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나긴 겨울방학이 끝나가는 무렵이다. 비록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긴 하지만 가정환경이 불우한 학생에게 급식 지원하는 현행 제도에 대한 성찰을 해 보고자 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우선 먹을거리에 대한 양과 질의 문제다. 모 신문에 나온 내용은 그 심각함을 잘 드러내는 사례라 하겠다.
경기 A시에 사는 박 모(15)군이 “볶음밥은 반찬도 따로 없어요. 꽁꽁 언 밥을 데우면 느끼한 냄새가 나는데…. 아유, 아직도 그걸 상상하면 속이 메슥거려요.” 라고 하였다. 당시 박 군에겐 똑같은 메뉴의 냉동도시락이 열흘 치씩 택배로 배달돼 왔다. 더욱이 맛과 영양은 둘째 치고 전자레인지가 없어 해동도 어려웠고, 냉장고도 작아 보관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A시는 2005년 12월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도 상황을 개선하지 않다가 지난해 10월 지역 시민단체에 또다시 지적을 받고 도시락 제도를 없앤 뒤 식품교환권 제도를 도입했다.
그 다음으로 식당 지정제 운영상의 문제점이다.
방학인 요즘에 아이들은 학교 점심 급식을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동사무소에서는 지정된 식당에서 쓸 수 있는 식권을 주지만 가게들이 문을 닫는 공휴일엔 무용지물이 된다. 그럴 때 마다 아이들은 그냥 굶거나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한다. 한창 자라나야 할 때는 골고루 영양 섭취를 해야 하는데 부실한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니 아이들 몰골이 어떻겠는가? 그러한 사례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2005년 1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시작된 ‘부실 도시락’ 파문이었으며, 곧이어 전북 군산시의 ‘건빵 도시락’으로까지 이어져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이후 방학 중 결식아동의 급식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상당수는 음식의 질이나 배달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식권이나 식품교환권, 음식 재료 공급 제도를 통해 결식아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식아동 지원 제도가 여전히 겉돌고 있다. 정책의 목적은 사라지고 ‘욕만 얻어먹지 않으면 된다.' 는 지자체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식권도 가격이 3천 원짜리라서 분식집 밖에 갈 곳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지정식당을 잘 알려주지도 않는 경우도 있고, 거기다 거리가 너무 멀다보면 아이들은 그런 곳을 기피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급식 지원을 하는 지자체들은 “예산이 부족하다”, “행정적인 한계가 있다”, “어느 제도나 장단점이 있다”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자체와 대비하여 대안을 제시해 주는 훌륭한 자치단체가 있다.
경기 구리시는 지역사회 30여 개 봉사단체가 매일 차례로 돌아가며 구리사회복지관 조리실에 모여 결식아동들에게 줄 새로운 반찬과 밥을 만든다고 한다. 지역의 교회, 새마을 부녀회부터 라이온스클럽 등 다양한 주체들이 결식아동들의 밥을 위해 발 벗고 뛰고 있고, 보온도시락 전달도 한다.
“도시락 지원 사업은 단순히 ‘밥’만 제공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서 지역주민들이 아이들의 가정형편과 환경, 정서와 마음 상태까지 돌본다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복지팀장의 말은 그 중요성을 느끼게 해 준다.
필자도 학교급식 지원을 단위학교에서 해 봤던 실무자로서 반성했던 일이 있다. 영구임대 아파트가 많은 지역에 위치한 중학교에 근무했었는데, 급식지원 대상 아이들을 교무실로 불러와 급식물품을 타가게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물품 전달을 할 때 자존심 상하지 않게 조용히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창피해서 수령하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에게 배고픈 것 보다는 낫다고 말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이 적잖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느낀 바가 있어서 담임선생님을 통해 상품권을 주변 학생들 모르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있다.
현행 급식제도의 문제점을 국가 차원에서 풀어야 하지만 지역주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지자체에서 손발 벗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를 도입하여 추진하다 보니 자치단체장들이 표를 너무 의식하는 사례가 생기는 것 같다. 필자가 담당하는 업무 중 저출산․고령화 대책수립 업무가 있는데 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을 만나서 말을 듣다 보면, 선거에서 표가 되는 선거권 있는 노인들에 대한 지원은 생색을 내는데, 표가 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인색함을 느끼곤 한 것은 내 마음이 박정하기만 해서 그런 걸까?
아이들은 어쨌거나 이 나라를 이끌고 짊어지고 나아갈 동량지재다. 그렇다고 해서 노인들이 모두 쓸모없으니 박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같은 사람인 이상 조금더 신경을 써서 보살펴야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요즘 들어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인간의 제일 기본 욕구인 먹는 것에 대한 차별도 심화되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먹는 재미에 대해 아이들이 소외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