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길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온 것 같은 개운함을 느끼는 건 무엇 때문일까?
교직에 몸담은 지 42년, 교사라는 자리에서 선생님이라고, 나는 정말 스승의 길을 걸어 왔을까? 정말 스승다운 스승이라고 생각해주는 제자들은 몇 명이나 될까? 혹시라도 나의 잘못으로 상처를 입은 제자들은 얼마나 많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이제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 한편으로 다행스럽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잘 못을 저지르지 않게 되었고, 그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가쁜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42년이란 세월 동안 나름대로 주어진 여건에서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 평가는 결코 내가 내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린이들을 위하기보다는 교육정책이 흔들리고, 교육정책에 충실하다보니 중학교 입학시험을 위해서 교실에서 밤잠을 설치며 200일 동안을 합숙을 하기도 하였었다. 새마을 운동을 한답시고 어린이들을 데리고 땡볕에서 잔디씨 받기, 가시가 찔러대는 아카시아 씨앗 따기를 하였고, 78년에는 보리 베기, 모내기를 하느라고 두 주일을 공부를 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위해서는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고 가꾸느라 6,7km를 걸어다니면서 심고, 물주고 가꾸기도 하였다.
때로는 학급의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고 공부에 취미가 없고 기본 학력이 미치지 못한 아이들에게 매를 때리기도 하였다. 억지로 붙잡아 놔두고 저물도록 억지 공부도 시켜 보았고, 잘 못된 행동을 하는 어린이를 때리기도 하고, 늦도록 붙들고 이야기를 하면서 고쳐보겠다고 씨름을 하기도 하였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학교에 내는 얼마간의 돈을 내지 못한 어려운 아이들을 붙들고 돈을 내라고 독촉을 해야 하였고, 마을까지 다니면서 독촉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억지로 학교 일에 협조를 하라고 불러내어서 학부모들이 여러 가지 학교 안의 일을 돕게 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교사라는 입장에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린이들에게 강요했던 일들이었지만 억지였다. 그래서 이런 억지 때문에 상처받은 제자들은 얼마나 많을까?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인격으로 교사라는 자리에서 혹시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를 입은 어린이들은 또 얼마일까? 정말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잘못 보고 꾸짖거나 때린 제자는 없었을까? 나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많은 선후배, 동료들에게는 내가 잘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은 오래 가고 잊지 못한다는데 머릿속에 남은 자취들이 있는 분들은 없을까?
이런 모든 것을 되돌아보면서 이제 42년간의 교직을 떠나게 되어서 그 동안에 나로 인해 상처받은 기억이 있는 제자들, 나쁜 추억이 있는 동료들에게, 그리고 많은 학부모님들에게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교직이라는 곳에 있으므로 해서 인연을 맺었던 많은 분들께 그 동안 도와주심에 감사드리고, 이제는 이 자리 떠나게 되었으니 더 이상 인연의 끈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인사드립니다.
혹시 인간적으로 살아오면서 그래도 나쁜 기억보다는 조금이나마 좋은 기억이 있고, 나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분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제자들은 앞으로도 잊지 말고 더 좋은 추억만을 간직하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퇴직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