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교 현장에서 2027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한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원서 접수를 시작했다. 우리는 강산이 3번이나 바뀌기 이전, 수능이 출범하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가? 1993년(1994학년도) 기존 학력고사의 암기식 교육 탈피와 고등 사고능력 평가라는 원대한 명분을 내걸고 기대를 모으며 첫발을 뗀 수능이 이제 32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암기형 인재 양성을 탈피하겠다는 초기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행 수능은 무한 상대평가 속 ‘단 1점으로 학생을 일렬로 세우는 정밀 측정 도구’이자 사교육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사회적 갈등의 진앙으로 전락했다. 이제 수능 개편 요구는 정책적 미봉책과 일관성 부재가 초래한 실패의 역사에 대한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지난 32년 동안의 수능 잔혹사를 탐색해 실패의 역사와 구체적 사례를 밝히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모색을 도모하고자 한다.
첫째, 2002학년도 ‘이해찬 세대’와 난이도 조절 실패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기 “하나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구호 아래 공교육 정상화와 수시모집 확대 정책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2001학년도 ‘물수능’에 맞춰 준비하던 수험생들은 2002학년도 수능에서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만점자 수 및 평균 점수 급락)하며 막대한 혼란을 겪었다. 학습 부담 완화라는 명분 뒤에 준비되지 않은 난이도 널뛰기 정책이 초래한 학력 저하 및 입시 파탄의 대표적 사례다.
둘째, 2008학년도 ‘수능 등급제’ 파동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8학년도 수능에서 점수 체제를 폐지하고 1~9등급만 표시하는 ‘수능 등급제’를 강행했다. 수능 영향력을 줄이고 학생부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였으나, 단 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로또 수능’ 현상을 낳았다. 1등급 구분선(Cut-line)에 걸린 수험생들의 강한 반발 속에 대학교육협의회와 대학들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대학별 고사를 부활시키는 부작용을 낳았고, 결국 단 1년 만에 폐기되었다.
셋째, 2014~2017학년도 ‘A/B형 수준별 수능’ 및 ‘쉬운 수능’의 실패다. 박근혜 정부 초기 도입된 국어·수학·영어 A/B형 수준별 선택 수능은 학생들의 선택 전략에 따른 극심한 유불리 문제를 야기하며 2년 만에 단계적 폐지 수순을 밟았다. 뒤이어 추진된 ‘쉬운 수능’ 정책은 2015학년도 수능 수학 B형 만점자 비율이 4.3%에 달해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 되는 변별력 상실 사태로 이어졌다.
넷째, 제2외국어 ‘아랍어 쏠림’과 선택과목 유불리 난맥상이다. 수능 성적 산출에 표준점수가 도입된 이후, 로또식 대박을 노리고 공부를 하지 않고도 특정 과목을 선택하는 왜곡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제2외국어 영역의 ‘아랍어 로또’ 현상은 수년 동안 지속되다 결국 절대평가 전환으로 이어졌다. 2022학년도 이후 도입된 문·이과 통합형 선택과목(국어 언어와 매체/화법과 작문, 수학 미적분/기하/확률과통계) 역시 특정 선택과목 집단의 표준점수 상한선이 높아지는 구조적 불평등을 야기하며 사교육 의존을 가중시켰다.
다섯째, 킬러 문항 파동과 변별력의 오용이다. 2024학년도를 기점으로 공교육 과정을 벗어난 이른바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이 전달되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시대에 반하는 변형 문항 및 매력적 오답 설계 방식이 동원되었다. 평가원이 변별력이라는 명목하에 학문적 사고력보다는 ‘시간 내 실수 안 하기’ 및 ‘제시된 꼬인 문제 풀기’를 요구하면서, 수능은 학업 역량 평가가 아닌 사교육 기술 습득 시험으로 변질되었다. 실제 <수능 해킹>이란 책도 등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32년간 반복된 난이도 널뛰기와 제도 미봉책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입시 패러다임의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다.
첫째, 수능의 ‘절대평가 기반 자격고사’로의 전환이다. 수능을 단일점수 정렬 도구가 아닌, 대학 학업 이수 능력을 검증하는 국가 자격고사로 전환해야 한다. 9등급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5단계 절대평가(A~E) 또는 Pass/Fail 성격의 자격고사 체제로 단계적 재편을 도모해야 한다. 1점 차이로 학생의 성패를 가르는 소모적 무한 경쟁을 종식시키고 공교육 본연의 교육과정 이수에 집중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둘째, AI 기술 기반 서·논술형 평가 체제의 도입이다. 이는 현재 국가교육위원회의 주도 아래 국민의 의견 수렴 과정에 있으며 거의 가닥을 잡은 것으로 파악된다. 선다형 객관식 위주의 수능은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 문제해결력과 비판적 사고를 정밀히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점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AI 1차 자동 채점 및 교차 분석 → 전문 채점위원단 2·3차 검증 체제’를 구축하여 서·논술형 문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단순 암기형 문항을 제거하고 텍스트 해석 및 논리 구성 능력을 측정하는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국 모든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연수가 지역 교육청별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수능 연 2회 복수 응시제 및 수시·정시 모집 일정 통합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12년의 학업 성과를 결정짓는 ‘단판 승부’식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수능을 연 2회(예: 8월, 10월) 시행하여 수험생에게 최선의 성적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도 재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수시 및 정시 모집으로 분절된 입시 일정을 단일 체제로 통합하여,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파행 수업을 막고 정상적인 공교육 이수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오랫동안 요구되어 온 문제로 최근에는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넷째, 대학의 선발 자율권과 ‘학생부 맥락 평가’의 결합이다. 수능이 자격고사화됨에 따라 대학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한 학생부 중심의 종합적·맥락적 평가 방식을 고도화해야 한다. 대학별 고사를 지필고사로 부활시키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고교-대학 연계 인공지능 학생부 분석 평가 체제를 지원하고, 학생의 성장과 도전 과정을 종합 평가하는 선발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부여해야 한다. 이제 대학도 국가 평가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자체적으로 우수한 두뇌를 활용해 매우 공정한 평가 체제를 개발해야 한다는 책임에 봉착했다.
32년 동안 수능은 정시와 수시,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쉬운 수능과 불수능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해 왔다. 난이도 조절이라는 미시적 테크닉으로 입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정치가들의 시도는 매번 교육 현장의 혼란과 사교육비 폭증이라는 부작용만 낳았다. 이제 수능을 정밀한 정렬 도구에서 탈피시켜 국가 수준의 기본 학력 자격고사로 바로 세우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어떤 방식의 수능 평가 체제를 도입해도 그로 인해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격차를 유발하여 매우 민감한 문제로 대립하고 의견은 늘 분분했다. 최근 대통령의 교육부 업무 보고에서 “이런 정답 찾기 체제를 계속할 거예요?”라는 지적과 함께 국가교육위원회를 중심으로 수능의 서·논술형 역량 평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그러한 사례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학생의 부담을 완화하고 낡은 선다형 평가를 개선하며 학생부 내실화를 기하고자 해도, 공교육의 신뢰 회복과 사교육 시장 의존도를 비롯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정책은 생사를 건 교육열로 인해 건드리면 또 다른 문제를 잉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육은 IB 체제와 같은 “세계적 표준(Global Standard)”에 다가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가장 먼저 정답 찾기 기술자 양성소라는 오명을 벗고 AI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 본연의 ‘바람직한 인간 육성’과 ‘미래 역량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틀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