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동료 선생님들께

2008.05.14 14:36:00

꽃보다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꽃이 진 자리에 돋아난 새싹들이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재잘대며 싱싱하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시간의 엄정한 순환을 생각하면 저 잎들은 얼마 후 더욱 검푸르게 무성해지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늙어가겠지요. 그리고 자기 영혼의 마지막 무늬인양 제 몸을 붉게 물들인 채로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우주 순환의 범주에서 모든 생명체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도 이제 막 시간의 엄정하고 긴 순환의 여정에 오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우리는 그 긴 여정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요? 이제는 잠시 쉬면서 온 길을 되돌아 볼 시간은 아닐까요? 제게는 당신이 저와 같은 길을 간다고 생각하니 어찌 그리 애틋하고 정겨운 사람인지요. 늘 고단하고 힘든 길이라는 걸 압니다. 늘 아이들의 소음과 먼지 속에서 분필가루 먹어가며 그들의 길을 밝혀 주는 하나의 등불이고자 하시는 당신에게 자격은 없지만 이 지면을 빌어 치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각종 오욕칠정에 시달립니다. 그 중에서 선생님들이 바라는 권력욕은 무엇일까요? 그건 교감, 교장이 되거나 장학사, 교육장, 교육감이 되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관리자이며 진성한 의미의 선생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학생 앞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때에야 진정한 선생님입니다.

또, 교감 교장이 못되었다고 하여 당신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이 승진에 뜻을 두고 자기 성장에만 힘쓸 때 당신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마음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또 교과서와 교재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부진아 구제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당신은 근무평정을 더 잘 받기 위해 윗사람들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여건과 무엇이 더 교육적일까를 항상 생각하며 학교 운영에 쓴 소리를 했을 것입니다.

학생수 백 명도 채 안되는 시골의 작은 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마치 재벌 총수처럼 교사들과 학생들 위에 군림하다가 퇴직한 뒤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런 빈 껍데기같은 인생을 맞으시렵니까?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도 끝까지 교단을 지키며 참 스승의 길을 걷다가 존경받고 사랑 받으며 제자들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스승님이 되시렵니까?

그리고 당신의 많은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동료와 후배 교사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십시오. 그것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큼 귀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렇게 정보를 나누고 당신의 능력을 베풀어 주어 그것을 나누어 가진 동료가 더 많은 지혜와 능력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할 때 이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큰 재물을 모을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디에 대고 손을 벌릴 만큼 빈한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품위를 유지하고 무난히 가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촌지 사건은 다 무엇일까요? 촌지를 받아서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교사의 격만 떨어뜨리고 또한 도매 급으로 넘어가는 수많은 청렴한 동료 선생님들에게 커다란 죄를 짓는 일입니다. 물론 갖다 주고 말썽을 일으키는 학부모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이며 사회의 청렴 지수를 재는 잣대 입니다. 학부모의 그런 행동이 자기 자녀만 잘 봐달라는 이기심이라면 그런 잘못을 바로 잡아줘야 하는 게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동료이며 존경하는 선생님!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스승은 마음으로 따르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림자는커녕 스승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참으로 야속하고 참담한 세태입니다. 그것이 누구의 잘못일까요? 우리 교사들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단언하며 한탄만 해야 할까요? 불효자를 둔 부모는 자식을 그렇게 길러낸 책임이 어느 정도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어른이 계시지 않은 탓이기도 합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속으로는 자애로운 마음을 감추시고 겉으로는 그런 엄정한 스승님이 되셔야 할 때입니다. 또한 학생들만의 선생님이 아니라 사회의 진정한 스승님이 되셔야 할 때입니다.

부디 건강 하시고 행복하셔서 아이들에게도 당신의 기쁨과 행복을 나누어 주는 커다란 품을 가진 스승님이 되시길 빕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꽃 지고 잎 피는 5월의 문턱에서
이름 없는 동료 교사 올림

김용숙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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