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범죄의식을 길러 준다면?

2006.09.26 11:14:00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과연 대부분 교육적인 것일까? 그렇다. 학생들은 교육을 받으며 미성숙한 인간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커가는 것이다. 학생들은 정식으로 교과를 배우면서, 즉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교과 선생님으로부터 교육과정을 배우며 커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표면적 교육과정이다.

이와 반대 개념의 잠재적 교육과정이 있다. 이것은 학교의 물리적 조건, 제도 및 행정적 조직, 사회 및 심리적 상황을 통하여 학교에서는 의도한 바 없으나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학생들이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중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 어떤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칠까?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교육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표면적․잠재적 교육과정을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닌 상보적(相補的) 관계를 맺어 지도할 때 학생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약 10여년 전부터 학교 교실에 등장한 사물함(私物函). 글자 그대로 사적인 물건을 보관하는 함이다. 이것이 학생들에게 범죄의식을 잠재적으로 길러주고 있다면 믿을까? 웬 뚱딴지 같은 소리? 실상은 이렇다.

학생들은 그 사물함을 평상 시 자물통으로 잠궈 놓는다. 자기 물건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가기 어려운 물건들을 그곳에 보관하고 필요한 때 열쇠로 열고 꺼내어 쓴다. 문제는 열쇠가 없을 때 발생한다. 물건은 꺼내야겠고 열쇠는 없을 때 어떻게 할까? 학생들은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한 가지는 사물함 뚜껑 부수기. 또 하나는 자물통 자르기다.

모 학교 어느 학급은 사물함 뚜껑이 모두 부서진 반도 보았다. 생활지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반이다. 나무로 제작된 잠긴 사물함은 발로 자물통을 걷어차면 고리가 쉽게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모 고등학교에서는 사물함이 쇠로 되었는데 사물함 고리가 쇠톱으로 잘라져 나간 것도 보았다.

착한 학생들은 애교심이 있어 사물함을 부수지 않고 학교 기사님을 찾는다. “기사님, 절단기 좀 빌려 주세요?” 아주 당연한 듯 말한다. “왜 그러냐?” “사물함 열쇠를 안 가져 와서요. 자물통을 자르려고요.” 딱한 사정을 듣고 기사님은 절단기[벤치보다 큰 도구. 그림 참조]를 빌려 준다.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범죄의식이 싹튼다.

정상적인 해결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범죄인들이 쓰는 수법을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몇 번 사용한 학생은 길거리에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값비싼 자전거, 어느 창고나 출입구의 자물통을 보면 절단기를 생각하고 상상으로 범죄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범죄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의 특강에서 나온 말이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고 탐욕이 생기면 실천에 옮기기도 한다고 한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이처럼 무섭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간단하다. 사물함은 잠그지 말도록 해야 한다. 사물함에는 귀중품은 두지 말도록 지도해야 한다. 중요한 물품은 집으로 가져가야 한다. 범죄 저지르는 연습을 시켜서는 아니 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건을 탈취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가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교실의 사물함 자물통 없애기,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학교에서 교과시간 이외에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그것이 교과시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과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성, 습관, 문제해결 방법, 인생 살아가는 방법 등은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 자신도 모르게 굳어져 간다. 이것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니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범죄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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