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 인식 바뀌었지만…문제 학생 큰 변화 없어

2012.06.21 19:19:20

한국교총 제3차 학교폭력 극복사례 및 대안 모색 좌담회

▨ 대책 발표 이후 학교폭력 피해 정말 줄었나





이달 초 발표된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학생은 8.9%로 나타났다. 17.2%였던 2월 조사에 비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현장 교원 상당수는 큰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 경찰 발표와 실제 현장의 체감도에 이 같은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지 20일 열린 한국교총 제3차 학교폭력 극복사례 및 대안 모색 좌담회에 모인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사회 = 황영남 서울세종고 교장, 송영주 안양 비산중 교장, 정선미 안산 성포중 상담교사, 문영애 우면초 교감, 방승호 서울 강서교육지원청 장학관, 이혜진 얼라이브(Alive) 대표>

핸드폰 사준 부모 대신 교사에만 책임 묻는 게 현실
행정전담팀 운영‧ 업무줄자 교사 "이제 학생이 보여요"
중증 학생 바꾸려면 적어도 6개월…Wee스쿨 늘려야
처벌강화 후, 합의금 요구‧ 모르는 아이 타깃 삼기도

-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통계의 차이는 있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현장 인식에 어느 정도 변화는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보시기에 실제 현장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송영주=선생님들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검찰이나 경찰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등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학생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는데 실제 문제를 주도하는 학생들은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폭력 발생 빈도는 줄었지만 심각한 폭력은 별로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관심이 너무 높아지다 보니 별것 아닌 일로도 신고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방승호=과거에는 학교에서 사건을 숨긴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학교폭력 사건을 공개적으로 처리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돼 초기 대처가 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정선미=선생님들이 의지를 보여주고 계신 덕에 그동안 상담실에 오지 않던 아이들도 신뢰가 생겨 상담을 받으러 찾아옵니다. 분명 좋은 변화이기는 한데 그러다보니 일이 많아지고 불평등하다는 불만이 생기는 경우도 있어, 선생님들이 처리 절차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정부에서는 사건 발생 시 무조건 신고하라고 하지만 신고가 접수되면 가해 학생에게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나' 하는 인간적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이혜진=변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지금 고쳐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사와 가정의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핸드폰을 사주는 건 학부모인데 책임은 교사가 지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에요. 외국에서는 교사가 학생이 학교에 있는 시간만 책임을 지는데 우리나라는 24시간을 책임지라고 합니다. 제가 있었던 캐나다는 초등학교 학부모가 아이와 등하교를 같이 하면서 최소 하루 2차례 교사와 만나기 때문에 문제행동에 대한 즉각적 상담이 가능합니다. 만약 학부모가 상담에 불응하면 양육권이 박탈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학생이 치고받는 일이 벌어져도 학부모가 학교에 잘 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문영애=최근 발표를 보면 강남지역에 학교폭력이 많은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많다기보다는 가정에서 욕 한 번 안 들어보고 자란 아이들이 학교 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도 물론 폭력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변화이긴 합니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 예방보다는 사후처리에 집중돼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예방이지 사후 대처가 아닙니다.

- 일단 선생님들께서도 학교현장의 변화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학교폭력 관련한 좋은 사례도 있을 것 같은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방승호=최근 도입된 제도 중에는 스쿨폴리스제가 가장 고맙습니다. 스쿨폴리스, 장학사, 생활지도부장이 팀을 이뤄 활동하고 있는데 스쿨폴리스가 아주 적극적으로 대처해주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 교육청에서 40주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학교폭력 연수를 실시하고 있는데 공문으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 카페를 열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데도 참가자 인원이 많습니다.

정선미=요즘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과하기·감사하기'운동을 했는데, 아이들이 무척 감동스러워 했습니다. 중요한 감정 표현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여러 선생님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해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혜진=캐나다에서는 아주 세세하게 매뉴얼을 만들고 학생이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일은 교사도 금지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제약에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그리고 규정이 행동을 금지시키는 게 아니라 '해도 되는데, 다만 책임은 반드시 본인이 진다'는 식으로 만들어 행동과 책임의 관계를 분명히 인식시키는 데도 효과를 얻고 있습니다.

문영애=저희 학교에서는 교감을 중심으로 행정업무 전담팀을 꾸리고 그 외 선생님들은 모두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들께서 '이제 아이들이 보인다'고 하시더군요. 스스로 연수도 많이 다니십니다. 교사들이 학생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줘도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 같습니다.

송영주=저는 조금 어려운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전문상담사가 각 학교에 배치되면서 도움이 되고는 있지만, 한꺼번에 하다 보니 우수한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낮추다보니 전문성이 부족한 분들을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나름 열심히 하시지만 솔직히 아이들과 효과적인 소통이 되진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보수도 좋은 편이 아니어서 좋은 분들은 차라리 프리랜서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정책을 급히 서두르다 보니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정책적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 있습니까?

정선미=Wee 클래스 상담교사가 많이 배치 됐는데 명확한 업무 규정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다보니 업무라인도 불분명해 담임교사가 임의로 처리한 일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항의 받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심한 문제가 있는 학생이 발견돼도 보낼 수 있는 치료기관이나 심층 상담시설이 없다는 것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입니다.

문영애=현실적으로 상담기관을 당장 확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때까지 믿을 건 교사밖에 없으므로 '감정코칭' 등 관련 연수를 정책적 사업을 삼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승호=상담기법 도입과 연수는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최근 저희 지원청에서 교사들에게 인기가 높은 모험상담 같은 프로그램을 범정부 차원에서 선생님들에게 재교육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교육청 등에 학교상담부를 만들어 전문성을 강화할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혜진=인성지도가 교과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학생을 선생님이 가르치지 않고 다른데 맡길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합니다. 교과 진도도 일일이 정하지 말고 1년 안에 교사들이 각자 페이스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자율권도 줬으면 좋겠습니다.

송영주=처벌 위주 대책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사법기관이 아닌데 일이 많아지다 보니 시간 들여 가르칠 생각을 못하고 사법적 처벌을 해버리고 말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사들이 수업하면서 생활지도를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상담기관을 확충해야 합니다. 특히 심한 아이들이 6개월 정도 상담·치료 받을 수 있는 위스쿨을 늘려야 합니다. 경기도 정도면 한 10개는 있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정선미=교장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처벌 받고 생활기록부에도 기록된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이제는 학교 주변을 맴돌며 자신을 모를 것 같은 아이들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평소 생활태도가 나빠도 폭력만 아니면 기록되지 않고 착해도 우발적으로 주먹 한 번 잘못 휘두르면 기록된다는 게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갖기도 합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되기 싫으면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학생·학부모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진설명=20일 한국교총 제3차 학교폭력 극복사례 및 대안 모색 좌담회 참석자들이 가해학생 처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선미 안산 성포중 상담교사, 황영남 서울 세종고 교장, 송영주 안양 비산중 교장, 방승호 서울 강서교육지원청 장학관, 이혜진 얼라이브(Alive) 대표, 문영애 서울우면초 교감.
강중민 jmkang@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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