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말 기술]⑭ 학부모와 적정한 거리 만들기

2026.08.27 18:14:03

학부모와의 관계만큼 교사에게 까다로운 것이 있을까요. 너무 가까우면 사적인 영역이 흔들리고, 너무 멀면 아이 이야기를 나눌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습니다. 반갑게 인사만 나누고 지나치자니 왠지 아쉽고, 마음 편히 이야기를 주고받자니 어느새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이 어중간한 자리에서 매년 새로 만나는 학부모들과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갈지, 고민하지 않은 교사는 없을 겁니다.

 

아이 위해 나란히 걷는 관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관계라는 뜻입니다. 너무 멀면 아이를 위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대할 때마다 서로 불편해집니다. 너무 가까우면 자칫 교사의 공적인 생활 이외의 것까지 침해받을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 원칙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요즘처럼 소통 창구가 다양해지고 경계가 자꾸 흐려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거리를 지킨다는 것은 관계를 오래 지키기 위한 리듬입니다.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처음에는 좋아 보여도 결국 어느 순간 사소한 오해 하나에 관계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너무 멀면 정작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이야기를 나눌 접점조차 없어집니다. 좋은 거리는 학부모를 밀어내는 자리도, 끌어안는 자리도 아닌, 아이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좋은 거리를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은 교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학부모에게 교실의 문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습니다. 어릴 적 자기가 다니던 학교의 기억이 좋았든 좋지 않았든, 부모가 되어 교실 앞에 서면 그 시절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학부모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교사가 반 발짝 먼저 다가가는 편이 낫습니다.

 

교사 노력이 부모 자세 정해

 

학부모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첫 번째는 오늘 잘한 행동이 눈에 띄었던 아이에겐 그날이 가기 전에 칭찬 문자를 보내거나 한 달에 한 번은 학급 전체에‘이 달에 있었던 우리반 이야기’같은 통신문을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엔 대단한 이야기를 담거나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은우가 오늘 발표를 아주 잘했어요. 가정에서도 칭찬해 주세요”정도의 한 줄 또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우리 교실 이야기 정도를 담습니다. 이 노력이 학부모의 하루를 밝게 만들고, 그 밝은 마음이 다시 교실로 돌아온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이런 소통이 쌓여 있으면 학부모는 담임 교사를 이미 아는 사이처럼 편안하게 여기게 됩니다. 갈등이 생겨도 이야기가 부드럽게 풀리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처음부터 명확한 선을 함께 정하는 것입니다. 지난 3월부터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함께 발표한 ‘학교 민원 대응 및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학부모 민원은 원칙적으로 학교 대표번호와 온라인 학부모 소통 시스템 등 학교가 미리 정한 공식 창구를 통해 접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사 개인의 연락처나 개인 SNS로 민원을 받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지요.

 

교사의 학교 민원 대응은 교사 개인의 일이 아니라 기관의 일이라는 새 지침은 오랜 세월 혼자 감당해 온 교사들에게 든든한 뒷받침이 됩니다. 학기 초 이 지침을 가정에 부드럽게 안내해 두면 좋겠지요. 어떤 창구로 연락하시면 좋은지, 어떤 시간대가 편한지, 어떤 경우가 예외인지 미리 말씀드리면 학부모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원칙이 있어야 예외도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법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학부모와 이야기할 때 아이 편에 서는 것입니다. 학부모가 어떤 말을 꺼낼 때, 우리가 무심코 나오는 반응은 대개 자기방어입니다. 그보다는 ‘그렇게 들으셔서 마음이 많이 안 좋으셨겠어요’라고 한 박자 늦추어 감정을 먼저 받아 주세요. 그다음에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차분히 풀어 가는 것이지요. 이 순서만 지켜도 대화는 다투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를 함께 살피는 자리로 바뀝니다.

 

학부모와의 거리는 결국 하나의 리듬입니다. 필요할 때 가까이 다가가고, 지켜야 할 때 물러설 줄 아는 리듬이지요. 이 리듬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학기 초의 안내 한 문단, 짧은 칭찬 한 마디, 어려운 순간에 한 박자 늦추는 응답. 이런 사소한 결이 쌓여 한 해의 관계를 만듭니다.

 

학부모를 어떻게 대할지 매번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자리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학부모의 기분이 아니라 다음 날 교실에서 아이들을 맞이할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거리를 지키는 일은 냉정한 일이 아니라, 오래 다정할 수 있기 위한 정성스러운 준비입니다.

김성효

전북 문창초 교감

상처받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교사의 말 기술 저자

김성효 전북 문창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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