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서 쓰며 히죽거리는 학생… 여전히 교사는 무력하다

2012.05.29 09:16:09

▨ 폭력대책 4개월, 학교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2월6일 범정부차원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된 이후 4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도 학교현장의 모습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는 학교폭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24일 한국교총 주최로 열린 학교폭력 극복사례 및 대안 모색 좌담회 참석 전문가들을 통해 들어봤다.

<참석자= 황영남 서울세종고 교장, 나숙임 인천백학초 교사, 설선국 서울 장원중 교사, 유형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교육센터 소장>

방관자에 대한 규정도 필요…폭력기록 보존 기간 줄여야
폭력 처리업무 간소화 절실, 절차 따르는데 만 3주 걸려
군대 하극상보다 더 심각한 교권추락…법 개정 서둘러야
학생인권조례 ‘실효’라니… 학교는 여전히 교육감 눈치만

-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된 지 4개월이 지났는데 최근 상황은 어떤가.



설선국=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아직 준비가 부족한 선생님들에게 무작정 프로그램을 시행하라고 하기에 앞서 사례중심 연수가 먼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정책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신고·처벌 위주로 가고 있는 것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이 경찰에 가면 혐의가 있건 없건 수사기록이 남아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나숙임=공감합니다. 최근 학교에 경찰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경찰들은 학생을 나이나 교육적 고려 없이 일반 피의자로 대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경찰입장에서는 신고가 들어오면 사건을 반드시 종결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가 개입해 학생을 도와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죄인 취급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과부와 경찰 대책이 일원화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최근 전수조사만 하더라도 교과부와 경찰이 따로 실시하는 바람에 업무 부담이 정말 컸습니다. 요즘 학교폭력 관련 업무량이 너무 많아 윤리부장은 수업을 못 할 정도입니다.

황영남=경찰 개입은 반드시 학교의 판단을 거친 후 이뤄져야 합니다. 협조 공문조차 없이 경찰이 학교에 들이닥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행위는 반드시 금지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최근 학교폭력대책에는 가해자, 피해자에 관한 규정만 있는데 방관자에 대한 것도 보강이 필요합니다.

- 학교에 배치된 전문상담인력이 문제 해결에 실질적 도움이 되나.

설선국=전문상담사들의 역할이 학교폭력문제 해결이 아닌 상담에만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해학생을 꺼리는 경향도 있고요. 그래서 결국 가해학생 지도는 생활지도부에서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전임 학교는 Wee클래스에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돼 생활지도부와 연계한 지도가 가능했는데, 전문상담사만 둬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황영남=
경험 많은 교사를 생활지도 전담교사로 하고 수당이나 승진 등에 메리트를 주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생활지도 담당 교사의 노고가 매우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인데 사기 진작책 없이 일만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설선국=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생활지도부장에 메리트가 없으니 마지못해 1년만 하겠다는 식으로 부장을 맡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어디 가서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가 "생활지도부장님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예요. 겉으로만 이해해주는 느낌이어서….

나숙임=메리트는커녕 오히려 성과급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초등의 경우 교무부장, 6학년 담임 등 다주고 난 다음 차례가 윤리부장입니다.

- 학교폭력에 대한 학생·선생님들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나.

황영남=솔직히 확 바뀌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학교폭력이 학교 구성원들의 인식만 바뀌어서 될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회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수시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TV, 영화 등 매체에서도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데 어떻게 학교에서만 학생들에게 평화로워지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사회가 바뀌지 않고 학교만 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숙임=초등은 많이 바뀌고 있다. 학교폭력 문제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담임의 역할인데 많은 선생님들이 감성교육 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연수에 나서고 있는데 마땅한 프로그램이 별로 없어요. 교과부가 이런 교사들의 노력을 알고 적합한 연수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도 약한 아이에게 하던 장난이 많이 줄었습니다. 장난도 상대방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 것 같습니다.

유형우=최근 조사에서 학교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서 인식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폭력 사건이 늘어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과거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빵셔틀, 따돌림 등도 폭력행위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학교폭력 관련 내용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이 효과가 있나.

황영남=학생생활기록부 기록은 상당히 효과가 좋습니다. 폭대위만 열면 반드시 기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가해학생들의 행동이 많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다만, 낙인효과를 막기 위해 기록보존 기간은 좀 줄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무조건 다 기록하기 보다는 사안이 무거울 경우만 기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유형우=
폭대위를 열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무조건 기록·보존되는지 모르고 폭대위를 요청했다가 오히려 가해 학생에게 미안해하시는 피해학생 부모님을 본적이 있습니다. 사안의 경중이나 해당 학부모의 의견에 따라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나숙임=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초중학교는 5년, 고교는 10년간 보관하는 것은 학생을 범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설선국=저는 경미한 폭력은 기록하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가해학생 조치사항은 1호부터 8호까지가 있는데, 4호 사회봉사까지는 기록하지 말고 5호 특별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부터 9호 전학까지만 기록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 학교폭력근절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황영남=학교의 자율성과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교권이 이렇게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효과적인 학생지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점수 위주인 임용제도도 개선해 생활지도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설선국=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자율성은 정말 필요합니다. 실태조사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자체 실시한 '등굣길 설문조사'가 교실조사에 비해 5배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폭력 처리업무 절차의 간소화도 절실합니다. 현행 제도는 진술서작성부터 나이스(NEIS)입력까지 9단계를 거치도록 되어 있어 절차를 따르는 데만도 3주가 걸립니다.

유형우=교사가 아닌 입장에서도 교권추락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최근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사건도 있었는데 이는 군대 하극상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현상이 더 번지기 전에 법 개정 등을 통해 초기에 강하게 잡아야 합니다. 인권교육이 잘못된 것도 큰 문제입니다. 두발·핸드폰 이런 게 아니라 배려를 가르쳐야 하는데 기능적 교육이 이뤄지다보니 아이들이 인권을 잘못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설선국=학생인권조례의 빠른 정리도 필요합니다. 교과부에서는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이 바뀌어 학생인권조례가 실효됐다지만 대부분 학교는 교육감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사건이 터지면 가해학생이 진술서라도 똑바로 쓰게 해야 하는데 조례를 방패삼아 희죽거리는 학생을 야단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생활지도는 불가능합니다. 가해학생이 진술서를 건성으로 작성해 7번이나 다시 받은 경우도 있어요. 교총이 인권조례 내놓은 시·도 교육감들에게 생활지도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공개질의서라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중민 jmkang@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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