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갈등이 생기면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보다 먼저 친구 이름부터 꺼내는 경우가 많다.
“쟤가 먼저 그랬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어른에게는 책임을 피하려는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 실제로 순간을 모면하려는 말일 때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과 이런 장면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조금 다른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정말 자기 잘못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자기에게 일어난 상처는 크게 기억하면서 자신이 준 상처는 잘 보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어느 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말로 상처받거나, 억울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 스물다섯 명 가운데 스무 명 가까이가 손을 든다. 이어서 다시 묻는다. “그럼 반대로 다른 친구를 따돌리거나, 말로 상처 준 적이 있는 사람?” 이번에는 서너 명만 손을 든다.
손을 든 수만 보면 교실에는 상처받은 아이는 많은데 상처 준 아이는 거의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모두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지만 자신이 준 상처는 장난이나 상황 속에 묻어두기 쉽다. 교실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다른 아이의 이름부터 꺼내는 모습도 그와 닮아 있다.
“쟤가 먼저 그랬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 안에는 자신만 나쁜 아이가 될 것 같은 불안, 다른 아이는 빠져나가고 자신만 혼날 것 같은 억울함, 친구들 앞에서 체면을 잃을 것 같은 부끄러움도 섞여 있다. 아이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공평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비로소 행동을 바라볼 수 있는 아이도 있다.
그래서 상대가 한 일을 확인한 뒤 다시 묻는다. “그러면 너는 무엇을 했니?” 상대가 한 행동과 내가 한 행동을 나란히 두면 아이는 억울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몫을 볼 수 있다. “남이야 어떻든 네 잘못부터 인정해”라고 하면 아이는 행동보다 억울함을 증명하는 데 매달린다. 반대로 상대의 잘못을 모두 따져준 뒤에야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 자기 행동을 계속 상대에게 붙일 수 있다. 그래서 공평함은 확인해 주되 책임의 순서까지 바꾸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른 아이가 한 행동도 따로 확인할 거야. 네가 억울하게 느낀 부분도 듣겠다. 그런데 지금은 네가 한 행동을 보자.”
상대가 먼저 놀렸다는 사실과 자신이 친구를 밀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고 자신의 행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놀림을 받아 화가 난 것은 이해해. 하지만 밀기로 한 것은 네 행동이야. 화가 난 이유는 함께 해결하되, 친구를 민 일은 네가 바로잡아야 해.”
아이에게 억울함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억울함과 책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자기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하는 쪽에 가깝다. 상처받은 경험만 기억하면 자신은 늘 피해자로 남고, 상대에게 준 상처만 따지면 자기 마음은 들리지 않는다. 두 방향을 함께 봐야 관계에서 자신이 만든 몫도 찾을 수 있다. 이 구분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질문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누가 먼저 그랬지?”에서“그때 나는 무엇을 했고,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로 옮겨간다. 책임은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인정하는 일이 아니다. 사건 속에서 자기 몫을 정확히 찾아보고,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준비하는 일에 더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