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속 거미줄

2006.07.18 10:00:00


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바람 한 점 없어 더욱 다소곳하다. 장마의 검고 어둔 구름이 손에 잡힐 듯 낮게 떠 있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지금은 이슬비만 내린다. 어느 틈에 창밖의 꽃상자에서 자라 한 쪽 유리창을 덮어버린 나팔꽃이 연분홍 꽃을 피웠다. 이슬비 작은 빗방울 머금은 산뜻한 얼굴이 더욱 싱그럽다.

화단의 모든 나뭇잎들 푸르름이 진한 녹음이 되었다. 모든 식물들은 얼굴을 간지럽히는 이슬비의 부드러움을 즐기는 듯 하다. 머지않아 마구 쏟아질 거친 빗방울이 두려울지도 모른다. 나뭇가지 사이에는 두 나무를 의지한 채 엮어진 꽤 큰 거미줄이 보인다. 가는 실 보다 더 가냘픈 거미줄이 줄줄이 맺혀 대롱거리는 이슬방울이 버거운 듯 축 늘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거미는 큰 비를 걱정할 것 같다. 정성들여 만든 삶의 터전이 순간에 망가져 버릴 수 있으니까.

요즘은 거미줄 보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그렇게도 많던 거미들도 온갖 오염 때문에 개체수가 많이 준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거미줄은 훌륭한 놀이 도구를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키 큰 억새풀이나 수숫대 끝에 많은 거미줄을 계속 감아서 접착력 강한 찐득이를 만든다.

그땐 잠자리 종류도 많았다. 왕잠자리, 쌀잠자리(♂), 보리잠자리(♀), 된장잠자리, 고추잠자리, 호랑잠자리 등 이름도 모르는 잠자리들도 있었다. 잡는 방법이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 한 가지 거미줄찐득이를 많이 이용하였다. 물론 잠자리채 끝을 둥근 테로 만들어 거미줄로 포충망을 만들어 이용하면 잡기가 쉬웠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너무 쉽기 때문에 재미가 덜했다. 쉬운 방법으로 많이 잡는 것 보다는 어렵지만 스릴 있게 잡는 것이 더 좋았다.

억새풀대나 수숫대의 끝부분에만 거미줄을 감는다. 많은 거미줄을 감으면 두툼한 거미줄 찐득이가 된다. 손으로 만져보면 부드러우면서도 접착력이 무척 좋다. 다 만들어지면 나뭇가지나 나뭇잎에 붙어있는 잠자리를 찾아 나선다. 살금살금 잠자리찐득이를 잠자리 등의 날개사이에 살며시 댄다. 날개는 자유롭게 퍼덕거리지만 몸은 이미 찐득이에 꼼짝 못하고 붙어 있다. 대충 휘둘러 쉽게 잡는 것 보다 정성을 들여야 날개가 성하게 잡을 수 있다. 떨키기도 하지만 떨키는 재미도 있다. 잠자리의 등 가까이 가져가 대려고 할 때는 숨소리조차 작게 내려고, 발에 밟히는 풀잎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한다. 잡힐 때에 갖는 만족감이 얼마나 통쾌한지 모른다.

거미의 생김새는 꽤나 무섭다. 괴담에 등장하는 악역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밀림지대의 독거미가 연상되기도 하기 때문에 거미를 갖고 논다는 것은 제법 용기가 필요하다. 거미 잡기는 아주 쉽다. 거미줄을 툭툭 건드리면 잽싸게 모습을 드러내고 달려든다. 자기가 쳐 놓은 거미줄에 자신이 걸려들게 되는 것이다. 큰 거미를 잡아서 거미줄 나오는 곳의 거미줄 한 끝을 잡아 실타래의 실을 감듯이 거미줄을 뽑아도 본다. 한동안 잘 나오다가 화난 거미가 더 이상은 못 준다는 듯이 끊어지기도 한다. 다시 뽑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슬방울 맺힌 거미줄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거미도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계속되는 장맛비에 지친 듯이 축 늘어져 있을 뿐이다. 거미줄을 툭툭 건드리고 싶었다. 잽싸게 뛰어 나올 거미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참기로 했다. 오랜만에 본 거미줄이 반갑기도 했고 거미라도 속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보호하는 길이다. 요즘 고추잠자리 외에는 다른 잠자리를 보기 어렵다. 많은 자연 훼손과 농약사용의 후유증이 생태계의 변화를 심화시켰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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