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의 긴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하는 날이다. 엊그제 내린 눈이 고스란히 운동장에 쌓여 있다. 입춘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영하 10도의 기온은 노출된 살갗이 시리어 움츠리게 만들지만 방한복에 방한모자 장갑 등으로 중무장(?)한 아동들의 통통하고 불그스레한 얼굴에는 반가움의 미소가 흠뻑 번진다. 오랫동안 집안에만 갇혀 있어 바깥세상이 그리웠다는 듯이 반갑고 활기차게 인사를 한다. 장갑 낀 손으로 얼굴과 귓바퀴를 감싸면서…….
일찌감치 등교한 한 무리의 아동들이 넓은 운동장을 강아지처럼 뛰어 다닌다. 두 손엔 한 움큼의 눈덩이를 뭉쳐들고 상대에게 좀더 가깝게 접근하려고 전력 질주하여 뒤쫓는다. 쫓기는 아동도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잘도 달린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눈덩이를 던져버린다. 아쉽게도 빗나간다. 이번에는 쫓기던 아동이 쫓고, 쫓던 아동이 쫓긴다. 역할이 정 반대가 된다. 이제 추위는 없어졌다. 씩씩하고 용감한 두 아동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의 눈과 얽힌 추억들이 생각난다.
두 아동은 이내 지친 숨을 헐떡거리면서 눈 바닥에 드러눕는다. 한동안 누워있다. 무엇을 보고 있을까. 옅은 잿빛 하늘에서 어쩌다 하나씩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서 친구들을 만난 기쁨과 선생님을 만날 기쁨으로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까. 한 학년씩 올라갈 기쁨으로 세상 부러울 게 없을까. 움츠리며 등교하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둘이는 둥글더니 붙잡고 한 몸이 된다. 오르락내리락 한참을 둥글더니 벌떡 일어선다. 서로 눈 묻은 옷을 떨어준다. 둘은 다정하게 손을 잡는다. 마주 보고 재잘거리면서 교실로 향한다.
학년말 학교생활이 1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1년 전 지금 보다 훨씬 작은 아동들을 보면서 키가 참 작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체격도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많이 변했다. 특히 6학년들의 변화된 모습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렁우렁한 목소리며 콧수염이 진해지고 얼굴엔 여드름까지 피었다. 어른스럽기로는 여학생이 훨씬 더하다. 신체의 변화와 하는 일 하는 생각의 변화는 놀랄만하다. 누가 초등학생 어린 코흘리게 꼬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동들의 1년은 어른들의 10년 동안 변한 것을 모두 모아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다.
교실에서는 삼삼오오 둘러 앉아 방학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마음껏 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자랑을 하는 화젯거리는 역시 여행 얘기다. 집집마다 차가 있어 가족단위의 여행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만들어 온 과제를 보고 끼리끼리 평가를 한다. 혼자 만든 것 아니라고, 아니 혼자 만들었다고 강하게 부정도 한다. 학부모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틀림없는데도 시치미를 떼는 아동도 있고 슬그머니 시인하는 아동도 있다.
담임선생님이 들어가자 이구동성으로 활기찬 첫 인삿말을 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든다. 반가움과 설렘이 넘쳐흐른다.
동심을 바라보며 사는 나는 언제나 동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