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그때 20대 중반의 국사 신규선생님이 부임하셨는데 자신의 임용시험 면접 경험을 얘기해준 것이 기억난다.
면접관이 전교조(그때는 전교조가 태동할 때라 비합법이었음.)라는 조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 보자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 교사가 되어도 전교조에 절대 가입하지 않겠다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우리들에게 합격을 하기 위해 마음속과 다른 말을 해서 교육자로서 정말 양심에 찔렸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충남 모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교조 활동에 열정을 갖고 활동을 하고 계신다.
요즈음 한국사회의 편협한 시각을 보여주는 시상화석 같은 사례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사법시험에서는 1, 2차만 합격하면 면접은 요식행위로서 거의 탈락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올해에는 26 명이 소위 부적격자로 분류되어 심층면접을 치렀다고 한다. 그중에는 예비 법조인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 부족하여 심층면접을 치른 수험생도 있었지만, 이른바 사상이 불온(?)하다는 면접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분류된 수험생도 있었다는 게 문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단계 면접에서 "주적(主敵)은 미국이다"라고 대답했던 한 응시자는 26 명에 포함되어 심층면접에 회부되었으나, 심층면접에서 "주위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들은 걸로 답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며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핵은 우리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던 응시자도 심층면접을 치러야 했다고 한다.
다행히 두 응시자 모두 심층면접에서 탈락되지는 않고 구제된 것으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7명의 최종 탈락자 가운데 '국가관'이 문제가 되어 탈락한 사람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사법시험의 목적은 법에 대한 기본지식을 갖춘 사람에 대해 법을 공명정대하게 집행할 소양을 갖추고 있는가, 외압에 흔들림 없고 뇌물에 소신을 굽히지 않을 의지를 갖추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주적' 문제나 '북핵문제'에 대한 판단은 몇 마디의 단답형 답변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어느 하나의 답이 절대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전혀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견해들 사이의 논쟁이 계속되어온 것들이다.
스펙트럼에 비쳐진 무지개는 다양하다. 그 어느 색깔을 골라 무엇이 낫다, 못하다는 거론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색깔 자체로 아름답고, 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객체일 뿐이다. 이념으로 인한 갈등은 우리사회를 이리저리 갈라놓았다. 얼마나 이념투쟁이 심했으면 黨同伐異 라는 사자성어가 교수들이 선정한 2005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가 되었을까.
그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생각이 나와 다르다 하여 그것을 법의 잣대로 제단 하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 내에 존재하는 사고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모습으로 생각된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다원화되고 있고 다양한 가치와 이념, 사고가 존재하고 있다. 거기서 어느 한 방향의 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것들은 배척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가진 사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겠다.” 프랑스의 지성 볼테르의 똘레랑스(관용)를 강조한 말이다.
정녕 볼테르는 대한민국에서 죽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