의 문제이지,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묶어두는 방식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의 특성상 정치적 민감성을 더욱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는 점은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정치적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현재의 획일적인 규제는 국내외 교육 현실, 민주주의 환경, 학생의 선거권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교원의 정치기본권 문제를 재외한국학교까지 포함하는 더욱 넓은 시각에서 논의해야 한다. 국내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해외 교육 환경, 재외동포 사회, 재외교육기관 운영 경험 등을 참고하여 한국의 법·제도와 글로벌 기준 간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 학생·학부모·교사·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화가 이제는 필요한 때다. 해외의 사례를 연구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법·제도를 고민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세계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은 교사 스스로 민주주의 주체로 설 수 있어야 가능하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며 교육의 역할 역시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교원의 정치기본권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낙종 중국 옌타이한국국제학교장 /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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