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수학여행, 교육이 실종됐다

2007.09.13 10:34:00

충격도 이런 충격이 있을 수 없다. 억장이 무너질 학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니 한숨과 탄식이 절로 난다.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자신의 일처럼 부끄러워 고개를 둘 수 없을 지경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올봄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한 고등학생의 성매매 제보를 접한 모 방송국이 지난 8월 밀착 취재를 통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그 충격적인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공개했다. 방송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더한 것은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그 어떤 교육적 조치도 없었다는 데 있다.

수학여행은 책상 위에서만 접하던 지식을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둘러보는 등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말로만 듣던 명승고적을 찾아 떠나는 수학여행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 설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여행지에서 보는 것 하나하나가 신기했고 또 비좁은 방안에서 십 여명씩 포개서 자는 불편한 잠자리였으나 그 자체가 추억이었다.

물론 어려웠던 시절의 수학여행 풍속도지만 그 나름의 원칙은 분명했다. 수학여행은 놀고 즐기기 위한 관광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기 위한 학습활동이었다. 행여 가정 사정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못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얼굴없는 천사가 여행비를 대신 내주는 아름다운 사연도 있었다. 선생님들도 여행지에서 아이들의 안전과 혹시나 있을지 모를 탈선을 막기 위해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나라 살림이 불어나고 사람마다 호주머니 사정이 나아지면서 수학여행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수학여행을 해외로 나가는 학교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글로벌 시대니 학생들이 배운 외국어를 직접 사용해보기도 하고 또 외국에 나가면 그만큼 애국심도 고양될 수 있다는 취지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듯한 명분만큼 과연 교육적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필자도 몇 년전 학생들을 인솔하고 중국 북경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다. 3박 4일 동안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일정이었으나 진주를 파는 상점이나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시범을 보이며 약을 파는 공장 등 가는 곳마다 쇼핑을 유도하는 현지 가이드의 상술에 아연실색한 일이 있다. 더군다나 피땀흘려 벌어들인 귀중한 외화를 배우는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 소비한다는 것이 여행 내내 부담으로 남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가난했던 시절, 수학여행은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 더 넓고 큰 세계를 경험하는 체험학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주5일 수업제가 도입되면서 가족 단위 여행이 보편화되고 있는 마당에 과거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수학여행이 과연 효율적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극히 일부에 국한된 사안이지만, 이번 중국 수학여행단의 충격적인 성매매 행위는 수학여행의 본질적 취지가 변색되고 있음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수학여행을 당장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고 시대적 상황에 맞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학생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보다는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일정을 잡아 봉사활동을 떠나거나 특별한 체험활동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배움이 없는 수학여행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교육 당국은 이번 고교 수학여행단의 충격적인 성매매를 우발적인 사안으로 애처 축소하지 말고 차제에 수학여행의 본질적 의미부터 검토하여 새로운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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