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내와 함께 출퇴근을 한다. 맞벌이 부부의 퇴근길이었다. 평소대로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고 있을 때였다.
“참, 쌀이 떨어졌는데…….”
미안했는지 아내는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봤다. 막 지나온 곳에 대형유통센터가 있어 야속하기도 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요즘 아내의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 오던 길을 되짚어 차를 몰았다.
견물생심이라고 누구든지 가지런히 놓여있는 물건들을 보면 욕심나게 되어있다. 또 직접 가사를 책임져야 하는 여자들은 해주는 대로 먹기만 하는 남자들과 다르다. 반찬하나라도 이것저것 챙기는데서 보람을 느낀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기도 하지만 모두 가족을 위한 일이기에 탓할 일도 아니다.
평소 같으면 유통센터가 사람들로 넘쳐날 시간이건만 이상하게 한가했다. 알고 보니 그날이 마침 여러 대학교가 등록금 납부를 마감하는 날이었다. 사실 처음 알았지만 세금이나 등록금 등 목돈이 필요한 날 앞뒤로는 소비가 줄어든단다. 살기 어려운 세상살이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너도나도 웰빙을 부르짖다보니 어떤 물건이든 신선도가 생명이다. 팔리지 않으면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을 뻔히 아는데 손놓고 있을 장사꾼이 어디 있겠는가? 유통업체에서도 손님이 없는 것을 감안해 그런 물건들을 싼값에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여자들 참 알뜰하다. 또 같은 물건이라도 싼값에 사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아내는 과일, 채소 등 쇼핑코너를 다 돌며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다.
그날따라 바쁜 일이 있는 나만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아내가 이번에는 입학시즌에 맞춰 임시로 마련한 가구코너를 기웃거리더니 멀리서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을 만큼 그곳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쌀 포대가 실려 있는 카터기를 끌고 부지런히 가구코너로 갔더니 만나자마자 거울이 달린 작은 문갑을 가리키며 한마디 한다.
“이거 어머님 사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
결혼한 사람치고 자기 엄마가 좋아하는 것 사준다는 아내를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시간에 쫓기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참고 있던 분을 삭이지 못한 나는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아’라고 말하며 빨리 갈 것을 재촉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어깃장이라도 부리듯 가구코너에 있는 물건들을 챙겨보며 속을 끓이게 했던 아내가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던진 한마디 때문에 우리 부부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여보, 저 종업원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당신 말투를 보니 겁이 난대”
“…….”
어이가 없어 그냥 듣고만 있었더니 또 한마디를 던진다.
“집에 가서 부부싸움 할 것 같다고 다음에 혼자 와서 구경하래”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되는 면도 있었다. 눈이 쫙 찢어진 못생긴 놈이 말의 톤까지 높였으니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여자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 몇이나 될까?
말 한마디 때문에 가구코너 종업원에게 못된 남편으로 보였겠지만 내 실상을 알면 그렇지도 않다. 힘없을 때를 대비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집안일을 모두 아내에게 맡겼다. 그렇게 사는 게 편하고, 여자의 의견을 존중하면 가정이 화목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우스갯소리였지만 답을 알고 싶었다. 기독교 신자인 아내가 던진 한마디가 마음이 급한 나를 서두르지 않게 했다.
“당신, 교회만 다니면 만사가 OK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