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전 첫발령 시절 제자들을 만나다

2005.12.18 19:32:00


12월 첫추위는 매섭기가 칼날 같았다. 이 추위 속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명동 역에서 내려 10분 가까이 걸어서 찾아 간 곳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42년 전 내가 교사로 첫발령을 받았던 해에 담임을 하였던, 당시 2학년 짜리 이었던 제자들의 송년 모임이 열리는 곳이었다. 이제 50이 넘은 제자들이다. 같이 늙어 가면서 지난날 스승과 제자였다는 것을 떠나 먼 옛날의 추억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1964년 봄바람은 메마른 대지에서 먼지만 일으키고 있었다. 교사로 첫 발령을 받고 부풀은 가슴을 안고 학교를 찾아가는 길은 희망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발령장을 받고 선배이신 장학사님으로 부터 학교까지 가는 길을 안내 받아서 버스정류장<당시는 터미널이 아니었다>에서 버스를 탔다. 터덜터덜 자갈밭길을 달려서 마을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고갯길을 10여분 달려갈 때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갯마루 부근에 마을이 나오고도 한참을 달려서 버스를 내렸지만, 여기에서부터 내가 근무할 학교로 다닐 마을이라고 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건너편에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덩그랗게 교실 몇 간이 있는 곳이 학교라는 안내를 받았다. 논둑길로 약 10여분을 가니 학교가 나왔다. 논바닥에 달랑 교실 4칸, 국기 게양대 하나, 온 소나무 가지만 간신히 다듬어서 기둥을 박고 외를 엮어서 만든 간이 화장실 2칸이 전부였다. 화장실은 바닥에 구덩이를 파소 장대를 걸쳐 용변을 볼 수 있게 만들고 문짝도 없어서 짚가마떼기를 펴서 둘둘 말아 가리개로 달아 놓은 것이었다.

이 학교에 발령을 받아서 교실 4칸에 1-4학년까지 7개 반이 공부를 해야 하였다. 어쩔 수 없이 1,2,3학년은 2부제 수업을 하고 4학년만 교실 한 칸을 따로 쓰게 하였다. 2학년을 담임한 나는 교실이 없어서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옆에 서 있는 아직 어려서 40여명의 아이들이 앉을 그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느티나무 밑을 찾아가 매미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 무렵에는 새교실에 매달 새노래가 발표 되었었다. 그 무렵 불렀던 노래 중에는 요즘 교과서에 실린 노래가 된 것도 꽤나 많았다. 다달이 새로 나온 노래는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배웠다. 교실이 없어서 어디 들어갈 곳이 없으니, 날마다 나뭇그늘을 찾아서 노래나 하고 운동장에서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반이 끝나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10여년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선생님인줄 모르고 달려들어서 손을 잡아 흔들면서 "야 ! 오랜만이다. 그런데 넌 누구냐? 잘 모르겠다."고 소리치는 친구 때문에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고, 알고 난 그 친구 넙죽 엎드려 절을 하고선 고개를 들어 바라보다가 "선생님, 그런데 흰머리는 제가 더 많은데요."해서 또 한 바탕 웃음바다를 이룬 적이 있는 친구들이 오늘은 30여명이나 모인다고 하여서 얼굴이나마 보고 싶었다.

처음 만나자 지난번이나 마찬가지로 몰라보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급한 약속이 있었기에 얼굴만 보고 다시 나와야 했다.

"64년 첫 발령을 받아서 여러분이 2학년이던 시절에 담임을 맡았었는데, 오늘 이렇게 모인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잠시 들러서라도 가야겠다고 왔습니다. 이제 나이 50이 다 되었으니, 스승과 제자라기 보다는 같이 늙어 가는 친구처럼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즐거운 자리 내가 끼어 있으면 아무래도 자유스럽지 않을 것이고, 또 나도 다음 약속이 진행되고 있어서 어서 가 봐야 하기 때문에 그냥 일어섭니다. 42년전 병아리 교사로 여러분을 맡아서 철없는 교사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해주었는지, 또한 철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여러분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었는지 늘 걱정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른 이렇게 잘 성장하여 당당한 사회인으로 멋진 삶을 개척해낸 여러분을 보니 흐뭇하고 기쁩니다. 자주 만나서 즐거운 추억 만들어 가면서 늘 지난날의 아름다운 학창시절을 더듬어 보는 즐거운 모임이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만나서 약 10여분 서로 얼굴을 익히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나는 이렇게 그 자리를 떠났지만, 정 말 가슴이 뿌듯하기만 하였다. 아니 서울 한 복판 명동 거리를 걸으면서 42년전의 그 황량한 논바닥에 우뚝 선 교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