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부장을 찾습니다˝

2006.09.27 09:13:00

우리 학교 3학년 부장을 찾는데 무려 5일이 걸렸습니다. 행방불명이 되었냐고요?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3학년 부장 후임을 찾는데 5일이 걸렸다는 뜻입니다. 왜냐고요? 모두 다 고사를 하니 교감, 교장인들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고참경력인 3학년부장은 건강이 안 좋습니다. 1학기 때 병가도 쓰고 연가도 쓰고 하였건만 완쾌되지 않았지요. 2학기 들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휴직원을 내게 되었어요. 후임 영어과 기간제 교사는 간신히 구했는데…. 임용고사를 앞두고 있는 2학기에는 그 흔한 기간제도 구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런데 후임 3학년 부장을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정말 몰랐습니다. 교장 선생님과는 이렇게 작전 순위를 메겼습니다. 1순위 3학년 담임, 2순위 3학년 교과 담임, 3순위 3학년과 관련 없는 교사, 4순위 보직교사(변경).

그래도 3학년 6개반 담임 중에서 희망자가 나오고 희망자가 없으면 교감의 권유에 의하여 1순위에서 해결되리라 믿었던 것이 오산이었습니다. 3학년 담임들은 이구동성으로 '못 한다'입니다. 그 사유를 물으니 지금 담임하는 것만도 벅차다, 교과지도에 바쁘다, 업무가 과중하다, 건강이 따라 주지 않는다 등이었습니다.

교감과 교장이 무리수를 두어 강행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무슨 성과가 있고 효과가 있겠습니까? '평양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당사자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지로 시킬 수 없겠죠.

3학년 부장 선정을 위한 1:1 상담. 그들의 고충 들어주는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장 이야기 꺼내면 한마디로 거절을 당합니다. 어느 학교는 서로들 부장하겠다고 경쟁이 치열하다는데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는 교감과 교장이 하소연하고 애걸복걸해야 간신히 수락하는 그런 학교입니다.

학교에 가산점이 없고 승진 점수가 아직 멀었거나 근평과는 무관한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교감과 교장의 파워가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왜 하기 싫은 부장 억지로 만들어 놓고 일 못한다고 괴롭힙니까?"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교감과 교장이 부장교사들 눈치보며 살아야 합니다. 알아서 열심히 업무에 임하여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1정 자격연수를 받은 순위까지 내려 갔지만 후임자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교감의 무능(?) 내지는 지도력 부재겠지요. 교장까지 설득에 나섰지만 결과는 판정패. 교감과 교장 역할 수행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고입을 몇 달 앞두고 있어 잠시도 비워둘 수 없는 3학년 부장을 도대체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엔 3학년 교과를 맡고 있는 올해 복직한 교무부의 Y선생님의 내락을 간신히 얻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분도 건강이 안 좋은 분인데 학교의 딱한 사정에, 교감의 간청에 본인의 희생을 감수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 분은 교감과 교장에게 수호천사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선공후사 정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러고 보니 부장자리가 그렇게 선호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담임보다 수당도 적고 일은 많고. 누가 그런 자리에 가려 하겠습니까? 승진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 점수 관리 차원에서나 할까, 별 이득이 없는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는 군대 계급과 비교하여 말합니다. 중대장(부장교사)이 소대장(담임교사)보다 수당이 적은데 누가 하겠냐고 하면서 수당체계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여하튼 Y선생님 덕분에 한시름 놓았는데 교감으로서 업무를 그냥 떠 넘길 순 없습니다. 당장 급한 고입 업무 관련 책자를 넘겨주고 작년 공문과 올해 공문을 숙지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근 학교의 3학년부장과 연결시켰습니다. 부장으로서의 리더십 상담도 하여 좋은 인간관계 속에 융화와 단결로 부장업무를 수행하여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부원들을 대하는 바람직한 부장의 마음의 자세도 알려 주었습니다. 부장에 대한 교감의 적극적인 지원도 약속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일은 일단락 되었지만, 저는 여기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익혀야겠구나! 둘째, 선생님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건강관리가 우선이구나! 셋째, 과거에 통하던 공직자의 헌신과 봉사는 이제 통하지 않는구나! 넷째, 교감과 교장의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구나! 다섯째,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되면 그 파급효과는 걷잡을 수 없구나! 등입니다.

이번 사건은 '투명하고 당당한 교감, 교장론'을 주창하던 리포터에게 흔들리는 갈대의 부드러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고 리포터의 리더십 소신, '야단치는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확인한 일대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교감과 교장 역할, 제대로 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세상 살기가 그만치 어려운 것이지요.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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