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빈부의 위치, 우리사회의 아픔

2006.03.10 13:13:00

얼마 전 개인 재산이 3조 8천억이나 되는 우리나라 최고의 갑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조건 없이'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면에 있는 복잡한 사연을 차치하더라도 8,000억원은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지난 8일 신문에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 두 개의 기사가 있었다.

하나는, 사흘을 굶은 20대 남자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동네의 빈 가게에 들어가 현금 1,800원을 훔쳐 나오다 붙잡혀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는 기사이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고픔을 참다못해 가게에 들어갔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또 이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동차정비 2급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었으나 직장을 구하지 못해 막노동판을 전전하다가 그나마 최근에는 막노동 일거리마저 없어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지하도와 다리 밑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범행 당일 경찰차량의 경광등 소리에 놀라 정작 아무것도 훔쳐 먹지 못한 채 현금 1천800원만 들고 빠져 나오다 붙잡혀 안타까움이 더하다.

또 다른 기사는 최근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정재계에 광범위한 로비를 벌여 물의를 빚고 있는 브로커 윤상림씨에 대한 내용이다. 그의 불법로비 의혹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에 따르면 8일 현재 윤씨에게 흘러들어간 뇌물이 45억원이나 되어 사기·공갈 등 혐의로 기소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정재계에서 사기나 로비 사건이 생겼다 하면 보통 수십, 수백억인 데 비해 이렇게 단돈 몇 푼이 없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빈 가게를 엿보거나 도심 공원의 무료급식소의 행렬에 몸을 맡긴 노숙자들은 좀체로 줄어들 줄 모른다.

뿐만 아니다. 아직도 일선 학교에는 급식비 몇 만원을 내지 못해 정부 지원으로 점심을 해결하거나 돈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고심하는 어려운 학생들도 많다. 눈에 띄는 빈부의 위치, 이것이 바로 경제 양극화의 단면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누가 말했나?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치려고 가게를 침입하여 죄인이 된 젊은이에게서 아직도 배고픔이 많은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깝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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