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아름답게 잘 자라렴

2006.02.22 14:35:00


"1, 2학년 우리 반! 오늘은 선생님과 마지막 수업하는 날입니다."
늘 재잘대던 꼬마들이 종업식하는 날은 말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헤어짐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얘들아, 선생님께 드릴 선물만들자."

2학년 나라가 1학년 동생들에게 선물을 만들자고 졸랐습니다.

"나라야, 그 마음만으로 이미 선물을 받은 것 같아 행복하구나.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게 좋지? 선생님은 우리 나라가 겨울방학 동안에 잊었을지도 모를 구구단을 틀리지 않게 외울 수 있으면 최고의 선물이겠다. 선생님은 나라가 주는 100점 짜리 구구단 시험지를 선물로 갖고 싶다. 나라는 뭐든지 잘 하는데 구구단 외우는 것은 좀 싫어했잖아? 3학년 때 새로운 선생님과 공부할 때 2학년 공부를 까먹어서 수학을 잘못하면 선생님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그래."

나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구구단을 외워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1학년 아이들은 한 사람씩 읽기 책을 소리내어 읽게 하며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단급학급이 아니라서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다른 학년 공부에 지장을 주게 되므로 소리내어 읽기를 많이 못 시킨 미안함을 달래주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긴 문장도 또박또박 잘 읽어내는 1학년 꼬마들이 2학년이 될 준비를 합니다.

"1학년 친구들은 봄방학 동안에 2학년 읽기 책을 하루에 한 번씩 소리내어 읽고 오도록 하세요. 선생님의 부탁이니 꼭 지킬 수 있지요? 이제는 언니들이 되니까 1학년 때보다 공부도 더 많이 해야 된답니다. 선생님이 준 그림일기장에 하루에 한 편씩 글도 꼭 써서 새 선생님께 자랑하세요."
"예. 선생님! "

3년을 보낸 내 고향같은 연곡분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수업날. 나는 아이들의 눈을 피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참 힘들었습니다. 교실 밖에서는 3학년 기운이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불러내고 고학년 아이들도 하나 둘 씩 내려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송별회를 준비하겠다던 아이들을 말린 것은 그냥 조용히 헤어짐을 맞고 싶었던 선생님들의 뜻이었고 가는 선생님들보다 남은 아이들이 더 상처를 받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길지 않은 3년 동안 참 많은 일과 시간들을 함께 나눈 우리들은 이미 눈물이 마음 속에 고여서 아무 말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말대신에 편지를 써서 책 선물에 붙여서 집으로 보내며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아름답게 자라기를 비는 마음만 간절했던 종업식날. 첫해에 졸업을 하고 나간 제자들이 찾아와서 말없는 웃음으로 이별의식을 치르고 사진 한장을 남겼습니다. 나라가 남기고 간 100점 짜리 구구단 시험지를 연곡에서 보낸 마지막 수업의 선물로 챙겼습니다. 내 뒤를 이어 꼭 선생님이 되겠다고 약속한 나라의 꿈이 벌써부터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꼭 가져가라며 종이꽃을 만들어 꽂아준 우리 반 꼬마들의 고운 손길이 담긴 스승의 날 꽃바구니도 떠나는 짐 속에 잊지 않고 챙겨야겠습니다.

'얘들아, 나는 아직도 이별준비가 안 되었으니 어쩌지?'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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