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가운데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기초학습이 안되는 학생이 500명 안팎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다. 중학생은 그 열 배, 초등학생은 스무 배가 넘는다는 통계이다.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학부모들은 항의할 것이고 교육부 당국은 여러 가지로 학교에 독려와 책임을 묻겠다는 지시들을 내려 보내 자신들의 책임을 벗어 날 길을 마련할 것이다. 기초학습 부진아가 하나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양산되는 것은 제도적인 결함이 제일 큰 요인으로 생각된다.
나라의 교육정책이 선생도 바쁘고 아이도 바쁘고 학부모도 바쁘게 만든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뒤처지는 아이를 가르칠 시간이 없다. 나라는 어디서 어떻게 배우든지 많이 아는 사람을 칭찬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학부모들은 여기에 맞추어 엄청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배우도록 요구한다. 정말 순진하고 착한 학부모님은 아이들에게 그런 억지를 요구하지 않고 잘 뛰놀고 밝고 건강하게 키워 학교에 보낸다. 학교에서는 이 10%미만의 아이들을 붙들고 교육과정대로 수업을 하노라면 나머지 90% 선행학습에 젖은 아이들은 아는 공부 한다고 마냥 논다. 할 수 없이 이 아이들에게 맞는 수준의 수업도 병행한다. 그러면 정상 아동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아이가 되고 놀란 아이와 학부모는 해결책으로 당장 학원으로 간다. 선생이 보충하겠다고 아이를 붙들면 아이는 학원차가 와서 기다린다고 급하게 떠난다. 그러나 학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아이가 수준차를 좁히기 보다는 학습의욕을 잃는 것이 태반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 형편은 조금씩 더 심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잘 따라하고 싶어 하는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그 해결책으로 학교와 교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나라에서 경쟁 일변도의 교육정책과 학교와 교사만 닦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우리 정서에 맞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가르치고 싶어 하는 교사들에게 가르칠 시간을 주고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신바람 나는 학교와 선생과 아이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해주어도 아이들을 학습 부진아로 만드는 선생은 물러가야 한다. 그 때 교사평가가 필요하고 평가는 교사의 신상문제를 전제로 해야 되는 것이다.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알면 욕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고 그 공부의 질은 당연히 양질의 공부가 된다. 나라와 사회와 학교는 좀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기본환경을 만드는데 더 투자를 하여 뛰어난 인재들이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문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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