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다. 왜 그런지 교단에 서 있는 자신에게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매스컴을 통해서 들려오는 촌지사건이 줄어드니 이제는 학교 폭력이니 교권이니 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이런 것들도 알게 모르게 교단에 서 있는 나를 지치게 한다.
오늘은 공문 작성해서 발송하고 오전 수업 마치고 출장을 가야 되기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내 맘처럼 빨리 서둘러 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화를 내고서 퇴근하고서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퇴근길에 영화 한편을 보았다.
제목은‘호르비츠를 위하여’인데 내용은 후미진 도시 변두리에 피아노 학원을 차린 지수는 원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꿈꿨었다. 외국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탓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며 환경 탓을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재능’ 탓에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자폐적인 성향을 보이는 일곱살 소년 경민이를 만난다. 경민이는 엄마를 사고로 잃고 고물상을 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항상 사고를 쳐 할머니에게 욕을 듣거나 얻어터지는 게 일상이다.
그런 경민이가 학원 개원 첫날부터 지수 주위를 맴돌며 사고를 친다. 경민은 지수의 메트로놈을 훔치고, 피아노 학원 전단지를 모조리 떼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학원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발끈한 지수는 경민을 나무라지만 그 과정에서 경민이 절대음감을 가진 천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인생을 바꿔 볼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지수는 경민을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처럼 키워, 위대한 스승으로 거듭날 꿈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스승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애정결핍의 가난한 제자의 이야기는 지수의 뜻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다. 선생님은 가난하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를 키울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경민을 떠맡게 된 지수는 경민을 위해서 외국의 음악가 집에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떠났던 제자가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고, 훗날 제자는 자신의 성공의 배경에는 어린시절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 준 선생님이 계시다는 걸 잊지 않는다는 감동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영화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들은 대부분 평범한 선생님들이고 평범한 학생들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평범하지만 누구나 다 한가지씩은 뭔가 잘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 수준이 천재적이거나 세계적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가꾸거나 꿈을 꾸기에는 충분한 능력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나의 욕심대로만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했나 보다. 그러니까 교단에 대한 회의가 들고 힘들고 금방 지쳐 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은 사실은 모두다 호로비츠처럼 아름다운 삶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나의 눈이 어두워서 아이들 속에 숨겨진 그 아름다운 능력을 찾아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 속에 숨겨진 재능이 꼭 천재적일 필요는 없다. 내가 아이들의 작은 재능이나마 놓치지 않고 찾아 내 주고 키워 줄 수 있는 스승이어서 먼 훗날까지도 그들이 나를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는 아이가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이 세상이 외롭고 슬프지만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범하고 작은 그리고 아름다운 나의 호로비츠들을 위하여 힘을 내서 더욱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