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편지> 사랑해, 말순씨

2005.11.03 15:09:00

행운의 편지를 추억하다


‘행운의 편지 주인공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와 똑같은 내용의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지 않으면 당신에게는 엄청난 불행이 닥치게 됩니다.’

한때 대한민국에 무섭게 퍼져가던 이 ‘피라미드식’ 편지를 기억하는가. 별 것 아니라고 애써 무시하면서도 그냥 쓰레기통에 구겨버리기엔 못내 찝찝했던 편지, 행운의 편지라는 제목과는 달리 ‘누구누구는 이 편지를 무시해서 암살당했다’는 등 섬뜩한 내용으로 가득 차있던 한 장짜리 편지를.

중학생 광호는 집으로 날아온 125호 행운의 편지 내용을 충실히 따른다. 제발 친엄마가 아니었으면 싶은 김말순 여사, 옆방에 세든 예쁜 은숙 누나, 반항아인 친구 철호, 한사코 뒤를 쫓아다니는 바보 재명이에게도 편지를 써서 보낸다.

그런데 큰일이다.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답장 쓸 생각을 안 한다. 저러면 안되는데, 답장을 안보내면 정말 불행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주변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자 광호는 모든 것이 행운의 편지 때문이라고 믿게 된다.

사람의 빈 자리는 언제나 후회가 채운다. 커피 마실 때 후루룩후루룩 소리 낸다고 흘겨보지 말 걸, 화장품 냄새 지독하다고 면박주지 말걸, 버스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떼지 말 걸, 앵무새 같은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한번 해볼 걸….

가끔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 글을 복사해서 10곳에 올리지 않으면 당신에게 큰 불행이 생깁니다’라는 글을 발견하면 그때 그 행운의 편지가 떠오른다. 협박에 가까운 내용은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버린다. 중학생이 자라서 어른이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팔이 빠져라 글씨 쓰는 수고에 비해 쓱쓱 긁어다 붙이는 마우스의 편리함은 ‘약발’이 떨어진다는 생각에서일까. 고지서와 청첩장을 빼면 편지봉투 구경하기조차 힘든 요즘, 편지 한통에 벌벌 떨던 순진한 시절을 추억해보게 된다.
심주형 prepoem@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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