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남·광주통합교육청은 지역의 초·중·고교에 논·서술형 평가를 채택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교육계 일각에서 끊임없이 주장해 온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비롯한 5지선다형 평가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개혁의 한 측면이다. 이로써 인공지능(AI)과 함께 사는 디지털 대혁명의 시대에 부합한 교육방식으로의 전환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모든 사항에는 양면성이 있어 이에 즉각적으로 맞서 새로이 초래할 또 하나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늘 하는 말처럼 “자녀 교육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당장의 학부모에게 불어닥칠 반응은 무엇인가? “교육청에서 시험 문제를 전부 논·서술형으로 바꾼대요! 당장 우리 여섯 살짜리 아이도 글쓰기 학원에 등록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불안과 우려가 벌써부터 학부모의 탄식으로 둔갑하여 저절로 들려오는 듯하다.
일단 동네 놀이터나 맘 카페에 이런 뜬소문이 한 바퀴 돌기 시작하면, 그날로 영유아 학원가의 간판은 재빠르게 교체될 것이다. 이름도 거창한 ‘창의·융합 영유아 논술반’, ‘대치동식 프리미어 7세 글쓰기 마스터 코스’ 같은 교묘한 호기심 유발의 커리큘럼이 둔갑해 등장하기까지는 단 24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직 숟가락질도 서툰 아이들이 연필을 꽉 쥐고 깜지를 쓰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풍경을 상상하면,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교육계의 고질병이자 불치병인 ‘선행학습 불안증’의 민낯이라 할 것이다.
다시금 전남·광주통합교육청이 AI 시대에, 미래 인재 역량을 키우겠다며 초·중·고교에 논·서술형 교육 및 평가를 전면 도입하겠다는 찬란한 청사진은 취지는 백번 옳고 아름답다. 5지선다형 찍기 시험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겠다는 방향성에는 온 교육계가 박수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가슴은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는 순간, 본질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사교육의 새로운 먹거리’로 변질되어 온 역사를 그동안 숱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놀이 과정 속에서 온몸으로 세상을 배워야 할 영유아들에게, 이 제도적 변화가 의도적인 글쓰기 노동과 스트레스, 그리고 변종 사교육을 부추기는 강력한 촉진제가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러운 것은 교육자의 지나친 망상인가?
우리는 뇌 과학과 발달심리학의 대가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이 주관한 학술 세미나 발표에 따르면, 영유아기(만 3~6세)의 전두엽은 종합적인 사고력이나 정교한 글쓰기 능력을 담당하기보다, 감정 조절과 공감 능력, 그리고 시각·청각·촉각을 통한 자연스러운 자극 속에서 발달한다. 전두엽이 준비되기도 전에 의도적인 글쓰기와 철자 맞추기 훈련을 강요하는 것은, "굳지 않은 시멘트 위에 건물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아이에게 지독한 학습 무기력증과 정서 장애를 선물할 뿐입니다”라는 경고가 다시금 사회적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영유아 사교육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백서에 따르면, 과도한 인지적 선행학습을 받은 아동의 스트레스 호르몬(코티솔) 수치가 정상 아동에 비해 최대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교육청의 논·서술형 도입 취지는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겠다”, “생각의 힘을 기르겠다”는 것인데, 정작 시장에서는 “정답에 맞춘 논술 실전 교육”을 주입하느라 영유아의 동심을 뭉개는 발 빠른 사교육이 판을 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새로운 교육 정책과 함께 이 지독한 ‘불안’, ‘두려움’ 유발 마케팅을 잠재우고 교육의 본질을 지켜낼 획기적인 방책이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좋은 정책이 나쁜 사교육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교육청의 행정력과 제도가 ‘도끼눈’을 뜨고 사교육 시장의 길목을 차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저귀를 차고 있는 영유아 선행학습을 차단할 방어책은 무엇인가?
첫째, 국공립 유치원 및 어린이집 대상 ‘글쓰기 숙제 및 인지 학습 원천 금지령’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공교육의 시작점인 유치원 단계부터 방어벽을 쳐야 한다. 교육청은 관내 모든 영유아 교육기관에 한글 쓰기 숙제나 의도적인 작문 수업을 전면 금지하고, 오직 ‘말하기’, ‘몸으로 표현하기’, ‘그림 그리기’ 중심의 놀이 중심 교육과정(누리과정)을 철저히 고수하도록 감독해야 한다. 유치원 알림장에 “오늘 ○○가 문장을 완벽히 썼습니다” 대신, ‘"오늘 ○○가 모래성을 쌓으며 멋진 상상력을 뽐냈습니다“라는 피드백이 오가는 강력한 소통 문화로 이끌어야 한다.
둘째, 사교육 시장의 영유아 논술·글쓰기’ 과장 광고 특별 단속 및 높은 범칙금 부여가 필요하다. 불안을 먹고 자라는 학원가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 학원법을 개정하거나 지자체 합동 조례를 통해, 만 6세 이하 영유아를 대상으로 ‘초등 논·서술형 대비’, ‘대입 논술 장기 대비반’ 등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키워드를 사용해 광고하는 학원 및 교습소에게는 강력한 과태료를 부과하고 3진 아웃 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징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불안 마케팅의 싹을 잘라내는 기술적이자 교육적인 방어라 할 것이다.
셋째, 초등 저학년 ‘무(無)시험, 무(無)글쓰기 평가’ 공표를 통한 불안 해소다. 학부모들이 영유아 단계부터 사교육을 찾게 될 이유는 결국 초등학교 입학 직후 만나게 될 평가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교육청은 논·서술형 전면 도입의 청사진을 발표함과 동시에, 초등학교 1~2학년 과정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지필형 논·서술형 평가도 보지 않으며, 오직 말하기와 그림 그리기 등 오감 중심의 정성 평가만 진행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대대적으로 공표해야 한다. 초등 진학 후 최소 2년간 글쓰기 시험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 7세 아이에게 논술 학습지를 들이밀게될 부모들의 조급증도 자연스럽게 순화 내지 사그라들 것이다.
교육 철학자 페스탈로치는 교육은 인간의 천부적인 능력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자연 속에서 벌레를 관찰하고, 친구들과 모래 장난을 하며 느낀 거친 감정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일 때, 그것이 먼 훗날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묵직한 논·서술형 문장으로 연계되는 법이다. 영유아기에 필요한 것은 하얀 종이 위에 채워 넣을 검은 글자가 아니라, 부모의 따뜻한 눈빛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놀이의 경험이다.
이제 전남·광주통합교육청을 필두로 도미노처럼 논·서술형 평가 방식의 도입을 추진하게 될 앞으로의 모든 교육청에 당부하고자 한다. 제도의 화려한 탑을 쌓기 전에, 그 탑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할 영유아들의 동심을 보호할 안전 매트를 먼저 깔아주길 바란다. 모든 학교가 사교육의 꼼수 변화구에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공교육의 직구 신뢰를 보여줄 때,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억지로 연필 잡기 대신 맑고 순수한 웃음과 전인적인 교육방식을 되찾을 것이다. ‘응애’ 소리를 내며 태어나 호적의 검은 잉크가 채 가시기 전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을 조장하는 사교육 전단지가 아니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나 운동장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