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2006.10.04 14:10:00

"이게 요즘 중 3 남학생의 앞서가는 사랑 고백인가요?"
"용기가 가상하다고 할까요? 철부지 행동이라고 할까요?"
"사랑에 빠지면 중학생도 이성(理性)을 잃고 눈이 멀게 되나요?"

바로 어제 오후, 교내를 순회하는데 우리 학교 2학년 *반 교실에서 여학생들의 함성이 터지더군요. 가서 보니 공부시간이고 교과 선생님도 계시고... 옆반에서 수업을 하시던 담임 선생님은 반 학생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곤 복도에서 어떤 남학생과 함께 서 있더군요.

처음엔 전입생이 와서 담임교사가 그 학생을 소개시키려는 장면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학생들이 좋아서 소리 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전입생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담임 선생님도 그 남학생을 모르고 있고 처음보는 학생이라고 답합니다.

그 남학생을 데리고 교무실로 내려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인근 남학교에서 온 그 학생은 오후 시간 배가 아프다고 조퇴를 하고(그 학교 담임에게 확인하니 외출이라 함) 사랑 고백을 하기 위해 우리 학교를 찾아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방해되는 줄도 미처 생각하지 않고 교실 앞문을 노크하고 들어가 여학생에게 공개 사랑 고백을 하였다는 겁니다. 그 여학생과는 2년전부터 같은 학원을 다니며 사귀어 왔다고 합니다.

교감으로서 미심쩍은 점을 꼬치꼬치 캐어 물으니,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습니다."라고 하네요. 얼굴을 보니 얼굴이 하얘지면서 땀을 뻘뻘 흘립니다. 본인도 엄청난 일에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남학생들이 수능을 앞두고 고득점을 위해 여학생 방석을 훔쳐가 깔고 앉으면 된다는 미신은 들었어도 중학생이 사랑 고백을 위해 조퇴를 하고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랑 고백을 한다는 것, 소설이나 영화에서 있음직한 일이 바로 우리 학교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것 교직생활하면서 처음 보았습니다. 요즘엔 사랑에 일찍 눈뜨나 봅니다. 그리고 사랑을 아무 꺼리낌 없이 표현하는 것이 청소년의 사랑인가 봅니다. 장소나 시간이나 구애를 받지 않고 사랑 고백을 위해선 거짓말 조퇴도 스스로에게 용인되는 모양입니다.

우리 학교까지 찾아오게 된 과정을 쓰라고 하니...

"ㅇㅇㅇ이와는 오빠 동생 관계로 문자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제가 ㅇㅇㅇ이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백을 하려고 몇 번 만나자고 했는데 그 때마다 못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다니는 이 학교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교감으로서 이 같은 경우,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나요? 중학생 시기가 질풍노도의 시기인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 기성세대의 당연한 일입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에게는 더 깊은 이해가 요구됩니다.

상대방 학교, 교감까지 알게 되면 일이 확대될 듯 싶고 하여 담임과 전화 통화를 하였습니다. 3학년 *반 반장이라 합니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평소 속이 좋지 않아 학생의 말을 믿고 외출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출석부에 결과 표시가 되었겠네요?" 물었더니 교과 담임의 양해를 얻어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은 월권이고 하여 담임으로서 학생 상담을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학교 2학년 담임에게도 해당 학생 상담지도를 당부하였습니다. 꾸짖음이 능사가 아니고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니까요. 청소년의 심리를 이해하고 있다면 잘 지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학교도 잘못이 있네요. 알지도 못하는 타학교 남학생이 그것도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오다니? 이것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교과 담임이 아무리 저경력의 신규교사라고 해도, 교육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이건 상식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약 정신이상자 또는 흉악범이 들어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교과 담임은 그 시간에 그 학급 교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헛되이 보내서도 아니 되고 엉뚱한 사람이 함부로 침입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건 종료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는 교과담임의 장학지도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교감, 교장의 교내순시와 장학지도가 이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교장실과 교무실에 앉아만 있으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교실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 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상황은 이미 끝났는데 뒷북만 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교감으로서 특이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요즘 청소년의 사랑 고백에는 이런 것도 있구나!' '교과담임은 그 교과 시간을 책임지고 운영해야 하는데...이에 대한 연수가 필요하구나!' '교감의 교내순시가 이래서 필요하구나!' '요즘 청소년들은 나 어렸을 때하고는 생각, 행동이 판이하게 다르구나... 그것을 이해하려는 교육자로서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구나!' 등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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